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 칼럼니스트] 지난주 방영한 ENA 드라마 <허수아비> 마지막 에피소드는 마치 반성문을 보는 듯했다. 다만 써야 할 이가 쓰지 않고 누군가 대신 쓴 반성문이었다. 국가를 대신해 드라마가 써낸 반성문.
<허수아비>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다. 2003년에 제작된 영화 <살인의 추억>의 소재가 되기도 한 사건이었다. 2019년까지 미제였던 이 사건은 다른 살인사건으로 복역 중이던 이춘재가 화성 연쇄살인의 진범으로 드러나면서 전모가 밝혀졌다. <허수아비>는 이를 모티프로 만들었다.
‘허수아비’가 보여주는 시대의 민낯
제목으로 쓰이고 드라마에선 범인의 상징으로 쓰인 ‘허수아비’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진 시기에 경찰 측에서 쓴 수사 도구이기도 했다. 사건 현장 인근에 ‘너는 자수하지 않으면 사지가 썩어 죽는다’라는 문구를 적은 허수아비를 세워두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수사팀은 그 시절 기준 최신 과학수사 기법과 대대적인 인력을 동원하고도 범인의 꼬리조차 잡지 못하자 극도의 압박감과 무력감에 시달렸다. 결국 미신에라도 기대어 범인의 심리를 자극하려는 고육지책을 썼던 것이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도 논두렁 뒤편으로 허수아비가 스치듯 지나가는 장면이 담겼다.
미신에 기대어서라도 범인을 잡고 싶어 한 수사 기관의 의지는 범인을 조작해 만들어내는 일까지 자행하게 했다. 즉 가짜 가해자를 양산했다. 드라마에서 그린 20여 년을 억울하게 복역한 이도, 수사 과정의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이도 실제로 있었다.
그런데도 책임 있는 이의 사죄나 반성은 없었다. 그래서 드라마 <허수아비>가 다른 이가 대신 써낸 반성문으로 읽혔을지도 모른다. 진범을 잡지 못한 채 흘려보낸 3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를 조명하는 이야기가, 반성하듯 흐르는 서사가 그렇게 느껴졌다.
특히, 드라마 속 진범 이용우(정문성 분)가 수십 년이 지난 2019년에야 실명을 드러내고 자백하는 과정은, 그동안 우리 사회와 수사 기관이 지고 있던 무능의 기록을 강제로 들추어내는 듯 보였다.
또한 범인을 잡지 못해 공포에 떨어야 했던 드라마 속 강성 마을 주민들의 삶, 나아가 치안 공백 속에서 국가가 지켜주지 못한 채 잊혀간 피해자들과 그 유족들의 고통을 보여주면서 미제 사건이란 결국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실패의 반성문임을 명확히 했다.
이런 의미에서 지연된 정의도 정의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지난 역사에서 부정의(不正義)를 저지른 주체가 권력 기관, 즉 국가여서 영원히 묻힐 수도 있었다는 자성이었다.
불법과 폭력으로 유지하고 세습해 온 권력
드라마는 범인을 잡겠다는 명분으로 행해진 ‘공권력의 불법 행위’를 신랄하게 묘사한다. 불법 체포, 감금, 폭행, 고문은 물론이고, 진범을 잡지 못하자 무고한 인물을 억지로 범인으로 만들기까지 한다.
범인을 잡고 싶다는 의지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조직의 성과’이면서 ‘조직원의 영달’이기도 했다는 걸 보여주기도 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작품 속 강태주(박해수 분)가 뒤늦게 진실을 알고 무고하게 20년 옥살이를 한 이에게 눈물로 사죄하며 재심을 준비하는 과정은, 국가 권력이 사법 정의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뼈아프게 묘사한 순간들이었다.
누군가 진심으로 사죄하고 반성해야 할 역사이기도 했다. 진범이 활보하는 동안 공권력은 괴물이 되어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했던 시대였다.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만 그러했을까.
드라마 <허수아비>는 권력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세습되는지도 그렸다. 과거 수사 배후에 있던 검사는 국회의원이 되었고, 조작과 은폐 현장에 있었던 경찰은 지방경찰청장이라는 고위직에 오른 것으로 나온다.
이들은 자신들의 과거, 즉 불법 수사와 증거 은닉으로 인한 무고한 희생자 양산이 드러나면 현재의 견고한 권력 기반이 흔들리기 때문에, 진범의 자백을 거짓으로 몰아가며 진실을 다시 묻으려 한다.
그 중심에 선 드라마 속 검사 출신 국회의원은 재력가인 처가와 군 장성 출신에다 국회의원이었던 아버지의 후광을 입은 듯 보이고, 경찰인 그의 형 또한 경찰청장에 오른 인물로 나온다. 즉 권력과 부가 합종연횡하며 세습되는 한국 특권층의 모습을 은유했다.
물론, 드라마라 상징적으로 그렸겠지만, 역사를 부정하고 불의와 타협하면서 생존해 온 기득권 세력이 어떻게 대한민국의 권력과 부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서사로 다가왔다.
사죄와 반성 없이 침묵으로 지키는 기득권
드라마 <허수아비> 속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피해자는 재심을 받는다. 신청도 어렵고 그 과정의 지난함이 그려졌다. 권력을 가진 가해자는 드러난 정황과 증거를 부정하고 진실에는 입을 다문다.
그래도 진실을 가둘 수는 없는 법. 재심 결과는 무죄였다. 실제 피해자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사법 기관을 대신해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정작 사죄할 이는 입을 다물고 외면했다. 드라마에서도 그랬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진짜 가해자가 누구인지 명확하지만, 그들에게는 입도 없고 양심도 없는 듯했다. 권력의 속성이 침묵과 은폐를 동력 삼아 굴러가서일까. 아니면, 지킬 게 많아서일까.
드라마 <허수아비>는 범인이 누구인지 이미 밝혀진 범죄 수사물이다. 권선징악, 즉 악인을 시원하게 응징하는 사이다 서사도 아니었다. 다만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지 못해 여전히 부채감을 안고 사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거울’에 가까웠다. 누군가는 들여다보길 거부하는 거울.
<허수아비>는 오늘날 누군가 그들의 능력에 걸맞지 않은 지위를 누리는 이가 있다면 어쩌면 ‘과거의 반성 없는 침묵’으로 얻어낸 것일 수도 있다는 걸 이야기했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권력은 그 자체로 또 다른 거대한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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