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얇은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각자의 몫으로 남겨진 짙은 그늘을 씹어 삼키는 두 사람. 사회의 잣대로 보자면 이들의 삶은 참담한 밑바닥이다. 하지만 이 누추한 방 안에서는 무정한 세상 아래 기댈 곳 없는 인간이 기필코 다른 인간을 살려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가장 숭고한 형태의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
형 진만의 시간은 멈춰 있다. 뜻하는 대로 유능하게 흘러가던 그의 인생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순수하게 토해낸 시(詩) 한 편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부터 속절없이 꼬여버렸다. 글만으로는 가족의 밥을 먹일 수 없었고, 확신했던 교수 임용마저 좌절되며 그는 철저한 무능을 맛봤다. 그 대가로 자신도 모르게 입양 간 딸 영실에 대한 죄책감은 그의 숨통을 조이는 돌덩이가 됐다. 이제 전직 시인인 그는 세상과 단절된 용접공이 돼 썰렁한 식탁 위 소주 한 병에 의지해 스스로를 천천히 죽여가는 중이다.
동생 동만의 시간은 너무나 소란스럽다. 20년째 데뷔조차 하지 못한 영화감독 지망생인 그는, 잘난 영화 동아리 8인회 멤버들 사이에서 가장 초라한 존재다. 그래서 그는 쉴 새 없이 떠든다. 남들이 자신을 형편없이 여긴다는 자격지심을 가리기 위해, 가만히 있으면 당장이라도 투명 인간처럼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혀를 놀린다.
그러나 쉼 없이 장광설을 늘어놓는 동만의 껍데기 속에는, 기계조차 판독하지 못한 '7%의 간절함'이 숨어 있다. 분노와 좌절로 둔갑해 있지만, 사실 그것은 "제발 나 좀 살려달라"는 처절한 구조 신호다. 극단적 시도를 밥 먹듯 하는 형을 곁에서 지켜내야만 했던 동만 역시 속으로는 누군가 자기를 붙잡아주길 미치도록 바라고 있었다.
자신도 가라앉고 있는 주제에, 동만은 형이 혼자 죽어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형의 집에 굳이 얹혀사는 것도, 소주로 끼니를 때우는 형에게 꾸역꾸역 찌개를 끓여주고 김치볶음밥을 들이밀며 "밥이랑 같이 먹어"라고 잔소리하는 것도 모두 위태로운 형을 살리기 위함이다.
이 장면을 보며 이영광 시인의 '사랑의 발명'을 반추한다.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라는 시구는 삶의 벼랑 끝에 선 진만과, 그 곁에서 날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동만의 처지를 떠올리게 한다. 당장이라도 구덩이를 파고 누워 곡기를 끊을 것 같은 형을 보며 동만은 두려움에 매일 가슴을 졸였을 것이다. 소주만 찾는 형의 밥상에 따뜻한 찌개를 올리고 기필코 그 곁에 머무는 방식으로 생의 끈을 단단히 쥐여주면서 말이다.
보잘것없는 단칸방에 갇힌 두 실패자의 삶이라고 누군가는 손가락질할지 모른다. 그러나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은 아득한 절벽 끝에서, 기어이 서로의 손을 움켜쥐고 '그래도 살자'며 끌어안는 이 형제의 애틋함이야말로 세상 그 어떤 구원의 서사보다 찬란하게 빛난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이들의 형제애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높은 곳에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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