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이후 2년 만이다. 2025년 배우 박보영이 드라마 <미지의 서울>로 다시 한번 <씨네21> 기자와 평론가들이 꼽은 시리즈 부문 올해의 여자배우로 선정되었다. 올해의 작품 1위 자리에도 오른 <미지의 서울>은 “박보영의 최선이자 최대치로 빚어낸 시대의 표정들”(진명현)로 기억되기에 충분하다. 그는 쌍둥이 미지와 미래 역을 맡아 1인2역을 소화했다. 서로를 살리기 위해 삶을 잠시 맞바꾼 자매로 분하고자 미지인 척하는 미래, 미래인 척하는 미지까지 세밀하게 표현했다. 자칫 시청자의 혼란을 가중할 수 있는 설정에도 “부담스러운 차력쇼 없이 작은 디테일과 뉘앙스의 차이로”(위근우) 보는 이의 눈을 밝혔다. “사실상 1인4역의 연기를 선보여 같은 얼굴이지만 전혀 다른 리듬과 시선, 몸의 긴장감으로 인물을 구분해낸 것”(오수경)이다. 상처와 치유를 말하는 진중한 극 한가운데에 “배우의 개성으로 인물의 사랑스러움을 배가”(박현주)하기까지 한 결과, <미지의 서울>은 박보영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등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박보영은 미지와 미래로 살아본 시간을 어떻게 간직하고 있을까. 2026년 공개 예정인 디즈니+ 시리즈 <골드랜드> 촬영 중에도 대화에 응한 그가 온기 어린 답장을 보내왔다. <미지의 서울>은 끝났고, <골드랜드>는 멀었지만, 오늘 박보영이 들려준 이야기는 그의 성장이 계속되리라고 기대하게 한다.
- 올해 <멜로무비> <미지의 서울>을 차례로 선보인 뒤 제16회 코리아드라마어워즈 여자 최우수연기상, 제7회 대전특수영상영화제 대상 등을 품에 안았다. 2025년은 어떤 기억으로 남을 것 같나.
= 정말 열심히 살았고, 치열했고, 그럼에도 행복과 감사가 넘친 한해였다. <미지의 서울>은 늘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촬영을 들어가기 전에도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촬영하는 동안에도 ‘내가 이걸 잘 마칠 수 있을까?’ 자주 의문이 들었다. 나 자신을 의심하기도 했다. 그런데 많은 분이 작품을 사랑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의문과 의심이 뿌듯함으로 바뀌었다. 내가 잘 나아가고 있다고, 나를 믿으면서 좀더 가봐도 되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한해가 된 것 같아 기쁘다.
- 지난 7월 <씨네21>과 인터뷰에서 <미지의 서울> 공개 후 “주변 반응이나 온도가 평소와 많이 달랐다”고 회고했다. 어떤 차이를 느꼈는지와 더불어 시청자들이 <미지의 서울>의 어떤 면을 좋아한다고 체감했는지 궁금하다.
= 나 또한 대본을 볼 때 느낀 부분인데, <미지의 서울>에는 매회 마음을 울리는 대사가 가득하다. 그 점을 주변 분들도 많이 이야기했다. 각자가 꼽는 명대사는 달랐지만 매회 각자의 마음을 울린 대사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친구들, 나오려고 애쓰는 친구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내가 가장 많이 들은 피드백은 매회 드라마를 보며 울었다는 반응이다. 나도 대본을 읽는 것만으로 위로받았는데, 미지와 미래가 되어 시청자들에게 작은 위로를 전해드릴 수 있었다니 감사하다. 아직은 따뜻함과 선함이 많은 사람에게 영감, 위로, 공감, 용기, 그리고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 <미지의 서울>을 올해의 시리즈 1위로 꼽은 <씨네21> 필자들은 이 작품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깊고 넓은 시선에 찬사를 보냈다. 미지와 미래라는 개인을 만들어가는 것과 그들 각자가 속한 세계를 의식하는 것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았나.
= <미지의 서울>에는 소수자들을 비롯해 현실적인 문제에 처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우리 드라마에만 있는 특별한 인물들이 아니다. 내 주변에도 그들이 있다. 미지와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오롯이 이강 작가님이 맡아주셨으니, 나는 대본에 있는 미지와 미래를 현실로 끄집어내 시청자들에게 연결하는 역할을 최대한 잘하고 싶었다. 미지와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 특정 인물이나 작품을 참고하지는 않았다. 대신 내가 겪고 들은 모든 상황을 생각해보려 애썼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부분은 최대한 간접적으로 느껴보려 애썼다.

- <씨네21> 필자들은 <미지의 서울> 이강 작가를 올해의 작가로 호명하기도 했다. <미지의 서울> 각본은 일상의 언어로 빚은 명대사로 가득한데, 배우로서 살리고 싶었던 이 텍스트만의 문체나 분위기가 있었을 테다. 이강 작가, 박신우 감독으로부터 미지와 미래의 말투, 억양, 어휘 등에 대한 힌트를 전해 들은 적이 있나.
= 이강 작가님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처음 <미지의 서울> 대본을 읽을 때부터 담담하게 써내려간 한편의 따뜻한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작가님은 미지와 미래를 표현하는 일을 내게 다 맡기셨다. 감독님은 박보영이 한명이라는 사실을 시청자들이 이미 알고 있으니까, 미지와 미래를 다르게 보여주기 위해 굳이 노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부담을 내려놓고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미지와 미래의 말투, 어휘, 태도, 앉은 자세까지 차이를 두려고 했는데 나중에는 대본 속 미래와 미지의 말투가 텍스트만으로도 확연히 구분되었다! 내가 느낀 차이를 최대한 살리고 싶었고, 그와 동시에 이강 작가님만의 따뜻함을 잃지 않으려 했다.
- 마지막 화가 끝날 때 제목 <미지의 서울>(Our Unwritten Seoul)이 <나의 서울>(Our Written Seoul)로 바뀌는 연출도 호평받았다. 그 변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싶나.
= 박신우 감독님은 정말 최고라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다. 이강 작가님도 마지막 화를 보며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을까? 우리 모두 방송을 보고서야 감독님이 <미지의 서울>이 <나의 서울>로 바뀌는 장면을 준비하셨다는 걸 알았으니 말이다. <미지의 서울>이 <나의 서울>이 되었을 때, 이 드라마 속 모든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내가 아직 겪지 못한, 언젠가 겪을 수 있는, 이미 겪고 있는 일로서 드라마를 다시 볼 수 있는 것이다. 미지와 미래는 우리 가까이에 존재할 수 있고, 어쩌면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감독님이 드라마와 시청자들이 한뼘 더 가까워지는 순간을 만들어주셨다. 한편으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다. 배우로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음에도 감사하지만, 좋은 작가님, 감독님과 두고두고 가슴에 새길 수 있는 작품을 함께해 많은 분에게 감동과 위로를 드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앞으로도 이 세상에 좋은 작품이 있다면, 그리고 내가 그 작품을 전하는 역할을 다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 앞으로도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 지켜봐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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