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촬영이 끝난 후 모두가 가고 저랑 한강공원에 둘만 남아 벤치에 앉아서 한 시간 넘게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언급한 것처럼 태서는 다양한 감정을 쏟아내는 사람이 아니다. 한정된 폭 안에서 어떤 변화를 줘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이 부분에 대해 길게 얘기를 했는데, 박진영 배우는 어떤 일을 할 때 가지게 되는 긴장을 전파하려 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고민을 한다. 그것을 크게 느꼈던 순간이 있다. 은아를 10년 만에 목격하고 난 후에 이수역에서 1분간 정차한다. CCTV로 은아를 보고 스쳐 지나간 후 은아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있다. 그렇게 통화하고 은아를 동작역에서 마주한다. 10년 만에 만나고 목소리를 듣는 일련의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한번은 크게 보여주는 구간이 있으면 하는데 그게 어디면 좋겠는지를 저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이게 촬영 첫째 주었다. 태서의 감정 단계를 생각했을 때 저는 진영 배우가 얘기했던 구간보다 그것이 지난 후 아솔(박세현 분)이 열쇠로 잠금을 풀 때 기억이 치고 올라오면 어떨까 했다. 우연히 마주치고 돌아가거나 목소리를 들었지만 금방 전화를 끊어야 할 때 보다는 이제 다 지나갔다고 느낀 순간 기억이 치고 들어올 때 10년 동안 가졌던 감정을 터트리면 어떨까 싶었다. 제가 답을 정해놓고 얘기한 것이 아니라, 배우가 느끼는 감정의 단계들을 짚어보고 배우의 질문을 통해서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는 이것이 박진영 배우가 대단히 고민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연기로 펼쳐낼 수 있는 '좋은 배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희의 관계가 이미 그렇게 형성되어 있었기에 촬영 첫 주에 이런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