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생 충청남도 온양 출생. 그의 영화입문은 무척이나 파격적이다. 독립영화협의회 워크샵 과정이외에 정규 영화수업을 거의 받지 않은 그는 그야말로 혜성처럼 영화계에 등장했다. 물론 감독은 1993년에 박찬욱 감독을 만나 <삼인조>의 연출부를 지내며 악기점 점원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8천여 만원이라는 초저예산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비평적 찬사를 받음으로써 그는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를 일거에 허물고 단시간 내에 충무로에 입성하게 되었다. “충무로 전대미문의 신화가 탄생했다.” 자칭 하드보일드 액션 릴레이 무비임을 표방한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보도자료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국영화의 새로운 신화가 탄생했다는 과찬도 있었지만, 참으로 야무진 ‘시네키드’의 등장이라는 데는 대부분 의견의 일치를 보였다. 한마디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아마추어 정신(amateurism)으로 만든 프로페셔널 영화라는 것이다. 1998년부터 틈틈이 찍은 <패싸움> <악몽> <현대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라는 네 개의 단편을 하나로 묶은 이 영화는 흔히 저예산 영화에 주어지는 프리미엄, 즉 어쩔 수 없는 기술적 결함 내지는 조야함을 애써 눈감아주는 식의 온정주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는 최소한 액션장면 연출에서는 나름대로 자기 표현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는 그가 한 인터뷰에서도 밝혀 듯이, 영화에 관한 정규교육 대신에 2000여 편을 상회하는 각종 영화들을 보면서 순전히 독학으로 연출력을 갈고 닦은 결과라고 하겠다.
잡담 류승완 감독 된 과정? 긁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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