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마다 각기 다른 욕망을 숨긴 채 비밀스러운 동거를 이어가는 여자들, 이들의 ‘기묘한’ 동침.
네 여자의 기묘한 동침이 시작된다. 증권감독원 자본시장조사국 최초의 여성 감독관 홍금보(박신혜)는 35살의 나이를 20살로 속이고 한민증권에 위장 취업한다. 여의도 증권가의 전례 없는 비자금 스캔들을 잡기 위해, 한 순간 모든 오명을 뒤덮어 쓴 억울함을 풀기 위해 그는 동생 홍장미의 이름으로 스무살이 된다. 하지만 이상한 건 홍금보만이 아니다. 서울시 미혼여성근로자 기숙사 301호에 모여든 하우스 메이트 고복희(하윤경), 강노라(최지수), 김미숙(강채영). 세 여자는 저마다 각기 다른 욕망을 숨긴 채 비밀스러운 동거를 이어간다. 보통 왁자지껄 우당탕탕 엇박자로 이어지는 드라마 속 기숙사 생활에는 일종의 문법과 패턴이 적용되기 마련이다. 날 선 오해와 이해가 반복되다가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며 돈독해지고 마는. 모두가 외딴 행성처럼 지내다가 어느새 하나의 궤도에 올라서며 다정한 관계를 형성하는 게 기숙사형 에피소드의 클리셰라면 클리셰다. 하지만 <언더커버 미쓰홍>은 기묘하다. (여기서 첫 문장으로 돌아가보자. 여느 관용구처럼 '은밀한' 동침이 아니라 '기묘한' 동침이다.) 한 지붕 아래서 공동의 문제를 함께 맞닥뜨리고 그것을 함께 해결하고 내밀한 속내까지 함께 고백하건만, 이들은 여전히 친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건 홍금보의 사정
정확히는 홍금보와 고복희의 이야기다. 언더커버 작전을 수행하기로 결정하고 기숙사 생활까지 감내해야 했을 때 홍금보는 하우스 메이트들 중 가장 먼저 고복희와 같은 방을 쓰고 싶다고 선언한다. (심지어 고복희는 원하지도 않았다.) 이유도 뚜렷하다. 한민증권 비자금 비리를 파헤치기 앞서 사장 전담 비서로 일하는 고복희를 통해 콩고물 같은 정보를 얻을 셈이었다. 다시 말해 홍금보가 고복희와 같은 공간을 공유한 건 뚜렷한 목적 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런데 오직 미션만을 생각하기에 고복희는 생각보다 훨씬 인간적이었다. 눈치 9단으로 생존전략을 빠르게 바꾸고, 기회주의자적인 면모를 보이는 회사 생활과 달리 집에서 그는 야식으로 통닭과 맥주를 몰래 시켜먹고, 그 언젠가 미국으로 이민가 캘리포니아 걸이 되겠다는 진지한 꿈을 품고 있다. 침대 위로 산타모니카 해변 포스터를 붙여놓는 순진무구함까지. 공적 공간이 아니라 사적 공간이기에 볼 수 있는 복희의 내밀한 모습들은 홍금보를 햇살에 봄눈 녹듯 홍야홍야 녹여버릴 것만 같지만? 어림없다.
고복희가 친오빠 고복철에게 오랫동안 폭력과 갈취에 시달려왔다는, 고복희의 진짜 역사와 진실을 알았을 때 홍금보가 제일 먼저 한 생각은 (다소 충격적이게도) '그래서 친오빠 출소 전에 한탕 해서 튀려고 한 거야?'다. 냉담한 태도와 속마음. 으레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이 가질 법한 인간적임이나 온화한 성정과는 거리가 먼 냉소. 그러나 그게 진짜 홍금보다. 룸메이트의 가여운 처지를 알고 쉽게 연민하거나 감정적으로 마음이 휘둘리지 않는 것, 어떤 상황에도 자신이 진짜 집중해야 할 최종적인 미션을 잊지 않는 것. <언더커버 미쓰홍>이 설정한 여자 주인공, 홍금보인 것이다.

