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화하는 좀비와 인간다움, 공존하기 어려울 것 같은 두 개가 연상호 감독의 세상에서는 가능하다. 보편적인 사고로 인해 무력해지는 개별성에서 출발한 그는 자신을 대표하는 장르인 좀비물에서 또 한 번 세계관을 성공적으로 확장시키며 메시지도 놓치지 않으며 그렇게 '군체'를 완성했다.
쉬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지만 연상호 감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바로 좀비물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그는 "나는 한국 좀비 영화계의 문익점, 이른바 '좀익점'"이라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부산행' 이후로 한국 좀비물에 기대하는 지점이 확실하게 생긴 것 같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고 이러한 분위기가 쭉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다만 '군체'가 처음부터 좀비물로 기획됐던 건 아니다. AI(인공지능)가 구동되는 원리로부터 출발했다는 연 감독은 "이게 보편적인 사고로 돌아가는 데 그 반대의 인간다움은 개별성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잠재적 공포심의 근원을 찾다가 보편적 사고로 똘똘 뭉쳐있는 존재로부터 느껴지는 개별성의 무력함에 포커스를 맞췄고, 이를 영화에 명확하게 담기 위해 따로 노는 것 같지만 집단으로서 공포를 유지하는 좀비물이라는 장르와 자연스럽게 결합하게 됐다고.
"또 군체 집단이 있는 생명체를 조사하는데 재밌더라고요. 하나의 성질로 이뤄진 개체다 보니 내부 약점이 발견되면 다 죽어버리는 성질이 있어요. 그렇다 보니 늘 변이체를 남겨놓는데 이게 인간 사회와 닮은 것 같더라고요. 보편적 사고 안에서 소수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되는 이유를 자연계가 설명하고 있는 느낌이라서 이 맥락에 따라서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군체 집단 생명체의 종말과 인간 사회를 함께 그려냈던 것 같아요."
연상호 감독이 '군체'에 담고 싶은 건 방대했다. 초고가 약 3시간 30분의 분량인 168페이지나 됐으니 말이다. 이 가운데 그는 체험적이면서도 빠르게 느낄 수 있는 속도감과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우화적인 메시지에 집중하며 이야기를 덜어냈다.
그 결과 부성애와 모성애를 녹인 전작들과 달리 신파 코드가 확실하게 옅어졌고,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부터 한규성(고수 분)의 전 부인 권세정(전지현 분)과 현부인(신현빈 분)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모인 생존자들의 서사와 관계성을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 놓은 지금의 '군체'가 탄생했다.
"이번에는 좀비가 진화되는 것에 집중했고 방탈출 게임처럼 극단적 게임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려고 했어요. '부산행' 속 아빠와 딸은 보편적인 관계라서 관객들이 따라가는 데 큰 무리가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개개인의 서사를 디테일하게 다루는 속력을 가진 영화가 아니다 보니 인물들의 관계성을 특이하게 형성함으로써 보는 이들이 외적으로 캐릭터들의 서사를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분야를 막론하고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 가운데, 신작으로 AI라는 화두를 던진 연 감독이다. 그는 전 세계 영화계에서도 뜨거운 논쟁의 대상인 생성형 AI에 관해서 "CG업계는 AI 생성형 이미지툴로 급격하게 바뀔 것"이라고 바라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꺼냈다.
"예술의 독창성은 보편성과 상충되는 단어인데 이 두 개념이 합치될 수 있는가라는 게 어려운 논쟁인 것 같아요. 그렇지만 과거 미술계에서도 있었기에 충분히 결합이 가능하다고 봐요. 사실 영화가 보편적이면서 독창적인 예술이거든요. AI도 하나의 협업 도구이자 예술계를 풍요롭게 해줄 요소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논쟁이 될 만한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극복해 나가야 하는 형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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