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기술로 더 많이 연결되고 빠르게 데이터가 오가는 시대, 영상으로 이야기를 실어나르는 매체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인간의 집중력이 점점 짧아져서일까. 1~2분 사이에 한회가 끝나는 숏드라마가 영상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 영화계와 방송계 모두 숏드라마에 더듬이를 바짝 세운 풍경이다. 제작사에서 숏드라마 제작과 수입 업무를 담당하는 A씨는 “지금 다들 난리”라고 현 상황을 요약한다. “한때 넷플릭스 코리아가 한국 작품을 많이 제작하면서 영화계와 방송사가 넷플릭스 작품을 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것처럼 숏드라마가 새로운 먹거리로 떠올라 여러 작품들이 동시에 제작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우선 영화계에서는 키다리스튜디오의 향방이 눈에 띈다. 오랫동안 영화 투자배급업을 해온 뿌리를 가진 키다리스튜디오는 산하 기업으로 웹툰과 웹소설 IP를 대거 보유한 레진엔터테인먼트, 봄툰 등을 바탕으로 숏드라마계에 뛰어들었다. 2월4일 숏드라마 플랫폼 레진스낵을 론칭, 천만 영화 <극한직업>을 연출한 이병헌 감독의 숏드라마 <애 아빠는 남사친>을 비롯한 10개의 숏드라마 전편을 ‘드롭 다운’했다. 키다리스튜디오는 매달 이처럼 새로운 숏드라마를 계속 공급할 계획이다. 향후 라인업으로는 천만 영화 <왕의 남자>로 유명한 이준익 감독의 첫 숏드라마 <아버지의 집밥>이 있고, 드라마 <이혼보험>을 공동 연출한 최보경 감독이 레진코믹스의 슈퍼 IP을 숏드라마화한 조선판 BL <야화첩>도 포함돼 있다.
천만 영화 <파묘>를 투자배급했던 쇼박스도 숏드라마를 제작한다. 쇼박스는 결혼을 앞두고 실종된 신부를 찾는 세 친구의 이야기를 다룬 <브라이덜샤워: 사라진 신부>와 무명 아이돌과 무당의 로맨스를 그린 <망돌이 된 최애가 귀신 붙어 찾아왔다!> 촬영을 마쳤고, 상반기 내에 공개할 예정이다. 쇼박스는 한국 숏드라마 플랫폼 ‘비글루’와 중화권 숏드라마 플랫폼 ‘드라마박스’와 업무협약을 맺고 국내외로 작품을 공개할 예정이다.
전통 영상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만 숏드라마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다. 카카오는 앱 내에 ‘숏드’라는 이름의 탭을 만들어 숏드라마를 무료로 공급하고 있다. 금융 플랫폼 토스도 ‘토스 스트림’이란 특허를 내고 짧은 콘텐츠에 관심을 드러냈으며, 현재는 토스 앱 내에 비글루와 쇼타임을 연계해 서비스 중이다. 국내 기업이 만든 숏드라마 플랫폼만 해도 여럿이다. 1세대 한국 숏드라마 플랫폼 비글루, 게임 머니에 기반을 둔 폭스미디어에서 론칭한 숏폼 플랫폼 ‘탑릴스’, K팝 아티스트와 숏드라마를 결합하는 플랫폼 ‘킷츠’, 웹툰·웹소설 강자 리디가 일본 시장을 타기팅한 숏드라마 플랫폼 ‘칸타’ …. 그야말로 숏드라마 플랫폼의 춘추 전국 시대다.

숏드라마가 태동한 곳은 중국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숏드라마가 왔다. 바이러스가 퍼지는 걸 막기 위해 줄줄이 도시가 봉쇄되자 사람들은 자연스레 영상 콘텐츠를 찾았고, 국가 정책상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스트리밍 이용이 제한되자 갈급함을 느낄 때 숏드라마가 돌파구가 돼준 게 계기였다. 3천만뷰를 달성한 숏드라마 <폭풍같은 결혼생활>을 연출하고 ‘숏드라마계의 봉준호’라는 수식어를 가진 이창우 감독은 당시 중국 현지에서 숏드라마의 출현을 목도했다. “중국 콘텐츠 건으로 출장갔다가 상하이가 봉쇄되고 한국으로 들어올 비행기가 없어서 8개월간 중국에 갇힌 적 있다. 그때 숏드라마가 나오기 시작하는 양상을 보면서 ‘이상한 드라마가 나왔군’이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콘텐츠들이 쌓여갔다. 한국으로 돌아와 방송사 드라마 한편을 마치고 나니 숏드라마가 완전히 자리를 잡았더라.” 그가 설명하는 숏드라마가 산업으로 자리 잡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그러니까 2년 사이 벌어진 일이다. 그쯤 되자 한국에서도 숏드라마가 돈을 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2024년 비글루에서 공개된 <해야만 하는 쉐어하우스>는 최초로 큰 수익을 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숏드라마 유행은 중국의 경제구조, 사회문화적 맥락과도 맞물려 있다. “중국도 경제가 안 좋을 때 유쿠나 아이치이 같은 중국의 대형 스트리밍 플랫폼 신작들이 많이 줄었다. 그 틈새를 저예산으로 중국 시청자들이 느끼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여러 소재의 숏드라마가 많이 비집고 들어갔다.” 이창우 감독은 몇 가지 갈래로 중국 숏드라마의 소재를 분류한다. ‘돈 있는 자들끼리 싸우다 무너지는 막장 소재’, ‘부자가 빈자를 무시하다가 처절하게 당하는 복수극’, ‘22개의 성마다 대학 입학 시험 문제가 달라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다루는 입시 관련 학원물’, ‘전통적인 로맨틱코미디’ 등이다. 분석하자고 달려들면 숏드라마를 단순히 ‘막장’이라고 분류하기 어려운 중국의 사회문화적 맥락이 녹아 있다.
