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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좀비만 진화한 ‘군체’... 연상호는 진화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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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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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부산행'(2016)은 꽤 충격적이었다. 할리우드 전유물이던 좀비물을 한국적인 정서와 공간으로 변환해 낸 점은 굉장한 신호탄이었다. 'K-좀비물'이라는 독자적인 장르를 탄생시킨 장본인이 연상호 감독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10년이 흐른 지금, 좀비라는 존재는 결국 장르를 압도하고야 말았다. 퍼포먼스의 진화, 분장의 진화, 기술의 진화가 좀비를 스크린 위에 생생히 옮겨놓았지만, 영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좀처럼 좀비의 진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좀비의 아버지는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냈을지는 몰라도, 여느 가장처럼 과거의 문법에 머물렀다. 이것이 K-좀비물 자체의 한계일지, 연상호라는 창작자의 한계일지는 관객이 판단하기 나름이겠지만 말이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 '군체'는 정체불명의 감염 사태로 봉쇄된 건물 안에 고립된 생명공학과 교수 권세정(전지현 분), 감염 사태를 발생시킨 생물학 박사 서영철(구교환 분), 그리고 건물 외부에서 생존자들을 구하려는 특별조사팀 소속 생물학 박사 공설희(신현빈 분) 지성체의 삼각 구도에 지성체로 진화하는 좀비들로 이뤄진 작품이다. 그동안의 좀비가 인간의 냄새를 쫓아 무작정 달려들던 원시적 동물이었다면, 이번 작품 속 좀비는 경험과 정보값을 공유하며 군집으로 진화한다.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완성되는 '집단 지성'에서 키워드를 찾아냈다는 연상호 감독의 설명대로 좀비는 감각의 전이를 통해 인간을 닮아간다. 생존자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전이되는 감각을 어떻게 통제할 것이냐다.


이야기 전개는 친숙하다. 감염 사태가 발생하고, 사람들은 특정 공간에 고립된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형성된 임시 집단이 유일한 생존자들이다. 이들은 살아남겠다는 공통의 목적으로 뭉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감염 사태를 촉발한 빌런을 무사히 세상 밖으로 데려가야만 한다. 저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서영철을 상공으로 끌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의 뇌가 좀비들의 집단 뇌와 실시간으로 연결돼 있다는 치명적인 변수만 제외하면 말이다.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연상호 감독 특유의 속도감 넘치는 전개를 꼽을 수 있다. 영화 시작 10분 만에 감염 사태가 몰아치고, 빌런과 생존자의 첫 만남은 30분 만에 성사된다. 좀비 대가다운 능숙한 연출력과 1인칭 게이밍 시점 등을 오가는 변칙적인 촬영 기법, 몰입감을 배가하는 음악 등. 영화적 자극에 홀려 '뇌를 빼고 보면' 너무나 즐거운 오락 영화다. 하지만 문제는 연상호 감독에게는 극중 서영철처럼 관객의 뇌를 제멋대로 조종하는 이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한 인간이 가진 상상력과 사유의 깊이를 프랜차이즈 제품 찍어내듯 빠르게 소진하면, 그가 누구든 가치관의 바닥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영화 '부산행', '서울역', '염력', '반도', '정이', '계시록', '얼굴', '군체', 드라마 '방법', '지옥' 시즌1·2, '괴이', '선산', '기생수: 더 그레이'까지. 연상호 감독이 지난 10년간 세상에 내놓은 작품은 무려 14개에 달한다. 여기에 아직 공개되지 않은 영화 '실낙원'과 드라마 '가스인간'도 대기 중이다. 짧게는 2~3년에 한 편, 평균적으로는 4~5년에 한 편을 만드는 여타 감독들과 비교하면 엄청난 과속이다.


'군체'는 한국 장르물 중 상대적으로 여성 캐릭터들이 서사의 전면에 많이 등장하는 작품임에도, 캐릭터를 활용하는 방식에서는 상상력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폐쇄된 공간의 열쇠를 쥔 전지현과 외부에서 이를 조사하며 내부에 조력하는 신현빈, 빌런과 대적하는 핵심 인물이 모두 여성이지만 캐릭터의 입체성은 찾아볼 수 없고 존재감마저 미미하다. 결말부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는 하나, 이마저도 전개상 설득력이 부족해 캐릭터의 기능성만 강화할 뿐이다. 이들은 그저 서사가 요구하는 정답에 맞춰 기계적으로 행동하는 꼭두각시와 필요한 세계관 설명을 늘어놓는 AI 비서로만 기능한다.


