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서울 강남구 BH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만난 박해수는 ‘허수아비’의 흥행을 두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1988년부터 2019년까지 30년의 세월을 오가며 악연으로 얽힌 두 남자가 연쇄살인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범죄 수사 스릴러는 최종회 8%대를 돌파하며 자체 최고 성적으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을 줄 몰랐기에 더 놀랐습니다. 동료 배우들과 지인들의 연락을 받고서야 ‘정말 잘되고 있구나’ 실감했죠. 시청률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 있었는데, 좋은 결과를 얻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겸손하게, 최선을 다해서’라는 장문의 문자를 보내주셨어요.”
“OTT 플랫폼 작업과는 또 다른 감동이 있더라고요.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보실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특히 어머니가 극 중의 그 시대를 두려워하며 사셨던 분이잖아요. 울면서 연락을 주셨어요. ‘그 시절 청년들이 너무 안타깝고, 그걸 짊어진 태주가 마음 아프다’고 위로해 주셨죠. 제 필모그래피 중 어머니가 가장 깊이 공감해 주신 작품입니다.”
‘허수아비’는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 경기 화성 일대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같은 사건을 다룬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은 피할 수 없는 비교 대상이었다. 시대의 공기와 사건의 그림자를 공유하는 만큼, 박해수 역시 송강호의 연기를 깊이 참고했다.
“‘살인의 추억’은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명작입니다. 같은 시대적 배경을 다루고 있기에 송강호 선배님의 연기를 보며 그 미친 듯한 에너지를 가져가고자 노력했습니다. 같은 배경을 두고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다만 ‘허수아비’의 시선은 ‘살인의 추억’과 다른 곳을 향한다. 진범을 쫓는 과정에 머물지 않고, 범인이 밝혀진 뒤 남겨진 이들의 상흔을 응시한다. 박준우 감독과 이지현 작가는 통쾌한 ‘사이다’ 전개 대신,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을 택했고 박해수 역시 그 방향성에 강한 신뢰를 보냈다.
“작가님과 감독님의 역량이라면 얼마든지 사이다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감독님께서 저와 (이)희준이 형에게 ‘우리 작품이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는 건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하셨어요. 문제를 그대로 남겨두는 것이 훨씬 더 입체적이고, 감정적으로 깊이 오래 남을 거라고 보신 거죠.”
이번 작품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축은 차시영 역을 맡은 이희준과의 호흡이다. 연극 무대 시절부터 인연을 다져온 두 사람은 OCN ‘키마이라’, 넷플릭스 ‘악연’에 이어 세 번째로 뭉쳤다. 진실을 좇는 강태주와 성공을 좇는 차시영으로 팽팽하게 맞선 이번 현장을 두고 박해수는 “이희준과 가장 깊게 교감한 시간”이라고 평했다.
“희준이 형과 함께하며 감사함을 참 많이 느꼈습니다. 형이 뿜어내는 날카로운 자극들을 저는 온전히 흡수하기만 하면 됐으니까요. 사실 ‘허수아비’ 촬영 전, 스스로 연기적인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어요. 허세 부리듯 연기하는 게 싫었고, 스스로 힘든 시간이 있었죠. 그런데 형이 주도하는 연기 스터디에 참여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제 틀이 조금씩 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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