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위 -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비바 라 레볼루시옹!”(¡Viva la Revolución!) 우경화의 혼돈 속에서 혁명을 부르짖게 만든 최전선의 시네마.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올해의 해외영화 1위에 올랐다. 영화는 “2025년 현재의 정치 현실을 긴급하게 경각하는 충격파”(정재현)로서 폴 토마스 앤더슨이 오랫동안 파헤쳐온 미국 신화의 암부를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까발린다. 숀 펜이 캐리커처한 록조 대령과 그가 소속되길 꿈꾸는 백인 엘리트 극우 집단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은 “성기와 총기의 조우로 다시 쓰는 당대의 미국”(이보라)으로서 미국 주류사회에 뿌리내린 백인우월주의의 전형이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는 팻(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서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로 대물림되는 혁명 정신과 윌라를 둘러싼 출생의 비밀은 “나와 나를 낳아준 부모의 역사에 냉소와 조롱을 날릴 수 있는 부끄러운 특권”(문주화)을 길어내고, 퍼피디아(테야나 테일러)를 위시한 저항 조직 ‘프렌치 75’를 통해 “급진주의의 지속 불가능성”(김소미)에 관해 염려한다. 여기에 난민을 구제하며 실질적 혁명을 도모하는 세르지오(베니시오 델 토로)까지 더하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도널드 트럼프 재집권 시대의 미국을 구성하는 복잡한 지형도를 스크린에 옮긴 거시적 정치 서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폴 토마스 앤더슨이 만든 <스타워즈>”(허남웅)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쉽고 재밌는, “복도에서 복도로 이어지는 ‘영구 혁명’에 관한 팝콘무비”(김혜리)다. 심지어 폴 토마스 앤더슨은 이 영화로 전례 없는 제작비와 최고 흥행 기록을 모두 거머쥐었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향해 쏟아지는 상찬은 그가 구현해낸 “압도하는 영화적 쾌감”(이유채)에 기인한 것이다. “거대한 영화관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는 경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다시 증명”(듀나)해낸 이 역작은 “손꼽을 만한 시네마틱 체험”(남선우)으로 “숏 하나하나를 육체적으로 체감”(홍은미)시킨다. 그래서 162분이라는 러닝타임을 함께 추격한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가 “여전히 극장에서 유효한”(허남웅) 매체임을 실감케 한다. 후반부의 카 체이싱 시퀀스조차 이 영화가 달성한 수많은 성취의 일부일 뿐이다.

2위 - <미세리코르디아>
‘자비’를 뜻하는 거룩한 라틴어가 제목에 붙었다. 하지만 <미세리코르디아>는 지나치게 성(性)적이라 오히려 성(聖)스럽다. 알랭 기로디의 첫 한국 정식 개봉작인 <미세리코르디아>가 2위에 올랐다. 알랭 기로디는 배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치정과 범죄를 파고들며 (퀴어)정체성의 다양한 양태를 일관되게 탐구해왔다. 그는 <미세리코르디아>에서도 “지루한 마을에 욕망의 불을 지피는 노련한 침입자 제레미(펠릭스 키실)의 전입 과정”(문주화)을 그리며 “기존의 상식과 도덕의 근간을 흔들고 도발한다”(허남웅). 알랭 기로디의 세계를 요약하는 단 하나의 정념은 욕망이고 이는 “기이하게 단순한”(홍은미) <미세리코르디아>에도 형형하다. 과부 마르틴(카트린 프로)과 신부 필리프(자크 드블레), 친구 왈테르(데이빗 아얄라) 사이를 폭주하는 마성의 남자 제레미는 말할 것도 없다. 이를테면 영화는 버섯, 빵, 종교 등 원형적 상징을 경유해 “붙잡으려 할수록 미끄러지고 어긋나는”(정지혜) “감정과 욕망의 지형”(홍은미)을 만들고, “코미디와 서스펜스를 가로지르는”(문주화) 시나리오를 통해 “관객이 좀더 진보한 사고를 하도록 논쟁거리를 던진다”(허남웅). 그렇게 <미세리코르디아>는 “가장 급진적인 박애의 영화”(김혜리)이자 “아름다운 도덕의 영화”(이보라)로 피어난다.

3위 - <씨너스: 죄인들>
라이언 쿠글러 감독이 또 한번 해냈다. <씨너스: 죄인들>은 2025년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상업적, 비평적 성과를 모두 이뤄낸 작품이다. 북미 시장에서 약 2억7900만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인셉션> 이후 북미 오리지널 실사영화 중 최고 흥행작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역대 북미 R등급 호러영화 흥행 순위 2위에 올랐다. <씨너스: 죄인들>은 “1세기가 넘는 할리우드영화 역사에서 재료를 듬뿍 가져온”(듀나) 장르 컨벤션을 근간으로 만든 독창적 뱀파이어 호러다. 이때 영화의 참신성을 매듭짓는 두축은 세태와 음악이다. “인종주의와 문화 전유의 메커니즘을 명인의 솜씨로 풀어내며”(김혜리) “<겟 아웃>이 남긴 충격에 버금갈 정도로 미국 사회에 남아 있는 갈등의 앙금을 흔들어 파헤치는”(허남웅) <씨너스: 죄인들>은 “일종의 은유로써 시대를 성찰하지만 직관적인 영화적 쾌감 또한 놓치지 않으며”(남선우) 관객과 평단 모두에 충격을 안겼다. 그리고 “블루스와 호러가 공유하는 구전성(口傳性)을 통시적으로 교직”(정재현)해내는 <I Lied to You>를 필두로 러드윅 고랜슨이 작곡한 수많은 블루스 넘버가 “인종과 종교, 음악과 뱀파이어, 누아르와 판타지라는 이질적인 요소를 하나의 정조로 어우러지게”(최선) 만들며 영화 자체로 “하나의 동시대 미국”(김연우)을 이룩했다.

