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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인터뷰] 영원에 대한 욕망을 탐구하다. <현혹> 한재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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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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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혹>의 원작 웹툰에 관한 첫인상은 어땠나.


원작에 대한 첫인상은 ‘차갑고 고요한데, 자꾸 돌아보게 된다’는 것이었다. 영원에 대한 욕망과 유한한 존재의 슬픔, 그 사이에서 빚어지는 아름다움과 잔혹함이 담겨 있었다. 삶은 유한하기에 더 눈부시고 예술은 끝이 없을 것처럼 우리를 부른다는 간극 자체가 <현혹>의 가장 강력한 매력이라고 느꼈고 그걸 영상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각색을 거치며 몇몇 관계와 사건의 배열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원작이 가진 ‘온도’를 배신하지 않는 것이었다. 원작이 만들어내는 공기, 침묵의 밀도, 응시의 길이, 시간의 질감을 영상언어로 번역하는 일이 중요했다. 인물의 욕망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동시에 그 욕망이 결국 무엇을 대가로 치르는지를 깊게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 나이 들지 않는 정화는 매화, 마리사 등 여러 이름을 지닌 채 다양한 시대를 살아간다. 시기별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준다면.


정화의 ‘다양한 시기’는 한 사람이 어디에서 인간성을 잃고, 다시 버티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주는 시간의 단면인데 매화와 마리사가 그 단면이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지점이다. 매화는 정화가 흡혈귀가 되기 이전 아직 세상을 믿고 무언가를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었던 순간이다. 가장 인간적이었기에 가장 취약했던 시기랄까. 매화를 통해 정화가 왜 그렇게 차갑고 단단해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역으로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반대로 마리사는 고독 속에서 남문호텔에 남아 흡혈귀로서의 시간을 살아내야 했던 시기다. 정화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은 오히려 그를 더 쓸쓸해 보이게 만든다. 영원이란 결국 축복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생존의 형태일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어떤 순간은 인간이기에 더 아프고, 또 다른 순간엔 인간이 아니기에 더 아픈 사람. 그 모순이 <현혹>의 가장 중요한 정서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 한편 화가인 이호에겐 원작에 없던 독립군이라는 설정이 추가됐다. 독립군 이호의 행보도 기대해볼 수 있을까.


그는 본질적으로 시대의 폭력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웠으며 특정 신념을 품고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립군 설정은 상처의 기원에 가깝다. 이호의 행보는 액션의 활약도 있겠으나 그가 무엇을 끝까지 놓지 않는지, 결국 무엇을 놓게 되는지에 달려 있다.


- 수지, 김선호 배우가 각각 정화, 이호 역에 캐스팅됐다.


정화는 아름다움 자체가 서사인 동시에 그 아름다움이 족쇄가 되기도 하는 인물이다. 한편 이호의 침착한 얼굴 이면엔 오래된 상처와 신념이 서로 충돌한다. 두 배우는 그 겉과 속의 비대칭을 섬세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공통된 키워드는 ‘과잉을 피하자’였다. 정화는 감정을 보여주기보다 감정을 관리하는 사람처럼 보일 때 더 무섭고 슬프다. 이호는 평온하려 애쓸수록 새어나오는 인간적인 흔들림이 보여야했다. 그래서 작은 표정 하나가 장면을 결정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여겼고 톤은 늘 낮지만 선명하게 유지했다.


- 정화와 이호 외에 눈여겨보면 좋을 조연 캐릭터·배우가 있다면.


<현혹>의 조연들은 사건을 설명하는 역할이라기보다 주인공들의 내면을 ‘다른 얼굴’로 비추는 거울에 가깝다. 그중에서도 바야르마와 그녀의 딸 옥순, 그리고 새로운 캐릭터 은채를 눈여겨봐주셨으면 한다. 바야르마는 원작에도 존재하는 인물이고 늘 정화를 위협하며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존재다. 원작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어느 순간부턴 바야르마를 단순한 ‘적’으로 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바야르마와 정화의 대립은 서로를 찌르면서도 서로를 알아보는, 굉장히 기묘한 긴장으로 설계하려 했다. 그 바야르마의 깊은 마음을 더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원작에는 없던 딸이라는 존재를 더했다. 바야르마 안에 숨겨져 있던 폭력과 애정, 보호와 파괴가 동시에 존재하는 복잡한 감정의 층을 드러내고 싶었다. 관객이 바야르마를 미워하다가도 어느 순간 멈칫하게 된다면, 그 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괴물이 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었기 때문에 괴물이 된 사람’으로 보이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채는 이호를 짝사랑하는 인물인데 이호의 서사와 그 시대의 공기를 관객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창구가 된다. 이호가 어떤 얼굴로 시대를 통과해왔는지, 그 시대가 개인의 감정을 어떻게 규정하고 억압했는지 은채의 시선과 욕망을 통해 오히려 더 선명해지도록 만들고 싶었다. 은채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활기 있어 보이지만, 그 활기 뒤로 시대의 온도와 그림자가 함께 느껴지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바야르마는 이호의 또 다른 그림자이고, 은채는 이호가 살아낸 시대의 표면이다. 이 둘을 따라가다 보면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더 깊게, 더 아프게 확장될 것이다.


