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화부터 마지막 화까지 ‘용두용미’의 완성도를 갖췄느냐만이 드라마의 생명력을 결정짓지는 않는다. 우리는 때론 단 한마디, 단 한 장면에 마음을 빼앗겨 어떤 드라마를 영영 잊지 못한다. 그래서 별별 어워즈를 준비했다. 올해의 감독, 작가, 배우를 꼽는 동안 둘러보지 못한 2025년 시리즈들의 한끗 차이를 여기 모았다. 올해의 시리즈 10위권에 든 작품들과 그 바깥을 두루 살핀 목록이니 마음껏 다른 후보들을 상상해주시기를!

올해의 로케이션 - <다 이루어질지니>의 두바이
<더 글로리> 김은숙 작가의 신작으로 공개 전부터 기대를 모은 <다 이루어질지니>는 제목 속 ‘지니’의 터전으로 두바이를 택했다. 한국 드라마에서 중동 국가가 서사적 배경이 되는 사례가 드물 뿐 아니라 몇몇 캐릭터는 이슬람문화를 적극 차용했기에 <다 이루어질지니>는 국내 시청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타 문화에 대한 존중과 작가의 상상력이 잘 어우러졌느냐를 두고 아랍 시청자들의 토론도 이어졌는데, 그만큼 화제가 된 이 작품은 10월 중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시리즈 비영어 부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올해의 카메오 - <오징어 게임> 시즌3의 케이트 블란쳇
<오징어 게임> 시리즈의 최종장에서 이 얼굴을 마주할 줄이야! 배우 케이트 블란쳇은 보는 이의 긴장감이 누그러질 법도 한 마지막 에피소드에 깜짝 등장해 프레임을 압도했다. 질끈 묶은 머리, 칼같은 슈트 차림, 딱지치기를 주도하는 절제된 몸짓과 냉담한 표정. 그 찰나의 퍼포먼스만으로 <오징어 게임> 미국판의 출현을 가늠해보게 한 그 존재감은 반가운 충격으로 남아 있다.

올해의 가상 영화 - <은중과 상연>의 ‘굿 맨’
<멜로무비> <우리영화> <은중과 상연> 등 올해는 유독 영화계를 배경으로 한 시리즈가 많았다. 감독과 배우를 로맨스의 주체로 만든 작품들 사이에서 <은중과 상연>은 프로듀서인 두 여자의 대결을 그리는 데에 극 중반을 바쳤다. 그들이 얼떨결에 함께 맡은 신작 프로젝트가 바로 ‘굿 맨’인데, 이 가상의 영화가 과연 흥행에 성공했을지를 추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유저들이 있었다. 감독 교체, 시나리오 수정, 주연배우의 인성 문제 등 덜컹거리며 굴러간 제작 전반을 함께 지켜본 입장에서 궁금할 수밖에!

올해의 숏폼 화제작 - <폭싹 속았수다>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그리고 틱톡으로 몇 장면을 이어 봤을 뿐이어도 ‘드라마를 봤다’고 말하는 시대다. 한편의 에피소드에 몇편의 숏폼 거리가 있느냐는 그만큼 드라마의 화제성을 결정 짓는 지표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가장 왕성한 숏폼 생산성을 자랑한 작품으로 <폭싹 속았수다>를 꼽아야 하지 않을까. 젊은 관식과 애순의 알콩달콩한 한때부터 금명의 결혼을 두고 벌어진 일련의 삽화들까지, 이 드라마에는 대중의 공감과 탄식을 자아내는 자극적 순간들이 촘촘하게 수놓아 있었다. ‘선 넘는 예비 시어머니’, ‘영범이 결혼 막은 엄마의 최후’, ‘관식이 떠나기 전 남겨둔 사랑의 흔적들’ 같은 제목의 유튜브 쇼츠들이 무려 1천만 조회수를 넘겼다.

올해의 동물 - <천국보다 아름다운>의 반려동물들
드라마 속 인물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건 더 이상 특별한 설정이 아니지만, 주인과 반려동물이 천국 문 앞에서 재회하는 전개가 펼쳐진다면 어떨까.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넌 강아지들이 인간 가족을 마중 나오는 장면으로 수많은 반려 인구를 울렸다. 배우 김혜자가 분한 주인공 해숙이 키우던 고양이는 새침한 여자 사람으로 환생해 이승에서 연을 맺은 집사와 마주 앉았다. 이 뭉클한 판타지가 드라마의 초반부를 이끌었다.

올해의 CG - <S라인>의 붉은 선
인기 웹툰을 각색한 드라마 <S라인> 방영 전, 원작 팬들의 관심사는 ‘붉은 선’에 있었다. 성적 관계를 맺은 이들의 정수리를 잇는 이 빨간 실선이 시각적으로 어떻게 구현되는지에 작품의 설득력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S라인>을 연출한 안주영 감독도 그 톤과 질감을 잡는 CG 작업에만 6개월을 소요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드라마의 붉은 선은 실사 화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그 기괴함이 작품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해외에서는 밈으로도 등극했다니 성공적인 CG가 아니었을까.

올해의 포스터 -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공백을 제외해도 무려 17자에 달하는 제목 때문에 주로 ‘김 부장 이야기’로 불리던 이 작품은 포스터에도 과감함을 발휘했다. 제목을 크게 배치해 가독성을 살리는 여타 드라마 포스터와 달리 제목을 좌측 구석에 두고 ‘김낙수’라는 주인공 이름을 아래에 박아 원작 도서를 연상시킨 디자인을 택한 것이다. 그 아래로 <라라랜드>의 한 장면처럼 팔다리를 뻗은 김 부장은 ‘골때리네’라는 카피 옆에서 쓸쓸한 독무를 즐기고 있다. 작품의 정서를 축약한 이미지가 아닐 수 없다.
올해의 오프닝 타이틀 - <폭군의 셰프>
주연배우들의 발랄함에 힘입어 내내 경쾌한 분위기를 잃지 않은 <폭군의 셰프>도 오프닝 타이틀만큼은 서정적이었다. 작품의 주요 소품인 ‘망운록’을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출연진의 이름과 그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민화가 나타나 퓨전 사극의 고전미를 부각했다. 이 오프닝 타이틀을 제작한 모션그래픽 스튜디오 언디자인드 뮤지엄은 올해 <은중과 상연> <북극성> <다 이루어질지니> <친애하는 X> <당신이 죽였다> 등 수많은 화제작의 첫 시퀀스를 책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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