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엔 언니 혼담 가로채서 대군비 자리 꿰참)
쿠데타' 말한 무당에 관심 보인 그녀
열 살 때 있었던 이 일을 철없는 소녀의 일시적 행동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은 그후에도 유사한 일이 계속 되풀이됐기 때문이다. 시집간 된 뒤에도 윤씨의 행동에서는 하극상이란 행동 패턴이 일관되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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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에서는 무당이 "더 이상 고하지 않고 가버렸다"고 한다. 가마솥에서 소리가 난 직후에 무당을 만난 것이나, 남편이 정변에 관련될 거란 예언을 듣고도 무당을 붙잡아 둔 것이나, 무당이 꺼리는데도 추가 질문을 한 것은 윤씨 마음속에 무엇이 꿈틀대고 있었나를 보여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남편이 정변이라도 벌여서 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이때 윤씨는 만 33세였다. 언니를 밀치고 대군 부인이 됐던 만 10세 때의 하극상 기질이 이때도 여전히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극상은 그의 행동패턴이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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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때 안채로 들어서는 수양대군에게 윤씨가 갑옷을 입혀줬다. 남편이 혹시라도 뜻을 꺾지 않도록 전의를 가다듬어줬던 것이다.
이런 사례들에서 나타나듯이, 수양대군 못지않게 정희왕후 윤씨도 하극상 기질과 정치적 야심이 대단했다. 수양대군이 자기 내부의 기질만으로 일을 벌였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수양대군의 쿠데타가 수양대군의 의지나 한명회의 조력뿐 아니라 아내의 조력에 의해서도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윤씨는 남편이 죽은 뒤에는 남편에게 세조라는 묘호를 부여했다. 죽은 남편에게 시아버지보다 높은 묘호를 부였던 것이다.
그런 윤씨가 수양대군 사후에 8년간이나 수렴청정을 했다. 일생을 하극상을 향해 달려가다가, 더 이상 하극상이 필요 없는 위치에서 8년을 보냈다. 정희왕후 윤씨는 수양대군이 세상 욕을 다 먹으며 벌인 일들로 혜택을 본 '숨은 승자'의 하나였다.'
하극상이 필요 없는 위치: 조선 서열 최고 꼭지점
실제로 이후 윤씨의 집안은 한씨집안과 더불어 최고 전성기 누렸고,
64세까지 꿀 다 빨다 감..
세조는 죄책감에 정병이라도 걸렸지 이 여잔 딱히 그렇지도 않았나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