그렇기에 과거 깊은 사랑을 나눴던 전 연인 신정우(고경표)의 등장에도 <언더커버 미쓰홍>은 로맨스 드라마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주인공 성정 덕분에 일종의 케이퍼 무비를 표방하는 드라마의 재미와 분위기가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뿌리 내린다. 게다가 <언더커버 미쓰홍>은 여성 주인공을 성애적 대상으로서 미화하지 않는다. 1999년이 배경인 드라마에서 35세인 홍금보는 당연하게도 1964년생이다. 많은 시대극이 아름다운 2030 여성 배우를 주인공으로 기용하면서도 극중에서 인물의 생년을 강조하지 않는 것은 성애적 대상으로 이질감을 주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1950~1960년대생이라는 사실이 반복될 수록 성애적 몰입감은 깨져버리고 만다. 그렇지만 <언더커버 미쓰홍>은 대놓고 묻는다. "네 주민번호 말해봐." 그리고 실수로 진짜 자기 주민번호를 말할 뻔하는 여자. "6...." 시대극에게 너무나 당연한 이면인데도 지금껏 자주 볼 수 없던 장면을 이곳에서 목격한다.
그러니까 이건 고복희의 사정
홍금보야 드라마가 설정한 강단 있는 업무 태도로 이해할 수 있다면, 고복희는 도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쉽게 가까워지기 힘든 것일까. 엉덩이를 씰룩 거리며 걷는 새침한 태도, 왕언니 자리를 즐기는 듯 하우스메이트 동생들을 부려먹는 모습들. 고복희의 얄미운 평소 행실을 생각하면 그가 한민증권 여우회 돈을 먹고 나르려는 속셈은 썩 이상해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그럴 법한 계략처럼 보인다. 살아남기 위해 자기만 생각했던 그의 이기적인 시간들이 음모의 개연성을 만들기 충분하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복희답지 않은' 순간들이 중간중간 튀어나온다. 도대체 진짜 고복희는 누굴까. 그는 어떤 진심을 숨기고 있는 걸까.

누구보다 근면성실한 하우스메이트 김미숙이 사실은 미혼모로서 6살짜리 딸 봄이를 옷장에 숨기고 있었다는 비밀을 알았을 때, 복희는 두 모녀를 두둔했다. 아이를 기숙사에서 내보내라는 홍금보를 오히려 나무랐다. "홍장미, 너 입에 칼 물었니? 염라대왕도 너보다는 인정 있겠다." 아이를 옷장에 숨긴 채 지내려던 발칙한 계획을 한심하게 생각하거나 고발하지 않고 인정을 생각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진짜 복희인지 모른다. 실제로 복희는 식탁에 숟가락을 놓으며 제 몫을 하는 어린이에게 잊지 않고 "고마워" 라고 말하는 유일한 어른이고, 아이 앞에서 비교육적으로 돈 이야기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기도 한다. 이제 막 교도소에서 출소하여 복희를 위협하는 친오빠의 존재를 모두가 알게 됐을 때, 울분 섞인 복희의 말은 많은 것을 설명한다. "내가 멀쩡한 부모나 자기 밥벌이 하는 형제 있었으면 이 나이 먹도록 너희들이랑 기숙사 살겠니? 나도 이렇게 사는 거 지겨워!" 그러니까 복희는 타고나게 이기적이었던 게 아니라, 이기적이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간을 혼자서 보내온 거다.
엄마를 보고 싶어하는 어린이를 내쫓지 않고, 그에게 늘 고맙다고 말하는 어른. 이국의 바닷가에서 서핑하는 모습을 꿈 꾸고 친구들과 이따금 통닭과 맥주를 즐겨 먹는 평온한 어른. 그것이 진짜 고복희였을지 모른다. 무탈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왜곡 없이 그대로 구현됐을 복희의 진짜 성정이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것이 그에게 경계심을, 거리감을, 그리고 도망침을 부추겼다.
<언더커버 미쓰홍>이 구현한 기숙사 생활은 팬시하고 어여쁜 디자인과 달리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미혼모의 고군분투, 어린이의 쓸쓸함, 얼굴 없는 상속녀의 두려움, 가족 폭력 피해자의 울분, 억울한 누명을 쓴 노동자의 처지가 뒤섞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렇기에 의미 있다. 드라마가 구획한 공동의 공간 안에서 쉽게 친해지지 않고 가까워지지 않는 여성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 수면 아래 놓여있는 진짜 이야기를 들춰낼 수 있기 때문이다.
https://ch.yes24.com/Article/Details/81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