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주 시점: https://theqoo.net/dyb/4203234712
이완은 이상할 만큼 하급생 건물 쪽을 자주 지나갔다.
원래 갈 일도 없는 복도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그 시간에 거기 있었다.
창가에 기대 서 있다가,
멀리서 희주 보이면 그제야 천천히 걸음 옮기고.
“후배님.”
꼭 지금 막 발견한 사람처럼 불렀다.
희주는 그럴 때마다 잠깐 멈칫했다가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완은 그 짧은 인사 하나 듣고도 기분 좋아졌다.
희주가 지나가면 괜히 같은 방향으로 몇 걸음 더 걷고,
별관 수업 있는 날이면 그 근처 복도 서성거렸다.
희주는 몇 번이나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왕립학교가 이렇게 넓은데 왜 자꾸 마주치지?
근데 이완은 끝까지 태연한 얼굴이었다.
“요즘 자주 마주치네요.”
희주가 무심하게 툭 던지자
이완은 잠깐 시선 내렸다가 느리게 웃었다.
“후배님도 그렇게 생각했어?”
꼭 지금 처음 알게 된 사람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그 한마디 듣고 싶어서
매일 같은 시간에 그 복도를 서성이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국궁장도 마찬가지였다.
희주 오는 시간쯤 되면 이완은 이미 와 있었다.
활도 안 들고 창가 쪽 서 있다가
문 열리는 소리 나면 그제야 아무렇지 않은 척 활을 잡았다.
교관들도 웃으며 말할 정도였다.
“자가께서 요즘 국궁장에 사시네.”
“하급생 한 명 들어오면 표정부터 달라지십니다.”
“오늘은 또 몇 시에 오시려나.”
이완은 아닌 척 했지만
희주 들어오는 순간 시선 먼저 가는 건 숨길 수가 없었다.
“후배님.”
희주는 또 반사처럼 허리 숙였다.
그 모습이 좋았다.
안 기죽고, 안 숨고, 그러면서 예의는 또 꼬박 지키는 거.
그래서 자꾸 보고 싶었다.
다음 날도,
이완은 태연한 얼굴로 활만 만지작거렸지만
시선은 이미 문 쪽으로 가 있었다.
잠시 뒤 문 열리는 소리.
희주였다.
이완은 자기도 모르게 숨고 웃었다.
그걸 본 교관이 기막혀했다.
“자가께서 저렇게 좋아하시는 건 처음 보네요.”
[왕립 대학교]
왕립학교 졸업하면 끝날 줄 알았다.
안 끝났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문득문득 성희주 생각이 났다.
그래서 결국 한 번씩 보러 갔다.
수업 끝나는 시간 맞춰 근처 지나가고,
카페 창가에 앉아 기다리고
그러다 어느 날이었다.
희주가 어떤 남자랑 붙어 웃으며 걸어가는 걸 봤다.
그 순간 기분이 진짜 이상했다.
자기도 왜 그런지 몰랐다.
결국 그날 새벽,
이완은 못 참고 대나무숲에 익명 글 하나 올렸다.
- 성희주 남자친구 있나요?
올리고 나서도 혼자 댓글 새로고침만 계속했다.
그러다 달린 댓글.
- 없는 듯?
그거 보고 혼자 안심했다.
그런 자기가 한심하고도 웃겨 헛웃음이 났다.
진짜 어이없게.
몇 분 뒤 새로운 댓글 하나.
- 근데 ㅇㅇ과 민정우랑 맨날 붙어다니는 건 봄ㅇㅇ
그 순간 이완 표정이 바로 굳었다.
하필 민정우였다.
그날 이후 괜히 정우한테 슬쩍 물어봤다.
“너 요즘도 성희주랑 친해..?”
정우는 바로 눈치챘다.
근데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친하지.”
“성희주 요즘은 다른 사람이랑 다니던 거 같은데.. 혹시 누구일까..”
정우는 한참 이완을 쳐다보다가 툭 말했다.
“…걔는 그냥 동기.”
그 말 듣는 순간 이완이 진짜 티 나게 안도해서
정우는 괜히 더 짜증 났다.
[4년 후]
회의 도중이었다.
누군가 옆에서 너무 놀라 작게 말했다.
“어? 성희주 열애설 났네.”
이완 손이 멈췄다.
결국 회의 끝나자마자 혼자 기사를 다시 찾아봤다.
<캐슬그룹 성희주, 갤럭시 리더와 심야 데이트 포착>
사진 속 희주는 웃고 있었다.
그게 이상하게 계속 눈에 밟혔다.
결국 이완은 다시 정우를 찾아갔다.
정우는 이완 얼굴 보자마자 바로 눈치챘다.
“…또 성희주냐.”
이완은 대답 안 했다.
대신 휴대폰 화면만 내밀었다.
정우가 기사 제목 읽더니 짧게 한숨 쉬었다.
“너는 진짜.”
잠깐 조용해졌다.
이완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물었다.
“…그래서 사실이야? 너 성희주랑 친하잖아"
“…아니야.”
“진짜?”
“내가 보기엔 그래.”
그 순간 이완 표정이 풀렸다.
진짜 티 나게.
정우는 그 표정을 보고 괜히 짜증이 났다.
희주를 얘기하는 몇 년째 저 얼굴이 똑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