중국 내 숏드라마 규모가 영화산업을 넘어서면서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숏드라마를 이야기할 때 중국과 함께 언급되는 국가는 미국이다. 한국의 시나리오작가 B씨는 북미 시장을 노리고 “<신비한TV 서프라이즈>처럼” 외국 배우들을 데리고 숏드라마를 만든 적 있다. 그는 “페이퍼 북으로 할리퀸 로맨스 소설을 소비하던 이들이 요즘은 숏드라마를 소비하는 것 같다”라고 분석한다. 비슷하게 제작사 PD C씨는 “미국에서는 드라마 웹소설 구매가 활발하고, 스토리 로맨스 게임 구매가 익숙한 문화”라면서 “미 중부 지방의 40대 기혼 여성들이 아이들을 학교 보낸 뒤 모바일게임을 소비하거나 숏드라마를 소비하는 데 익숙하다”라고 설명한다. 그는 “중국 숏드라마계에서는 막장 코드가 잘 통한다면, 북미 시장에서는 로맨스가 잘된다”라고 덧붙였다.

숏드라마의 춘추 전국 시대에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계 인력들이 뛰어들지만 그들에게 드리워진 그림자도 분명하다. 바로 열악한 제작 환경이다. 숏드라마의 제작비 규모는 3천만원부터 3억5천만원까지 다양하지만 평균값은 1억5천만원, 최고 금액은 3억5천만원대다. 숏드라마 3편을 완성한 시나리오작가 B씨는 1억원대의 숏드라마 현장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대개 많아 봤자 6회차다. 8시간 노동으로는 완성할 수 없다. 무조건 12시간 안에 찍어서 6~7회차로 끊어야 제작비 1억원을 맞출 수 있다.” 그가 말하는 많은 숫자 가운데 ‘12시간 안’이란 숫자는 가혹하게 들린다.
그렇다면 숏드라마 시장이 지금보다 활발해져 전체 파이가 커지면 상황이 개선될 수 있지 않을까. 현장에서 이미 숏드라마를 만들고 있는 이들은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이창우 감독은 “3억5천만원만 넘어가도 사실 숏드라마보다는 웹드라마 제작비다. 제작비가 그보다 커지면 플랫폼이 이끌어내야 하는 유료 결제자 수가 달라진다”라면서 “제작비가 적어 고통스럽지만 변하지 않을 것 같다”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들려줬다. 제작사 PD C씨는 숏드라마의 유통 구조를 들어 숏드라마의 제작비의 한계를 설명한다. “숏드라마는 마케팅 베이스다. 인스타그램이나 메타와 같은 SNS에서 콘텐츠에 대한 바이럴마케팅을 진행하고, 그걸 본 사람들이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앱에 접속해 결제하고 시청하는 형태다. 그래서 숏드라마는 제작비보다 마케팅비가 더 많이 투여되는 구조다.” 숏드라마는 넷플릭스나 디즈니+처럼 플랫폼에 구독하고 작품을 즐기는 구조와는 판이하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이창우 감독도 이런 제작비는 “고통스럽다”라고 말한다. “공중파 드라마였다면 1개의 신을 찍을 수 있는 시간에 4신 정도를 찍어야 한다. 적은 제작비에 적은 인원으로 더 빨리 찍어야 하니 현장에서 힘들다”라는 것이다. 영화와 OTT 시리즈를 경험하고 숏드라마 두편을 촬영한 촬영감독 D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계약서를 쓰고 노동시간을 지키려고는 하지만, 완벽히 지키기에는 불가능한 스케줄이다. 1~2분 내외 러닝타임이라고 해도 다 합치면 1시간30분에서 2시간 분량을 만들어내야 하는 건 똑같다. 게다가 밤 신도 있고 낮 신도 있기 때문에 촬영이 쉽지 않다.”
인터뷰로 접촉한 영화, 드라마계 플레이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숏드라마를 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숏드라마는 많은 영화와 드라마계에는 하나의 기회일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촬영감독 D씨는 “들어오면 할 것”이라고 말하며, “한번 제대로 해보고는 싶다”라고 말하는 시나리오작가 B씨는 잘 맞는 제작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제작사 PD C씨는 “숏드라마는 영화나 드라마의 단순한 대체 시장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숏드라마란 새로운 세계가 국경을 넘어 이미 우리 손 안에 들어왔다. 천만 영화를 만든 이준익, 이병헌 감독은 무엇을 바라보고 이 미지의 신대륙에 발을 디디기로 결심한 걸까. 아직은 위태로운 부분이 있어 보이고, 구조적인 한계도 뚜렷하지만 그럼에도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인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만약 과감한 개척을 통해 새롭게 열린 생태계가 보다 비옥해진다면 이전과는 다른 새롭고도 준수한 작품이 우리 눈앞에 펼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 산업이 어떻게 나아갈지, 지도를 그리는 심경으로 찬찬히 관찰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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