반면 남성 캐릭터들은 극 안에서 날것으로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가히 역대급으로 매력적이라 할 수 있는 광기의 빌런을 완성한 구교환, 극 중 가장 입체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지창욱, 장렬하게 퇴장하는 고수 등 이 밖의 남성 캐릭터도 각자의 욕망을 고스란히 분출하며 화면을 장악한다. 욕망과 본능이 거세된 여성 캐릭터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얼굴이다. 여기서 연상호 감독이 어느 성별에 이입해 상상력을 극대화하는지 엿볼 수 있다.


동시에 약자와 민폐, 방관자 캐릭터의 위치에는 어김없이 여성들이 배치된다. 연상호 감독은 남성을 두 팔과 다리가 온전하고 건장한 주체적 인물로 구성하는 반면, 여성은 성격이나 신체 등에 결함이 있는 수동적 인물로 구성한다. 남성은 노인조차 전국체전 육상 금메달리스트라는 기막힌 설정을 부여받고, 관객이 손가락질하고 미워해도 좋을 인물이나 전형적인 스릴러의 희생양 자리에는 청소년 여성과 장애인 여성을 위치시키는 식이다. 이와 함께 정의로운 남성이 연약한 여성을 구하다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구시대적 전개를 반복한다. 연상호 감독의 캐릭터관은 최근 출간한 좀비물 소설 『닥터 아포칼립스』에서 적나라하게 증명된다. 문제적인 젊은 세대, 위기를 몰고 오는 민폐형 여성,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정의로운 남성 등은 '부산행'에서부터 이어져 온 일관된 인물 구성이다.


그럼에도 작중 동력을 잃어버린 최현희를 연기한 김신록과 그를 보호하는 최현석을 연기한 지창욱의 캐릭터 변주는 매우 매력적이다. 누나는 동생의 눈이 되고, 동생은 누나의 다리가 돼 좀비들 사이를 돌파하는 질주 장면은 장애를 가진 형제의 우애를 다룬 구전 설화 '지성이와 감천이'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비록 이것이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해피엔딩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김신록과 관련된 일련의 비극적 사건을 겪은 후 정통 누아르의 거친 톤을 좀비물로 끌고 오는 지창욱의 감정 변화는 극의 카타르시스를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김신록과 지창욱이 처절하게 합을 맞추는 모습에서는 지게 위아래에서 육체적 한계를 시험했을 배우들의 노고가 그대로 전달된다.


김신록은 지난 20일 국내 시사회 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지창욱과의 '정서적 연결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는 대본에 명시되지 않은 전사를 두 배우가 직접 창조해 낸 정서다. 관객은 감독이 짜놓은 장면이 아닌, 배우가 영혼을 불어넣은 정서에 감동하게 된다.


영화는 연출자의 디렉팅이 배우의 연기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빈 공간이 많은 작품일수록 배우의 역량이 중요한 법이다. 이에 대한 좋은 예시가 김신록과 지창욱이라면, 전지현과 신현빈은 반대 선상에 있다. 극 중 단 한 번도 대면해 촬영한 적이 없다는 전지현과 신현빈은 앞선 두 사람과 달리 감정적 유대를 쌓을 기회가 없었다. 이에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책임지는 두 인물의 원거리 호흡은 배우 사이의 물리적 거리감만큼이나 매끄럽지 못하고 작위적으로 묶인다. 유대감은 결여되고 결말이라는 목적지를 향하는 기능만 장착된 관계다. 연상호 감독은 두 여성 배우의 호흡을 통해 '여성 연대'를 스크린에 구현하고 싶었다고 했으나, 진정한 연대란 하늘에서 툭 하고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한 듯하다. 여성 연대라는 가치를 오직 활자로만 습득해 벌어진 서글픈 불상사다.


기존에 없던 독창적인 세계관을 구축하고, 그에 따른 상업적 수요를 증명해 왔다는 점은 상업 영화 감독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강점이다. '군체' 역시 오락물로써 시각적 볼거리는 넘친다. 그러나 연상호 감독을 필두로 한 K-좀비물이 걷고 있는 길은 익숙한 흥행 공식과 구조 안에 요소를 끼워 넣는 작금의 양산형 웹소설과 미묘하게 겹쳐 보인다. 소재는 매번 화려하게 진화하지만, 이야기는 도리어 퇴보한다. 관객이 K-좀비의 상징인 연상호 감독에게, 그리고 11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하는 전지현에게 진정으로 바란 것이 과연 구시대적 흥행 요소를 얼기설기 짜 맞춘 양산형 블록버스터였을까. 이에 대한 답은 관객들의 성적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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