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늘 그렇듯이, 하민(최우식)은 엄마 은실(장혜진)이 차려준 밥을 먹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숫자가 보인다. 그 숫자는 하나씩 줄어드는데,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도리가 없다.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을 때마다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숫자의 의미는 여전히 물음표다. 그러던 중, 아들 얼굴도 못보고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꿈에 나와 넌지시 알려준다. 그 숫자가 0이 되면 엄마는 죽는다고.
그 후 엄마가 해준 밥을 먹지 않기 위한 하민의 필사적인 노력이 시작된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버리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지원하고, 본가가 있는 부산을 떠나 독립하고…. 엄마의 오해는 점차 깊어진다. 한편 보육원에서 자란 하민의 여자 친구 려은(공승연)은 은실의 반찬을 대신 받으며 그녀와 가까워진다. 그리고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엄마의 정을 느낀다. 려은이 결혼 조건으로 하민에게 엄마를 모시고 살자고 요구하자, 하민은 이 상황이 그저 난감하기만 하다.
보육원에서 자란 소년의 성장기를 그린 독립영화 <거인>으로 데뷔하고 <여교사>를 연출했던 김태용 감독의 신작이다. 어둡고 날 선 전작 들과 완전히 다른 장르의 휴먼드라마로, ‘엄마’에 대한 짙은 애정과 눈물과 웃음이 가득 담겨 있다. 이 영화에서 엄마만큼 중요한 것은 ‘밥’. 엄마 은실을 연기한 배우 장혜진은 실제로 부산 출신으로, 야무진 손길로 무를 어슷어슷 썰어내고 매운 양념에 소고기를 들들 볶아내며 한소끔 푹 끓인다. 콩잎을 한잎 한잎 정성스레 버무린다. 그렇게 부산식 소고기뭇국과 콩잎 조림을 끝없이 만들어낸다. 동시에 그것들을 복스럽게 먹어댄다. ‘저작근’의 영화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영화는 밥을 한술 한술 꼭꼭 씹어 삼키는 장혜진의 턱과 입을 자주 클로즈업한다. 큰아들이 수능을 보러 가던 날 기어이 아침밥을 먹여 보내고, 서둘러 수험장으로 향하다 허망하게 떠난 큰아들의 죽음 앞에 절망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작은아들에게 숟가락을 꼭 쥐어준다. 먹으라고, 먹어야 산다고.
밥을 짓는 일과 먹는 일. 그리고 살아남는 일. 지난 세대 어머니들의 삶을 곡진하게 담아낸 이 작품은 이 땅의 아들들이 어머니에게 보내는 반성문이자 연가다. 보육원에서 자랐고 스무해 동안 어머니를 만나지 않았지만,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로 결심 했다는 김태용 감독은 촬영 직전 어머니의 부고를 받았다. 그때 감독이 맞닥뜨렸을 감정은 영화 구석구석에 서려 있다. 아버지와 형을 잃고 피붙이라고는 엄마밖에 남지 않은 하민의 눈앞에 자꾸만 떠오르는 숫자도, 그 숫자가 없어지면 엄마마저 잃게 된다는 강박적인 믿음도 허무맹랑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거인>의 소년 영재를 연기했던 최우식이 10여년의 세월이 지나 <넘버원>의 성인 하민으로 다시 한번 등장한 것은 감독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울림을 준다. 휴먼드라마의 문법에 충실한 영화로 다소 전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김태용 감독이 연출했기에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설 명절에 극장가를 찾아온 간만의 전통적인 가족영화로, 곁에 있는 이들에 대한 사랑과 소중함을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형도 엄마가 밥 먹고 가라고 붙잡아서 죽은 거잖아!” 토해내듯 외치는 하민의 말. 그 말을 듣는 엄마의 마음은 분명 참혹할 것이다. 스러지고 폐허가 되어 뼈가 시리도록 차디찬 바람이 들이칠 것이다. 그러나 은실은 하민의 말에 무너지지 않는다. 그저 견디고 또 견디는 표정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듯한 밥과 국을 낸다. 하민에게 담담히 숟가락을 쥐어준다. 그녀에겐 아직 살아남은 아들이 있고, 살아나갈 인생이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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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s://cine21.com/news/view/?mag_id=109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