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참 불호인 게, 배경으로 삼은 시대의 정치체계 근간을 흔드는 걸 싫어하거든
내가 보수 보다는 진보에 기울어 있는 인간임에도
픽션일지라도 시대배경을 한 번 설정했다면... 그 안에서 그렇게 굴러가야만 하는 여러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극 중 세계관을 존중하기 위해서라도 핍진성을 지켜주길 바란단 말이야
그래서 신분고하를 무시하고 언행이 뒤죽박죽이거나 정치체계를 망가뜨리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심해지면 결국 역사왜곡으로 빠지기도 쉽고...
근데 참 이상하다 ㅋㅋㅋㅋ
이 드라마는 시대 배경 근간을 뒤흔들다 못해 아예 바스라뜨릴 지경인데 ㅋㅋㅋㅋ 근데 오히려 마음이 후련하고 만족스러움
퓨전사극임에도 시대배경 사회시스템을 철저히 지키면서도 남여주 사랑을 완성시키는 장치를 만들어서 극적으로 위기 탈출하는 타드도 만족스러웠는데
이건 그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오히려 그 당시 사회 안에서 비현실적이다 싶은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캐릭터도 천방지축 죄다 날뛰고 당대에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개혁적 사상을 마구마구 훈계조로 집어넣는데도
그럼에도 오히려 그 거침없는 섞어찌개 맛이 좋다
시대배경을 철저히 따르는 동양풍 로설
vs 동서양 혼합짬뽕 남여주 다 이겨먹어라 로판
이렇게 각자 추구하는 맛이 다른 퓨전사극을 본 느낌?
은애도적은 동양풍 로설 보다는 혼합짬뽕맛 로판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어...
그런데 그게 참 괜찮다
캐릭터 대사빨로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 스리슬쩍 꿀꺽 이만하면 이런 시대 뒤흔들기는 소화가능하시죠? 이렇게 나도 모르게 작가에게 설득된 장면을 여럿 만났어
또 캐릭터 관계를 묘사하는 씬 배치도 아 저기서 저게 말이 돼? 저 시대에 저게 가능하냐? 싶은데 캐릭터들이 워낙 올곧게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신념과 감정에 충실해서... 쟤라면 저럴 수 있긴 해 납득이 되더라
그 시대에도 어쩌면, 차마 못다 핀 꽃이고 짓밟힌 들풀이었을지언정
홍길동전을 쓰고 읽은 그 민초들의 마음 한 켠엔
홍은조나 이열 처럼 신분제를 벗어나 인간 대 인간으로 그저 똑같이 태어난 목숨 하나만으로 뜻을 펼치고 사랑하고 아끼고 싶은 그런 사람들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게 아주 극도로 적은 열 손가락에 꼽을 숫자밖에 안 되었을지 몰라도
어쩌면 이 드라마에서처럼 그 시대에도 신분과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은, 영혼은, 존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설득되고 싶지 않은데 설득되고
불호인데도 호감을 충족시켜주는
역설적인 카타르시스를 느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