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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씨네21/특집] 한국영화 제작 지원 사업과 영화진흥위원회의 역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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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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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감독이 연출하고 김남길박보검, 이현욱 배우가 출연하는 <몽유도원도>의 첫 스틸이 공개되자 화제였다. 눈이 내리는 겨울, 갓을 쓰고 흰 도포를 입은 김남길, 박보검 두 배우의 모습이 담긴 스틸이었다. 누군가는 이 사진을 보고 <택시운전사>(2017) 이후 오랜만에 장훈 감독이 내놓는 신작이란 사실을 떠올릴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김남길 배우의 사극으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충무로의 제작자들은 2025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신설한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 지원 사업’에 발탁된 작품이란 점을 반드시 떠올린다. <몽유도원도>는 2025년 2월 말 영진위에 지원서를 접수하고, 함께 접수된 119편의 작품과 함께 예비심사를 받아 20편으로 추리는 과정을 거친 뒤, 5월 중 피칭과 면접 과정을 거쳐 최종 선정됐기 때문이다.


<몽유도원도>는 영진위의 중예산 제작 지원작으로 최종 선발된 뒤에도 ‘산 넘어 산’을 헤쳐나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영진위의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 지원 사업을 충실히 이행하려면, 발탁 이후 3개월 이내에 메인 투자배급사와 계약을 맺어 남은 투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영진위는 2026년 같은 사업에서는 메인 투자배급사와의 계약 시한을 3개월에서 4개월로 늘렸다.-편집자). 그리고 약정일로부터 15개월 이내에 촬영을 마쳐야 한다는 점도 이 영화가 넘어야 할 ‘높은 산’이다. <몽유도원도>가 무사히 메인 투자처로 대형 투자배급사 플러스엠과 손을 잡고 촬영까지 마쳤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영진위는 중예산 제작 지원에 선정된 영화가 극장에 걸려야 하는 시기까지 정해놓았다. 영진위와 최종 계약을 맺은 그 순간부터 2년 이내에 극장에서 개봉해야 한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는 말이 있다. 모든 영화가 순탄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지만 영진위의 중예산 제작 지원 사업을 현실적으로 충실히 이행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일례로 <몽유도원도>와 함께 중예산 제작 지원 다군(순제작비 60억원 이상 80억원 미만)에 선발된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은 영진위 지원 제도 신청을 자진 취하하고 넷플릭스로 선회했고, 변영주 감독의 <당신의 과녁>도 3개월이란 짧은 기간 내에 메인 투자사를 확정하지 못해 자진 철회했다.


한국영화계의 제작 편수가 급감하고 영화를 만들 기회가 적어진 현재, 영진위의 다양한 제작 지원 제도는 ‘가뭄의 단비’란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 기회를 잘 살려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완성해가고 있는 연출자도 적지 않다. 지난해 신설된 중예산 제작 지원 가군(순제작비 20억원 이상 30억원 미만)에 발탁된 정지영 감독의 <내 이름은>은 영진위의 일정에 맞춰 프로덕션을 잘 마무리하고 2026년 제7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초청됐다. 중예산 제작 지원 나군(순제작비 30억원 이상 60억원 미만)에 선정된 권오광 감독의 <여섯 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도 현재 촬영 중으로 알려져 있다. 2025년 중예산 제작 지원 제도의 규모는 99억원이었던 반면, 2026년에는 198억원으로 늘었다. 최종 선정작 수도 지난해 10편 내외에서 올해는 18편 내외로 많아졌다.


신설된 중예산 제작 지원 제도나 AI 영화 제작 지원 외에도 늘 영진위가 해오던 독립영화 제작 지원도 꾸준하다. 2026년 상반기 독립영화 제작 지원 장편에는 <욕창> 심혜정 감독, <성적표의 김민영> 이재은·임지선 감독, <메기> 이옥섭 감독, <애비규환> 최하나 감독의 차기작을 비롯해서 14편의 작품이 지원을 받았다. 영화감독 A씨는 “영진위는 지금 환경 안에서 상업영화, 독립영화를 가리지 않고 작품을 해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라며 새롭게 신설된 영진위의 제작 지원 제도, 늘 유지되던 지원 제도 모두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현상을 들려주었다. 그는 “영화산업의 투자자가 돈이 없고 영화에 투자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덧붙였다.


영진위의 ‘마중물’ 역할이 반갑지만 영화인들 사이에서 불만 섞인 목소리도 있다. 우선 기성 영화인들 입장에서는 중예산 제작 지원 사업의 수행 기간이 짧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상업영화를 여러 편 제작한 제작자 B씨는 “배우가 캐스팅되지 않은 상태에서 메인 투자에 나서는 투자배급사는 없다”라면서 “주연배우 1명을 캐스팅하려고 배우 1명에게 시나리오를 건네면 답변을 받기까지 한달은 족히 걸린다”라고 캐스팅과 맞물려 있는 영화제작의 특수성을 짚어 비판했다. 현재 촬영 중인 배우라면 시나리오를 읽지 않는 경우가 많고, 현재 배우가 쉬고 있다 하더라도 배우와 매니저, 매니지먼트 대표까지 많은 사람들이 시나리오를 읽고 검토하는 데까지 긴 시간이 든다는 것이다. 제작자 B씨는 “배우 두세명에게만 시나리오를 줘도 반년은 후딱 간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영진위는 배우 캐스팅이 이뤄져야 가능한 메인 투자사와의 계약까지 4개월의 기간을 준다. 영화 제작자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짧은 기간 내에 메인 투자배급사가 투자를 결정할 만큼 매력적인 배우를 캐스팅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제작자가 바쁘게 뛴다고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로 몇몇 제작사들은 영진위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되고도 자진 철회하였다.


독립영화 지원 제도도 현실적인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다. 그 자신도 영화감독인 백재호 영화인연대 공동대표는 “영진위의 지원금을 받으면 시간이 없다”라고 말한다. “독립영화도 영진위 제작 지원비 안에서만 만드는 게 아니고 해외에서 펀딩도 받고 투자도 받아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백 대표는 이처럼 빠르게 영진위가 지원 제도 사이클을 유지하는 데 대해 다음과 같은 유의미한 이야기를 남겼다. “영화산업이 어려워졌다는 건 결국 관객이 줄었다는 것이다. 빠르게 매년 영화를 계속 공급한다고 해서 관객이 늘어날 것인가 의문이 든다.”


홀드백, 영화 티켓값 객단가, 지역영화 예산 등 영진위가 풀어나가야 할 난관들은 도처에 산재해 있다. 영진위는 2024년에 지역영화 예산을 전액 삭감한 이후로 회복하지 않고 있으며 홀드백, 영화 티켓값 객단가와 관련해서는 이렇다 할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많은 영화인들이 영화계가 어려울 때 영진위는 무얼 하는가 주시한다. 그리고 영진위의 책임과 역할을 묻는다. 그만큼 한국영화계가 영진위에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2022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일본영화의 발전을 위해 프랑스의 국립영화영상센터(The French National Centre of Cinema, CNC)와 같은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기자회견을 연 적 있다. 그 과정에서 그는 한국의 영진위를 가능한 유사 모델로 거론했다. 어쩌면 한국영화계는 다른 나라의 창작자들이 부러워할 만한 공공기관을 가진 것일 수도 있다. 2026년 다시 한번 한국영화계가 전에 없던 위기를 맞았고 영진위의 어깨가 무겁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영진위와 영화인들간의 긴밀한 협력을 기대하고 또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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