- 영화, 드라마마다 다채롭게 변주되는 흡혈귀가 <현혹>에선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하다.


단순한 괴물로 묘사하고 싶진 않았다. 흡혈귀는 어떤 면에선 인간이 평생을 바쳐 도달하려는 미와 우아함을 이미 지닌 존재다. 하지만 거기엔 타인의 시간, 생, 온기와 같은 대가가 따른다. <현혹>의 흡혈귀는 공포의 대상인 동시에 늙고 싶지 않다, 사라지고 싶지 않다는 인간의 가장 은밀한 욕망의 극단적 형태다. 보는 입장에서 불쾌함과 매혹을 동시에 느낀다면 그게 정직한 반응일 것이다.


- 흡혈귀와 이들을 좇는 사냥꾼간의 관계는 어떻게 묘사됐나.


단순한 선악의 대칭으로 정리하진 않았다. 사냥꾼이 정의의 얼굴을 지녔다고 해서 내면이 깨끗한 것은 아니고 흡혈귀가 악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삶의 철학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사냥꾼은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하려 싸우고, 흡혈귀는 자신이 인간을 넘어섰음을 증명하기 위해 유혹한다. 둘은 서로 맞부딪히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 중요한 단서를 쥔 K라는 인물은 어떻게 구현하고자 했나.


K는 <현혹>에서 굉장히 핵심적인 축을 담당한다. 이 세계의 비밀과 비극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그 기원을 따라가게 하는 존재다. 미리 설명하면 재미가 반감될 것 같아 가능하면 작품 안에서 직접 확인해주길 바란다.


- 원작에선 정화의 과거 상당 부분이 상하이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시리즈에서도 상하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그대로 가져갔나.


상하이를 그대로 옮기는 대신 제3의 가상 도시를 설정했다. K의 세계관과 욕망이 공간의 공기, 질감, 미학으로 드러나는 ‘K의 도시’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목적에 맞춰 로케이션을 찾았고, 중세 유럽의 차갑고 오래된 질감과 신비롭고 습윤한 분위기를 섞어 새로운 결의 ‘흡혈귀적 세계’를 느끼게 하려 했다. 과거 파트는 정화의 가장 순수한 시절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녀를 흡혈귀로 이끄는 K를 좇는 여정이다. 그래서 단순한 회상이 아닌, 정화가 그런 운명을 지니게 된 연유를 감정적으로 따라가게 만드는 서사로 과거 파트를 구성했다. 과거 신의 배경이 되는 도시는 정화가 순수를 잃고 다른 존재로 넘어가게 되는 결정적 문턱을 품은 장소가 될 것이다.


- 정화가 머무는 남문호텔은 영화의 톤 앤드 매너를 결정할 주요 로케이션일 텐데, 남문호텔의 미술을 조성할 때 어떤 점을 주로 고려했나.


남문호텔은 단순히 중요한 로케이션이 아니라 정화가 거의 50년을 살아온 ‘삶의 형태’가 응축된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술을 설계할 때도 ‘예쁘게 만들자’가 아닌 정화라는 인물이 공간에 어떻게 배어 있는가를 가장 먼저 놓고 접근했다. 말하자면 남문호텔은 정화의 또 다른 피부이자 그녀가 자신을 숨겨온 방식이다. 처음 남문호텔을 마주하는 순간에는 거의 공포영화의 공간처럼 의도적으로 은밀하고 공포스럽게 보이도록 했다. 낯설고, 차갑고, 무엇인가가 숨어 있을 것 같은 느낌. 정화라는 인물 자체가 처음엔 그렇게 보이길 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쉽게 이해되는 인물이 아니라 가까이 다가가면 오히려 더 위험해 보이는 존재로 말이다. 그런데 그 공포의 외피 안쪽에는 곳곳에 정화의 내면이 숨겨져 있다. 그것을 한번에 드러내기보단 이호의 시선을 따라가며 조금씩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래서 남문호텔은 끝까지 한 가지 얼굴만 갖지 않는다. 처음엔 공포로 시작하지만, 결국엔 관객이 그 안에서 정화의 외로움과 시간의 무게를 발견하게 되는 공간으로 설계하려고 했다.


- <현혹>의 주요 장면을 하나 소개해준다면.


정화와 이호가 마주 앉아 사소한 대사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겉으론 별말 아닌 듯하지만 그 대화의 틈 사이로 정화의 과거가 스치듯 드러나고, 이호는 그 조각들을 보며 어느 순간 정화에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작고 조용한 대화에서 인물의 시간이 새어나오고 그걸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변해가는 순간이야말로 이 작품의 정서와 매력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 이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이해’가 아니라 현혹될 것이다.


https://naver.me/5gYaLkL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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