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훈육 중에 일어난 사고사' 로 남기기 위해서였음
어떤 방법이든 사형은 안 되지 정조 정통성에 흠이 가니까 (자결을 먼저 권했지만 신하들이 사도세자를 말려서 실패)
어떤 방법이든 암살도 안 되지 무려 세자가 죽었는데 조사를 안 해볼 수가 있음?
어떤 방법이든 많은 사람이 연루되어서도 안 되지 나중에 정조가 복수할테니까 그래서 뒤주 못 박는 것도 영조가 직접 함 (정조가 복수할 수 없는 유일한 인물)
어떤 방법이든 명분이 중요했음 그래서 효의 나라 조선에서 '아비가 아들을 훈육하다가 불운하게 일어난 사고사' 로 위장된 거임
실제로 사도세자가 죽은 뒤 영조가 쓴 비문에 우리 아들 버릇 좀 고쳐보려다가 이렇게 됐네ㅜㅠㅠㅠ흑흑ㅜㅜㅠㅠ 이렇게 적혀있음
그냥 뒤주가 저 당시에 왕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진짜 최선의 방법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