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부 ‘군체’는 개별 개체를 초월한 네트워크형 공포처럼 묘사된다. 하나가 아니라 전체가 연결된 존재이고, 끊임없이 진화하며,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새로운 생명체처럼 움직인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 거대한 개념을 충분히 설득력 있게 수습하지 못한다. 감염체는 계속 진화하는데, 정작 이를 무너뜨리는 방식은 점점 단순해진다.
결국 공들여 구축한 군체 시스템은 허무할 만큼 손쉬운 방식으로 무너진다. 집단 의식과 연결 구조로 확장됐던 위협은 어느 순간 특정 개체 하나에 의존하는 익숙한 형태로 축소되고, 그렇게 압도적으로 진화하던 감염체들 역시 급격히 힘을 잃는다. 앞서 세워둔 세계관의 룰과 결말의 해결 방식 사이 간극이 너무 크다. 영화의 진짜 비극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클라이맥스에 가까워질수록 드러나는 영화의 망설임도 아쉽다. 전지현은 극 중 감염체의 패턴과 진화 구조를 분석하는 생명공학 교수로 등장한다. 극의 중심축인 만큼,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의 지성과 생존 본능, 액션성이 모두 폭발하는 순간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그 장르적 쾌감을 과감하게 밀어붙이지 못한다. 현실적인 브레인 캐릭터 설정에 지나치게 묶인 탓인지, 전지현의 액션은 끊임없이 제동이 걸리고 어정쩡하게 소비된다. 그런데 영화는 계속해서 그를 위기의 중심으로 밀어 넣는다. 이럴 거면 차라리 지성과 액션, 생존 능력을 모두 갖춘 장르형 히어로로 보다 선명하게 밀어붙였더라면 어땠을까. 어중간하게 현실성을 붙잡는 대신, 캐릭터가 가진 스타성과 에너지를 더 과감하게 활용했다면 영화의 쾌감 역시 훨씬 또렷해졌을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지키지 않아도 될 현실 개연성에는 유독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 정작 반드시 설득해야 할 장르 내부의 개연성은 헐겁게 흘려보낸다. 관객은 군체 의식도, 진화형 감염체도, 만능 히어로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세계가 스스로 만든 규칙을 끝까지 설득해내느냐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향할수록 앞서 어렵게 쌓아올린 긴장과 룰을 스스로 허물어버린다.
그렇게 희생되는 건 결국 캐릭터의 맛과 장르적 양념들이다. ‘부산행’의 마동석처럼 압도적인 매력의 캐릭터도, 익숙한 감정 구조를 비트는 예상 밖의 변주도 없다. 청소년 캐릭터들을 활용한 새로운 생존 서사나, 지창욱·김신록 등 만능 배우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대부분의 에너지를 설정 확장에만 집중한다.
팝콘으로 비유하자면, ‘군체’는 새로운 품종의 옥수수를 개발한 것에는 성공한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차이를 제대로 증명해줄 조리법까지 완성하진 못했다. 결국 튀겨내는 방식도, 소스도 익숙하다. 그래서 막상 입안에 남는 맛은 예상보다 평범하다.
연 감독은 “그저 쉽고 재밌게 즐겨달라”고 거듭 당부했지만, 정작 가장 복잡하게 제자리에 발을 묶어둔 건 자신처럼 보인다. 영화 속 비극이 결국 어긋난 소통에서 시작됐듯, 얄궂게도 ‘군체’의 운명 역시 관객과의 소통 안에서 결정될 듯 보인다. 추신. 전지현 치트키를 이렇게 쓴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