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으로 중종 11년 12월 10일자(양력 1517.1.1) <중종실록>은 단종이 죽은 뒤에 "엄흥도라는 자가 가서 곡을 하고 관을 준비해 장사를 지냈다"고 알려준다. 영월군 호장(수석 아전)인 엄흥도는 방치된 단종의 시신을 수습했다. 수양대군의 후손들은 그런 엄흥도를 높이 평가했다.
수양대군의 11대손인 영조는 1726년경에 엄흥도를 기리는 정려문의 설치를 승인했다. 영조는 1743년에는 엄흥도에게 정3품에서 종4품에 해당하는 하대부(下大夫) 품계를 추증했다. 영조의 일생이 정리된 <영조대왕 행장>은 이 추증을 영조 집권기의 주요 사실관계로 제시했다. 영조가 이 추증에 큰 의미를 부여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수양대군의 15대손인 고종은 1877년 1월 11일(실록상으로는 음력 11.27) 엄흥도에게 굳셈과 더불어 충성스러움의 이미지가 반영된 충의(忠毅)라는 시호를 부여했다.
이처럼 실제 엄흥도에 대한 조선왕조의 처우를 살펴보면 세조 이후의 임금들이 수양대군보다 단종을 더 응원했음을 알 수 있다.
수양대군의 11대손인 영조는 1726년경에 엄흥도를 기리는 정려문의 설치를 승인했다. 영조는 1743년에는 엄흥도에게 정3품에서 종4품에 해당하는 하대부(下大夫) 품계를 추증했다. 영조의 일생이 정리된 <영조대왕 행장>은 이 추증을 영조 집권기의 주요 사실관계로 제시했다. 영조가 이 추증에 큰 의미를 부여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수양대군의 15대손인 고종은 1877년 1월 11일(실록상으로는 음력 11.27) 엄흥도에게 굳셈과 더불어 충성스러움의 이미지가 반영된 충의(忠毅)라는 시호를 부여했다.
이처럼 실제 엄흥도에 대한 조선왕조의 처우를 살펴보면 세조 이후의 임금들이 수양대군보다 단종을 더 응원했음을 알 수 있다.
세조 이후 임금들 죄다 세조 후손인데도 이랬던 거 보면
본인도 왕 해보니까 수양 같은 새끼가 얼마나 ㅈ같은지 알았겠지 단종에 이입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