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영> <어른들은 몰라요>로 가족에게서 등 돌린 아이들의 분투를 담았던 이환 감독이 이번에는 화려한 밤의 세계를 그렸다. <프로젝트 Y>는 평범한 삶을 꿈꿨으나 전 재산을 잃은 미선(한소희)과 도경(전종서)이 암흑세계를 거느리는 토사장(김성철)의 비자금을 훔치려는 석구(이재균)의 계획을 엿듣게 되면서 예고된 난장으로 향한다. 여기에 힙합 뮤지션 그레이가 전작 <발레리나>에 이어 다시 한번 영화음악감독으로 크레딧을 올렸다. 이환 감독과 그레이 음악감독에게서 벼랑 끝에 사는 캐릭터를 따라가는 카메라와 영화음악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았다.
-영화작업을 함께했다. 영화 취향은 얼마나 비슷하거나 다른지 궁금하다.
= 이환_취향이 극명하게 나뉘는 편인데 가족영화는 늘 좋아한다. <아버지의 이름으로>나 <스위트 식스틴>이 지금 떠오르는 영화들이다.
= 그레이_음악을 재미있게 사용한 영화가 좋다. 우탱 클랜의 프로듀서 르자(RZA)가 작업한 <킬 빌>이 그런 영화 같다. 음악감독 위주로 영화를 찾아보기도 한다. 존 윌리엄스나 한스 짐머, <블랙팬서> <오펜하이머>의 러드윅 고랜슨, <놉>의 마이클 아벨스가 작업한 영화를 특히 좋아한다.
- 두 주연배우의 얼굴과 사이렌, 음악과 보컬이 오프닝에서 첫 무드를 야심차게 드러낸다.
= 이환_한소희, 전종서 배우 둘을 붙여놨을때의 이질감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재즈 느낌이 충만한 리듬 앤드 블루스의 흑인음악으로, 빈티지하고 아날로그한 사운드를 이 장면에 입히면 어떨까 싶었다. 그레이 음악감독이 음악을 계속 만들어 보내준 덕분에 의도대로 멋있게 구현된 장면이다.
= 그레이_어떻게 보면 60, 70년대 솔 음악과 현대극이 만나 언밸런스하면서 특이한 무드를 자아낸다. 첫 미팅 때부터 이환 감독이 확고하게 오프닝을 어떻게 구상 중인지 전달했고 그 방향대로 흘러간 것 같다. 최종 버전의 빈티지한 사운드를 구현하려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 개성은 달라도 팜므파탈 계보 안에 있는 한소희, 전종서, 두 배우를 캐스팅한 건 대담한 결정 같다. 캐스팅은 어떻게 성사되었나.
= 이환_도경과 미선 역에 걸크러시 느낌의 여배우를 염두에 뒀다. 캐릭터의 설정상 호불호가 갈릴 요소를 관객들이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우의 힘을 빌리고 싶었다. 첫 미팅에서 두 배우를 동시에 만나 두세 시간 이야기했다. 결정까지 숙고할 시간이 필요할 거라 여겼는데 미팅 후 나갈 때 한소희 배우가 “감독님, 누가 무슨 역이에요?”라고 묻더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라 그때부터 고민해보겠다고 했다(웃음). 그렇게 바로 캐스팅됐다.
- 두 캐릭터는 관계 안에서 여성성과 중성미를 나누어 가진다.
= 이환_좋은 배신감을 주는 게 영화의 가장 마법 같은 순간이라고 늘 말한다. 두 주연배우의 캐스팅에서 좋은 배신감으로 시작해야 나머지 캐릭터도 힘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소희 배우가 리드하고 전종서 배우가 드러내는 유약한 모습을 보고 싶었다.
- 워맨스 버디물에 케이퍼 무비, 범죄와 누아르로 <프로젝트 Y>는 장르의 모양새를 계속 바꾼다. 각본과 음악 작업의 방향을 어떻게 구상했나.
= 이환_실은 <박화영>보다 먼저 썼던 시나리오다. 처음엔 남녀가 주인공인 멜로영화였다. 부산영상위원회에서 인큐베이팅을 지원받았을 때 연상호 감독과 대화하다가 장르적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나왔다. 아이디어는 있는데 글이 막히니까 지역에서 부동산하는 지인을 통해 취재를 하게 된 거다. 김성철 배우가 맡은 토사장이 불법으로 하는 일을 극 중 클라이맥스로 설정하고, 궁지에 몰린 미선과 도경이 선택하고 주변 인물들이 내리는 선택이 맞물리며 빌드업된 이야기가 달려가는 방향성을 생각했다.
