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흥행과 화제성, 언급량과 트렌드만으로 설명이 부족한 작품들이 있다. 한해 동안 눈에 띄게 흥행 주역으로 떠오르진 않았지만 정성평가적 측면으로 들여다볼 때 숫자 뒤편에 가리워진 아쉬운 작품을 끄집어내고자 한다. 이를테면 묵묵하게 내부 세계를 공고히 키워온 작품들, 시대정신과 화합하며 대중의 결핍과 욕망을 극명하게 반영하는 시리즈들. 송현주·장인정 극본, 김혜영·최하나 연출의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이 그렇다. 4년 전 죽은 첫사랑 람우(공명)가 저승사자가 되어 희완(김민하)의 죽을 날짜를 고지해주는 이야기는 “하이틴 로맨스의 골격 위에 저승사자와의 동행이라는 오싹한 판타지를 곁들인 결과물”(남선우)로서 밀도 높은 뭉클함을 선사한다. 갑작스러웠던 죽음의 진실은 무엇인가. 람우가 간직한 비밀을 하나씩 풀어나가며 드라마는 홀로 남겨진 희완에게 외롭지만 고독하게 생의 의지를 쥐어준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바로 생의 의지다.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은 아름다운 계절성을 빌려 삶을 예찬하거나 비극의 비중을 키워 고단한 삶의 가치를 강조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삶이 바빠 미뤄왔던 즐거움을 하나씩 실현해가면서 온건한 일상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희완보다 먼저 죽음의 문턱을 넘었던 람우를 통해, 삶의 아쉬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동행자를 통해 내가 이 세계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희소성을 갖게 된다.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의 주요 키워드는 ‘상실감’이다. 재난을 맞닥뜨린 이후 여전히 그날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을 다독이는 드라마는 “충분한 애도가 불가능했던 한국 사회”(정재현)에 신중한 위로를 더한다. 결국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이 찾아 헤맨 건 상실을 견디는 힘이고, 그 힘은 자신과의 화해에서 비롯된다.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참사 이후 남겨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화법 또한 미덥다”(남선우). 람우가 맞닥뜨린 죽음의 진실이 고백되기 전 시청자는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회적 재난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로써 람우와 희완이 서로의 이름을 바꿔 부르던 시절은 작품 밖에서 더욱 선명한 의미를 갖는다. 너의 사고가 나의 것이 되고, 나의 애도가 너의 그리움이 되는 감정 교환은 작품과 시청자간의 작용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시청자의 대다수가 재난의 직접적 피해자는 아니지만, 사실은 슬픔의 그림자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그 비극을 함께 나눠 가졌다는 것을 묵시적으로 은유한다.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을 단순히 판타지 로맨스물이나 원작 소설을 영상화한 작품으로만 알고 건너가기에 아쉬운 이유도 여기서 비롯한다. “웹소설 같은 경쾌한 설정 위에 상실을 인정하고 자신을 용서하며 흘러가는 시간을 살아내는 주인공을 통해 근사하게 풀어낸”(조현나) 이야기가 “장르가 만든 표면적인 이미지를 가뿐히 뛰어넘어버리기”(피어스 콘란) 때문이다.

생각만큼 흥행이 잇따르지 않아서 아쉬운 작품이 있다면 기대에 부흥하지 못해 아쉬움을 자아내는 작품들도 있다. <파스타> <질투의 화신>의 서숙향 작가와 이민호, 공효진, 오정세의 화학작용을 기대했던 <별들에게 물어봐>는 제작비 5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우주 SF를 표방하며 대중적 기대심리를 크게 자극했다. 하지만 결과는 냉랭했다. 2020년대 이후 tvN 토일 드라마 중 최저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자의 외면을 받았고 시청률 또한 4%를 넘지 못했다(tvN 토일 드라마 중 처음으로 1%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로맨틱코미디의 메인 타깃이 2030 여성 시청자인 것을 감안할 때 무중력상태에서 찌그러진 정자를 펼쳐서라도 인공수정을 해내야 한다는 과업은 2025년 여성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너무 구시대적이었다. 장르물 팬덤의 약화, OTT로 인한 고정 시청층 분산 등 다양한 분석이 제기됐지만 사실 모두 궁색한 이유다. 같은 시기에 더 작은 예산으로 제작된 <나의 완벽한 비서>와 <모텔 캘리포니아>가 현대적이고 진보적 가치를 계승하며 시청자의 선택을 받았던 점을 감안하면 <별들에게 물어봐>는 작품 외부가 아닌, 작품 내부. 그러니까 지금 시청자가 진짜 보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예측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음을 뼈아프게 인정해야 한다. 드라마 속 많은 대사에 ‘섹스’라는 단어가 노골적으로 등장하지만 그것이 드라마의 진보성의 전부라면, 구태여 시청자가 현실을 떠나 드라마의 빈약한 상상력에 기댈 이유가 사라진다. 특히 모든 배우가 공중 위로 둥둥 떠다니는 기술적 액션은 무중력 우주정거장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묘사하는 데 힘을 보태지만 우주비행사라는 직업인으로서의 고민과 소명, 책임과 회피 등을 더 깊이 그려내지 못하면서 직업물로서도 로맨스물로서도 애매한 면모를 갖추게 된다.
2025년 기대작으로 자주 언급됐던 <북극성> 또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김희원과 정서경, 전지현과 강동원의 합작이라는 사실만으로 이목을 끌었지만 이색적이거나 신선한 스토리 변주 없이 흘러갔다는 인상이 강하다. 일련의 사건 이후 대통령이 되겠다고 결심한 문주(전지현). 여기까지만 해도 <북극성>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전지현의 새 얼굴을 보여줄 듯 보였다. 하지만 정통 로맨스의 포맷이 그 한계선을 만들어버린 것일까. 백산호(강동원)의 비호 아래 활약하는 문주의 모습은 뻗어나가기보다 정지하고, 주도적이기보다 수동적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문주와 산호의 로맨스의 비중을 키워가느라 여성 캐릭터의 욕망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 또한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정통 로맨스와 여성주의. 시리즈 작품의 과업처럼 남아버린 희미한 경계는 <북극성>조차 풀어내지 못한 모양새다. 2025년 현재, 동시대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가. 혹은 무엇에 반응하고 무엇을 ‘설렘’으로 인식하는가.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삐거덕거리는 로맨스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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