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많은 영화 팬들이 좋아하는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 벌써 십여 년 전 작품이죠. 그 영화를 좋아하셨던 분들이라면, 이 작품은 꼭 보셔야 합니다. <베를린>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영화거든요(직접적인 속편은 아닙니다).
아무리 신냉전 시대라지만, 생활고에 시달리는 북한과 선진국 한국이 제3세계에서 딱히 경쟁할 만한 구도인 건 아니죠. 그런데 먹고살기 버거운 북한 측이 마약, 인신매매 같은 지저분한 범죄에 손을 대고, 이를 모니터하던 국정원 요원(조인성)이 측은지심으로 개입하는 걸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건을 추적하던 그는, 북한판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커플(박정민, 신세경)과 얽히게 되죠.
거대한 국가적 음모가 펼쳐지는 이야기는 아니라서 스케일이 아주 큰 편은 아닙니다. 대신 현실감 있는 설정과 분위기 묘사, 그리고 현장에서 달고 닳은 스파이 캐릭터들이 짓는 피곤한 표정과 태도가 강한 공감을 자아내며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해요.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속으로 품고 있는 뜨거운 감정과, 그와 대비되는 러시아의 차가운 풍광(실제 촬영지는 라트비아)의 대비도 인상적이고요.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점은 <베를린>에선 의욕이 앞섰던 건지.. 멋을 내려다 폼이 앞섰던 순간들이, 이 영화에서는 훨씬 절제되고 자연스러운 연출로 정리되었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몰입감을 해치지 않죠. 류승완 감독 특유의 격투 액션과 총격전 연출도 과하지 않게 묵직하고 박력 있게 나왔는데, 그 와중에 오우삼, 성룡 영화에 대한 오마주도 튀지 않게 잘 녹아 있는 게 반가웠네요.
<베를린>의 후속을 기다려왔던 팬들, 그리고 류승완 감독의 한층 진화한, 묵직한 액션 연출을 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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