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잊지 못할 사랑의 추억 한 자락이 있을 것이다. 헤어진 이유는 분명 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이유는 바래고 추억은 진해진다. 그러다 우연히 과거에 사랑했던 그 사람을 마주한다면?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만약에 그때 그랬다면' '그래서 헤어지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 영화 '만약에 우리'는 그런 우리의 보편적인 감정선을 묵직하게 건드리는 로맨스물이다.
무엇보다 '만약에 우리'의 감정선을 완성시키는 건 구교환과 문가영의 세밀한 연기에 있다. 구교환의 팔색조 매력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드라마 'D.P.'의 한호열이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방구뽕, 혹은 '탈주'의 리현상 같은 독특한 인물이 새록한지라 본격 대중 로맨스물에서의 구교환은 어떨지 살짝 의구심이 있었는데, 완벽한 기우다. 로맨스물의 남주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와장창 깨는 구교환 특유의 리듬감이 물씬한 로맨스 남주를 만끽할 수 있다. 홍합 껍데기를 와작와작 씹어 먹고, 술자리에서 탈춤을 추는 '이 동네 섹시가이'가 "내가 널 놓쳤어" 하며 오열하기까지 보여주는 다양한 변주가 놀라울 따름이다. 문가영은 이미 드라마 '사랑의 이해'에서 현실에 휘둘리는 사랑의 감정선을 훌륭하게 선보인 바 있는데, '만약에 우리'에선 불안정한 20대부터 단단해진 30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연기로 시선을 붙든다. 버스 안에서 은호의 전화번호를 삭제하고 터트리는 오열 신의 얼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
'82년생 김지영'을 연출했던 김도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인 '만약에 우리'는 2025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개봉한다. 지나간 사랑과 함께 흘러간 2025년에 안녕을 고하는데 좋은 선택이 되어줄 것. 러닝타임 115분,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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