4위 - <쇼잉 업>
“‘라이카트의 영화’로 유형 분류되지 않는 ‘라이카트의 영화’ 중 하나.”(김연우) 켈리 라이카트의 <쇼잉 업>은 제작 이후 3년 만에 한국 극장가에 도착했지만 평자들의 너른 지지를 받으며 ‘올해의 해외영화’ 4위에 안착했다. 영화는 조각가 리지(미셸 윌리엄스)의 나날을 통해 “이웃집 예술가의 삶”(이유채)을 소묘한다. 켈리 라이카트의 다른 영화처럼 리지는 미국 서부의 대지를 방랑하지도 않고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현대적 가치의 원형을 해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라이카트 특유의 “사소한 것들로 지탱되고 작은 응시 속에 넓고 깊은 세계”(홍은미)는 배경을 대도시 오피스텔로 옮겨도 그대로이고, “실내를 경유해 외부로 이어지는”(정지혜) 리지의 전시 준비 과정은 그 궤적 자체로 “심정의 로드무비”(정지혜)라 부르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쇼잉 업>은 라이카트가 “일상을 예술로 만드는 눈”(김영진)을 장착한 채 영화로 쓴 일종의 ‘예술론’이다. 리지의 소박한 생활은 “부르주아적 아우라를 벗겨낸 오늘날 예술 행위의 의미”(김혜리)를 되묻고, “창작은 소외와 관계 맺는 작업”(김예솔비)임을 상기시킨다. “보잘것없지만 한없이 고귀한”(문주화), 근면한 노동으로서 영위하는 <쇼잉 업> 속 예술은 그렇게 수많은 마감 노동자들을 울렸다.

5위 - <그저 사고였을 뿐>
2025년 12월2일. 이란 감독 자파르 파나히가 정부로부터 ‘선전 활동’을 이유로 다시금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이 시점에 <그저 사고였을 뿐>을 돌아보는 건 어떤 의미를 지닐까. 영화는 명백한 픽션이지만 “그저 경계가 없다시피한 영화 안팎의 현실을 목격하고 기억할 수밖에 없는”(김연우) 지금 “현재진행형인 폭력의 감각과 그럼에도 이후를 바라보고자 하는 태도”(김연우)는 자연히 극장 밖 세상을 비춘다. <그저 사고였을 뿐>의 주동 인물 바히드(바히드 모바셰리)는 에크발(에브라힘 아지지)의 의족 소리만 듣고 그가 자신을 고문했던 경찰이 아닐까 의심한다. 그는 에크발을 납치한 후 트라우마에 붙들린 동료 피해자들을 수소문하지만 그들은 에크발의 진위에 대해, 에크발의 처리 방식에 대해 저마다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그저 사고였을 뿐>은 “간결해짐으로써 더 묵직해질 수 있는 거장의 자기 갱신”(남선우)을 선보이며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폭력의 근원에도 불구하고, 보통의 인간은 그들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미약한 희망을 증명”(문주화)해낸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정치적 영화의 표본이 되어야만 하는 영화”(문주화)이자 자파르 파나히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언급되기에 손색이 없다. 2025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6위부터 10위까지의 영화는 각각 인도, 이탈리아, 포르투갈, 미국, 일본에서 왔다. 6위는 파얄 카파디아 감독의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이다. 인도 뭄바이와 라트나기리를 오가는 세 여성의 이야기는 <쇼잉 업> 못지않게 “도시를 그리는 예술가에게 영화가 얼마나 훌륭한 도구인지를 보여주는 작품”(듀나)이고 “다양성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이 감지되는 사회상”(황진미)을 “빛의 몽상이자 어둠의 시”(정재현)로 그려낸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퀴어>가 7위다. 윌리엄 S. 버로스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멸칭으로서의 ‘퀴어’를 복기해 그 낙인의 언어와 실재하는 퀴어 개인들이 맺는 복잡한 관계를, 초현실을 덧붙여 삼차원으로 그린”(김연우) 작품이다. <본즈 앤 올> <챌린저스> <퀴어> <애프터 더 헌트>까지. 매해 한편씩 근면하게 영화를 개봉시키는 작가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가 일관적으로 설파 중인 “욕망과 정체성의 출처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이유채) 영화로도 해석 가능하다.
8위는 “길 잃은 여행자의 감각과 도주와 이탈로 이루어진 아득히 아름다운 영화 투어”(홍은미), <그랜드 투어>다. 이 작품으로 미겔 고미쉬는 프리드비히 빌헬름 무르나우 등 거장 감독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면서도 감독 고유의 스타일로 재해석했다는 평을 들으며 2024년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안았다.

범죄-누아르-스릴러의 외길 인생을 걸어온 마이클 만 감독 또한 놓쳐서는 안될 이름이다. 9위에 안착한 <페라리>는 “선이 굵은데도 다양한 갈래로 묶을 수 있는 감독의 힘”(김영진), “마이클 만의 손아귀 힘”(이우빈) 등 마이클 만의 연출력을 높이 사는 평이 줄을 이었다.
10위는 소마이 신지의 1993년작, <이사>가 차지했다. 2024년의 <태풍 클럽>과 2025년의 <여름정원> 그리고 <이사>까지. 소마이 신지의 여름영화는 세기를 건너 이제야 한국 극장가에 당도했다. <씨네21>은 2025년 개봉한 두편의 소마이 신지 작품 중 “폭발하는, 뒤덮어버리는, 쏟아붓는 여름 기세가 성장이 될 수 있다면, 그건 바로 이 영화일 것”(정지혜)이라며 <이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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