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적인 영화 투자배급업의 노하우와 레진코믹스, 봄툰의 강력한 IP를 보유한 키다리스튜디오가 숏드라마 플랫폼 레진스낵을 2월4일 론칭했다. 1분 내외의 세로형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장에서 이들은 어떤 차별화를 꿈꿀까. 키다리스튜디오 영상사업부 숏드라마 제작을 담당하는 이아사 부장, 영화 데뷔를 준비 중에 신작 <피치못할 게이다!> <작은 성>을 연출하며 숏폼의 문법을 몸소 체험한 김나경 감독에게 대화를 청했다.
- 레진스낵에 이준익, 이병헌 같은 거장 감독들이 참여하며 화제를 모았다. 전통적인 영화 투자배급업을 하던 키다리스튜디오가 숏드라마 시장에서 내세우는 핵심 전략은 무엇인가.
= 이아사_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유수의 제작진이다. 우리가 원래 영화 투자배급업을 하던 곳이다 보니 영화인들과의 작업이 수월했고, 그들 역시 우리를 신뢰하기에 숏폼의 가능성을 놓고 호기심과 열정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었다. 둘째는 IP의 힘이다. 타사와 차별화되는 지점인데, 우리가 보유한 레진코믹스와 봄툰의 웹툰 IP를 적극적으로 영상화하고 있다. 웹툰 자체가 컨셉과 스토리가 각양각색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르도 다양해졌다.
- 거장 감독들이 이런 뉴미디어 포맷에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꾸준히 유입될 수 있을까. 반대로 데뷔 경로가 막힌 신인감독들에겐 어떤 기회가 될까.
= 이아사_여러 감독들을 만나보니 뉴미디어에 대한 큰 호기심과 희망을 가지고 있더라. 곧 이원석 감독님의 신작도 공개된다. 기성 영화감독 중엔 이 작업에 참여하는 이유가 숏드라마를 함께 작업하면서 신인감독들이 데뷔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기 위함인 분들도 있다. 현재 우리 라인업을 보면 촉망받는 신인감독들이 대부분이다. 영화시장이 어려워지며 기회를 잃었던 재능 있는 감독들에게 출세작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취지다.
- 두 사람은 이번 레진스낵 프로젝트에서 만나 신작 두편을 함께한 건가? 김나경 감독의 숏드라마 두편도 함께 소개한다면.
= 이아사_사실 김나경 감독과는 원래 30분 분량의 8부작 미드폼 드라마를 1년 넘게 같이 준비하던 사이였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며 서로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다 키다리스튜디오에서 레진스낵이라는 숏드라마 플랫폼을 론칭하게 됐고, 김 감독에게 이 재미있는 문법을 같이 한번 시도해보자고 제안했다.
= 김나경_원래는 제작사 어바웃필름과 함께 미드폼 프로젝트를 개발하던 중 이아사 부장님이 숏드라마 제안을 주셨는데, 창작자로서 새로운 포맷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피치못할 게이다!>는 좋아하는 남자마다 게이였던 여주인공의 좌충우돌 캠퍼스 로맨틱코미디, <작은 성>은 나르시시스트 엄마가 딸의 젊음을 질투해 딸의 남자 친구까지 뺏으려는 막장 로맨스 심리 스릴러다. <작은 성>은 특히 숏드라마에선 보기 쉽지 않았던 내용인데 막장 드라마식의 자극을 넘어 원작이 가진 주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각색하려 노력했다.
- 김나경 감독은 오랫동안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서 데뷔를 준비해왔다. 1~2분 안에 승부를 봐야 하는 숏폼의 속도감에 적응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 김나경_우선 세로 화면이라는 물리적 제약이 크다. 영화는 양옆의 공간감을 활용하지만 숏드라마는 공간이 주는 정서보다는 인물의 표정과 대사만 강조되고 액션-리액션의 호흡이 훨씬 중요해지는 특징이 있다. 예상은 했지만 1분은 정말 짧다. 그 한편 안에서 갈등이 시작되고, 전개되고, 다음 화를 결제하게 만드는 유도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 모바일 시청 환경, 50부작 구성 등도 새롭게 배웠고 저예산의 촬영 여건에서 오는 고충도 만만찮았다.
