
'E.T.'가 세상에 나온 지 벌써 4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감각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감동스러운 장면과 이상적인 설정만 빠졌을 뿐, 외계인 디자인부터 중추적인 요소까지 그때 그 시절 'E.T.'와 별반 차이가 없다.
가장 실망스러운 건 다니엘 켈너가 그토록 조심스럽게 다뤘던 '비밀'을 공개하는 방식과, 그 '비밀'의 정체. '디스클로저 데이'(폭로의 날)라는 제목이 아까울 정도로 극 초반부부터 허무하고 허탈하게 '비밀'을 공개하며 텐션을 확 죽여놓는다. 남은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엔 다니엘과 마거릿의 도피만 반복될 뿐이다.
스필버그 감독이 꽁꽁 싸매고 있던 '비밀'의 정체도 막상 열고나니 속빈 강정일 뿐이었다. '디스클로저 데이'는 기본적으로 '로스웰 UFO 추락 사건', '51구역 외계인 연구설' 등 1940년대에나 유행했던 외계인 음모론을 기반으로 한다. 물론 인터넷이 없던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의혹들은 수많은 창작자들의 머리를 번뜩이게 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컨택트', '디스트릭트 9', '배틀쉽', '프로젝트 헤일메리' 등 기발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SF 영화들이 우후죽순 관객들과 만나온 덕이다. 일반적인 '외계인' 영화는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이미 익숙한 장르가 됐다는 뜻이다.
하지만 스필버그 감독의 '디스클로저 데이'가 품고 있는 설정은 그야말로 '클래식'하다. 20년 전 개봉한 '우주 전쟁' 속 외계인 디자인과 콘셉트가 그리워질 정도로 전형적이고 진부한 외계인 설정들로 영화가 꽉꽉 차 있다. 외계인의 비주얼이 검고 큰 눈과 커다란 머리, 두 팔과 두 다리로 디자인됐다는 점만 봐도 고민이 길지 않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설득력 없는 서사까지 더해지며 영화는 걷잡을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져버린다. 다니엘이 품은 '비밀'을 왜 엔딩 속 방식으로만 풀어냈어야 하는지, 이를 국가적으로 막을 순 없었는지, 워덱스의 국장의 마지막 선택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두 사람이 선택된 계기는 무엇인지, 왜 다른 신체 부위도 아닌 '눈'이 중요시 여겨지는지, 미스터리 서클의 의미는 무엇인지 등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채 이야기가 정신없이 전개되며 혼란만 키운다. 심지어 종교적인 메시지까지 녹여 내려 욕심낸 탓에 '진실을 마주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라는 중심 주제마저 붕 떠버리고 만다.
두 주인공 조쉬 오코너와 에밀리 블런트의 연기는 어디하나 모난 것 없이 무난하나 감정 표현은 다소 아쉽다. 이 역시 연출의 미흡함에 원인이 있다. 특히 각성 과정, 작품 전개에 따른 변화가 다소 급진적이라 두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하기 힘든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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