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액션의 맛은 강렬하고, 박정민의 이글거리는 눈빛은 묘하게 달달하다. 첩보물로서의 스릴 쾌감보단 묵직한 정서의 멋을 앞세운, 홍콩 느와르의 아우라를 품은 ‘휴민트’(감독 류승완)다.
영화는 블라디보스토크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목적을 지닌 인물들이 엇갈리며 충돌한 이야기를 담는다.
북한 요원과 남한 국정원, 이들의 의심과 갈등 그리고 공조, 이들을 둘러싼 빌런들, 인신매매와 마약 등 익숙하면서도 민감한 소재들이 전면에 배치돼있다. 장르적 장치는 풍부하지만, 설정 자체에서 새로움을 기대하긴 어렵다. 대신 인물과 감정, 분위기로 방향을 분명히 튼다.
감독의 이 같은 선택은 제목에서부터 드러난다. ‘휴민트(HUMINT)’는 기술이나 장비가 아닌, 사람을 통해 정보를 얻는 활동을 뜻한다. 첩보물의 트릭이나 복잡한 정보전보다 인물의 선택과 감정, 관계에 방점을 찍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그래서 영화는 스릴 넘치는 심장 쫄깃한 첩보물이라기보단, 사람 중심의 액션 드라마로 완성됐다. 제목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영화의 의도는 솔직하고 확실하다. 전개 역시 쉽다.
액션 물량은 넘친다. 총격전과 카체이싱을 포함해 몸을 쓰는 장면들이 쉼 없이 이어진다. 조인성·박정민을 필두로 한 다채로운 액션 신들은 각자 밀도감 있게 쌓이며 쾌감을 끌어올린다. 속도감과 타격감이 분명하고, 즉각적인 도파민이 폭주한다. 스크린은 내내 분주하고, 시선은 쉽게 놓이지 않는다.
이 액션들은 단순한 볼거리에서 그치지 않는다. 긴장감을 높이는 동시에, 서사의 흐름을 밀어붙이는 무기로 기능한다. 촘촘한 심리전이나 팽팽한 정보전의 손맛은 상대적으로 옅지만, 전개와 분위기에 의도적으로 공을 들인다.
인물들의 표현은 절제돼 있고, 화면에는 묵직한 감정이 깔린다. 단번에 터뜨리기보다는 천천히 스며드는 여운을 택한다.
그래서 취향을 탄다. 감정선에 반응하는 관객(특히 여성 관객)에겐 깊이 파고들겠지만, 속도와 긴장감을 기대한 관객에겐 호흡이 다소 느리게 느껴질 수 있다.
배우들의 조합은 안정적이다. 조인성은 날렵하고도 화려한 액션과 성숙한 내면 연기로 노련하게 중심을 잡는다. 킬링포인트는 박정민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액션은 물론 눈빛으로 멜로 감정을 쌓아 올리며 반전의 섹시미를 뽐낸다. 두 남주가 만들어내는 온도 차와 대비는 이 영화의 가장 매혹적인 관전 포인트다.
신세경은 비련의 여주인공이라는 설정과 분위기에는 잘 어울린다. 다만 감정선을 중요하게 다루는 작품인 만큼, 쌓여가는 서사의 농도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내공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애절한 상황은 충분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한 방이 터지지 않는다. 비주얼을 따라가지 못하는 연기력이다.
‘베테랑’ 시리즈, ‘베를린’, ‘모가디슈’, ‘밀수’까지 흥행을 이어온 류승완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자신의 장기들을 한데 펼쳐놓은 듯하다. 액션, 정치적 소재, 국경을 넘는 서사를 능숙하게 버무린다. 근사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포부 역시 충분히 읽힌다. 그래서인지 반가움과 올드함 사이, ‘어른 영화’의 복고적 감성이 짙 배어 있다.
다만 익숙한 소재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뚜렷한 진전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전작 ‘베를린’에서 이미 효과적으로 소화된 지점을 과감하게 넘어섰다고 보긴 어렵다.
‘휴민트’는 쨍한 결정타를 날리는 영화는 아니다. 대신 고유의 멋은 분명하다. 액션의 물량과 감정의 결을 조화롭게 녹여낸 고급스러운 팝콘 무비다. 류 감독의 가장 공격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베테랑의 여유과 자신감이 느껴진다. 호불호는 갈릴 지언정, 분명한 선택으로 완성한 확실한 색깔, 무엇보다 박정민의 ‘굿굿멜로’가 강력하다. 추신, 어쩌죠? 박정민이 조인성보다 잘생겨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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