= 그레이_장르를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장면에 어울릴 만한 느낌으로 작업했다.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미선과 도경의 감정의 드라마는 오케스트레이션으로 표현하고, 또 어떤 부분에는 힙합 요소를 가져왔다. 떠오르는 대로 흘러가듯 작업했는데 삽으로 땅을 파는 장면은 예상을 벗어난 처절함이 웃기고 재미있어서 음악을 위트 있게 쓰고 싶었다.
- <박화영> <어른들은 몰라요>는 현실이 냉정하다는 전제하에 아이들이 부딪히고 다치는 이야기가 캐릭터 중심으로 전개된다면 <프로젝트 Y>는 화중 시장이라는 가상공간에서 벌어진다.
= 이환_이전 두 작품은 호불호가 심했기에 다수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엔터테이닝한 영화를 만들자는 게 목표였다. 반드시 지키고 싶었던 공식은 캐릭터 열전의 영화여야 한다는 거였다. 인물의 연기나 정서를 리얼하게 가져가고 싶어서 실제 지명을 사용하는 대신 차라리 가상 장소를 만들어낸 거고.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프로젝트 Y> 역시 일종의 가족영화이기도 하다.

- <프로젝트 Y>의 작업은 처음 음악감독을 맡았던 <발레리나>와 무엇이 달랐나.
= 그레이_<발레리나>는 액션의 타격감과 음악의 합이 맞아떨어질 때 느껴지는 쾌감이 있었다면 <프로젝트 Y>는 감정적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드라마와 음악이 어우러질 때 작업하는 묘미가 있었다. 그때도 이번에도 감독님과 소통을 굉장히 많이 했다. 감독, 조감독, 프로듀서와 의견이 달라도 논의를 통해 결정하며 같이 만들어가는 게 뮤지션으로 혼자서 작업할 때보다 재밌었다.
- 이환 감독은 첫 상업영화에서 풀어낼 수 있는 많은 것을 시도한 느낌이다.
= 이환_고민이 깊어지고 있지만 영화는 반드시 재미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굳어진다. 앞으로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다른 장르와 섞어 어떤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겠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만 고집하지 않고 관객과 수다 떨듯이 나만의 농도를 잃지 않으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
- 사회파 드라마에도 관심이 있다고. 강하고 잔인한 인물과 살아남고자 경계를 줄타기하는 약자의 관계 구도,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은 이유는.
= 이환_우리는 늘 선택하며 살아간다. 사소한 선택이 당장 몇 시간을, 하루를, 일생을 결정짓는다. 캐릭터에 있어서도 선택을 중요시한다. 물론 시나리오에는 정해진 경로가 있지만 그걸 연기하는 배우의 감정과 정서는 내가 전부 선택할 수 없다. 이야기를 고를 수는 있어도 인물의 이야기는 연기하는 배우 고유의 것이다. 시나리오 안에서 인물이 선택하고 나와 배우들도 선택을 내린다. 그런 게 모여 캐릭터의 영화가 만들어지다 보면 이런 게 진짜 날것처럼 보인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인간을 관찰하고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한 사람이 좋게 말하면 집중, 나쁘게 말하면 집착할 때 드러나는 광기에는 설명할 수 없는 섬뜩함이 있다. 바로 그럴 때 뭔가를 이룩하게 될 때도 있지 않나. 이런 게 바로 캐릭터와 배우, 영화 모두에 마법 같은 순간이 아닌가 한다.
- 그레이 음악감독은 이번이 두 번째 영화음악 작업이었다. 뮤지션과 영화음악감독으로서의 작업 차이를 나누는 틀이나 기준이 생겼나.
= 그레이_영화작업에서는 나도 연기하듯 배역을 맡는다. 원래 하고 싶은 음악과 즐겨 듣는 음악이 있는데 내가 갑자기 트로트를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런데 영화에선 그게 필요하면 할 수도 있다. 음악이 필요한 장면이 있고 영화라는 명분으로 음악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다양하게 펼친다는 게 한편으로는 더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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