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으로 단심이 한약상자를 들고 오다가 평상에 앉아 기다리는 세계를 본다.
뭐냐? 늦는다더니
차세계! 늦는다더니
단심이 세계에게 다가간다.
젖은 눈의 세계가 단심을 보고 선다.
밤늦게 또 어딜 다녀오는 거야?
응, 잠깐 볼일이 있어서
한약상자를 숨긴다.
난 네가 던진 폭탄 때문에 종일 머리가 아팠는데 아무렇지도 않네, 힘 빠지게
차, 차세계, 그건 말이지...
그딴 헛소리나 듣고 세상 쉬운 놈 취급이나 받고. 나는 또 여길 기어 와있네
아니다, 난 그런 게...
내가 너한테 그렇게 못 미더운가? 나한테 비밀은 없었음 했는데. 너 최문도랑 만났다며?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아, 그, 그건...
그 인간이 뭔 딜을 날렸다던데 말을 하지 그랬어. 그게 뭐든 내가 더 해줄 수 있는데. 난 너한테 믿음을 충분히 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봐. 내가 얼마나 더 해야 할까? 얼마나 더 호구처럼 매달려야 마음을 열어? 어차피 내 맘 같지 않은 거면 그냥 대놓고 이용을 하든가. 너한텐 충분히 이용당해 줄 수 있으니까
단심이 눈물을 글썽이며 세계의 뺨을 갈긴다.
세계의 눈시울도 붉어져 있다.
그래, 이래야 신서리답지. 네 말대로 뭐든 버리는 여자면 어설프게 착한 척도 하지 말고 내 걱정도 하지 말고 그냥 너만 생각하라고. 제발 위악을 떨려면!
단심은 눈도 깜빡이지 못한다.
그럼 제대로 좀 떨어보라고
세계가 자신을 때리고 가는 단심을 붙잡는다.
놔!
단심이 퍽퍽 밀치는데도 세계가 묵묵히 맞으며 손목을 절대 놔주지 않는다.
세계는 단심의 양 손목을 꽉 움켜쥔다.
단심과 눈을 맞추던 세계가 가슴아픈 숨을 내뱉는다.
단심은 세계를 쏘아본다.
답답해 어쩔 줄 몰라하던 세계가 단심의 앞으로 바짝 다가선다.
세계는 지친 듯 단심의 어깨에 머리를 묻는다.
단심이 미동도 하지 않는다.
너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
세계가 이내 머리를 떼어내고는 단심의 눈을 가만히 바라본다.
단심도 세계와 시선을 마주한다.
네가 누구든 어디서 왔든 다 믿어
뭐?
그래, 뭐라도 다 믿으니까 나만 봐
단심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다른 새끼 다 집어치우고 나만 봐라, 너
세계가 단심의 머리칼을 쓸어넘긴 뒤 눈물을 닦아준다.
그런 다음 망설임 없이 다가가 단심에게 키스한다.
진심을 확인한 단심이 세계의 입술을 받아들인다.
두 사람은 눈을 지긋이 감은 채 따뜻한 입맞춤을 이어간다.
그 주위로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포근한 조명 속에서 세계와 단심이 눈물의 키스를 나눈다.
세계는 단심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다.
단심도 세계의 몸에 팔을 두른다.
세계와 단심이 이 순간만큼은 오로지 서로에게만 집중하며 온기를 느낀다.
떨리는 감촉 속에서 두사람이 진실된 입맞춤에 빠져든다.
주변에 켜진 조명과 흩날리는 눈발이 두 사람을 둘러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