-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가.
= 김나경_우선 스케줄이 정말 타이트하다. 장편영화 한편 분량인 90~100분을 단 7~10회차 만에 찍어야 한다. 테이크를 많이 갈 수도 없고, 카메라나 조명을 세팅하는 짧은 시간 동안 배우들과 바로 리허설하고 곧장 촬영에 들어가는 속도전이다. 이는 앞으로 산업이 확대되면서 개선될 부분이라고 본다. 기술적으로는 사운드 믹싱이 가장 큰 복병이었다. 영화처럼 저음부를 강조하거나 은유적인 사운드를 쓰면 모바일환경에서는 아예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대사를 훨씬 또렷하게 살려야 할 뿐 아니라 지루할 틈이 없도록 음악을 쉼 없이 깔게 된다. 이번 두 작품에 들어간 음악만 80~90개에 달할 정도다.

- 투자·제작사 입장에선 퀄리티를 높이려다 보면 숏드라마를 택한 이유인 경량 프로덕션의 장점이 희석될 텐데 이 균형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 이아사_저예산이라는 건 장단점이 정말 확실하다. 매 회차가 다 돈이라서 제작하는 입장에선 쉽지 않다. 하지만 저예산이기에 오히려 캐스팅에 목매지 않고 신인감독과 신인배우를 과감하게 쓸 수 있는 거다. 키다리스튜디오가 영화를 해왔던 곳이라 더 크게 느끼는 건데, 영화는 한편에 3년씩 걸리지만 숏드라마는 6개월이면 투자부터 공개까지 끝난다. 이 빠른 회전이 가장 큰 매력이다. 다만 영화감독들의 대본은 영화처럼 길게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우리는 숏폼에 맞는 속도감을 찾으려고 프리프로덕션(대본 수정) 기간을 다른 데보다 훨씬 길게 가져간다.
- 동료 창작자들 사이에서 숏폼 작업에 대한 편견도 없지 않았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장에 뛰어든 감독으로서 체감하는 숏폼의 매력은 무엇인가.
= 김나경_주변에서 ‘그거 왜 하냐’는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숏드라마가 데뷔를 준비하는 신인들에게 실질적인 선택지를 주는 귀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영화 업계가 주춤하면서 우리 세대가 입봉의 기회를 잃고 일시 정지된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숏드라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소중한 진입로가 되어준다. 또한 창작자 입장에서 영화로는 시도하기 힘든 장르, 예를 들어 막장 요소가 섞인 스릴러나 BL 같은 영역에 과감히 도전할 수 있다는 점도 즐겁다. 아직은 과도기지만, 레진스낵처럼 창작자의 자유도를 보장하고 퀄리티를 고민하는 플랫폼이 늘어난다면 숏드라마도 충분히 하나의 독립된 서사구조를 가진 드라마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본다.
- 중국 숏드라마가 시장을 선점한 상황에서 K숏드라마만의 차별점은 무엇이 될까.
= 이아사_중국은 AI 활용이나 예산 대비 높은 퀄리티 등의 측면에서 그들만의 색깔이 강하다. 우리는 굳이 똑같은 길을 갈 필요가 없다. 한국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좋은 웹툰 원작을 결합해 넷플릭스에 <킹덤> 시리즈가 있었듯이 인식의 판을 바꿀 만한 작품을 내놓으려 한다. 특히 기존 IP로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BL/GL 장르도 숏드라마로 전개해 글로벌 팬덤을 공략할 예정이다.
- 앞으로 레진스낵의 목표는 무엇인가.
= 이아사_핵심은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지난해에 약 38~40편을 제작했는데 올해는 100편 제작이 목표다. 한국의 신인 배우와 감독들이 글로벌한 인지도를 쌓을 수 있는 통로가 되었으면 싶다.
= 김나경_숏드라마 시장은 아직 과도기지만, 레진스낵이 창작자의 자유도를 보장하고 퀄리티를 중시하면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 것으로 기대한다. 나 역시 차기작으로 BL 장르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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