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 고요한…한국 드라마가 본 적 없는 얼굴

넷플릭스 '자백의 대가' 스틸 컷
넷플릭스 시리즈 '자백의 대가' 속 모은(김고은)은 서늘한 정적 그 자체다. 치과의사 부부를 살해한 뒤 그들의 아들마저 죽이려 기다리는 거실, 동작에는 한 치의 과잉도 없다. 나른한 얼굴로 일과처럼 침착하게 살인을 준비한다.
드라마는 이 명백한 악인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투명한 존재로 남겨두며 시청자를 시험한다. 배우 김고은은 이 모호한 심연에 강력한 설득력을 부여하며 극 전체의 공기를 지배한다. 단정한 표정과 낮은 목소리로 감정의 기복을 철저히 억제한다.
극 중 모은은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부채감과 뒤틀린 복수심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감정을 밖으로 내보이는 법은 없다. 심한 폭력을 경험한 일부가 보이는 '감정 둔마' 상태다. 모든 감정이 무뎌졌고, 타인과의 연결도 끊어졌다. 반응 자체를 낮추며 현실 세계와 거리를 둔다.
김고은은 단순한 무감각이 아닌, 깨지기 쉬운 자아를 지키려는 필사적인 방어 기제로 해석했다. 그는 "인물을 표면으로 노출하지 않고 차단된 지점에 머물게 했다"며 "표정 없이도 많은 것이 전달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는 울음, 고백, 격정적 폭발 등으로 상처를 해소하던 기존 한국 드라마의 정서 문법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배우는 대사보다 태도와 리듬으로 시청자를 설득해야 한다.

넷플릭스 '자백의 대가' 스틸 컷
난제 앞에서 김고은의 연기는 기술의 차원을 벗어난다. 움직임부터 최소화한다. 앉아 있는 장면에서조차 몸을 고정한 채 시선과 미세한 호흡만으로 화면을 채운다.
카메라 앞에서 동작을 최소화해 시청자의 시선을 묶어두는 건 웬만한 확신 없이는 불가능한 영역이다. 하지만 그의 화면에서는 정지된 상태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눈꺼풀 떨림 하나가 그 자체로 거대한 사건처럼 다가온다. 이 정지된 연기가 만드는 냉정함은 관객에게 두려움을 주는 동시에, 인물이 얼마나 깊은 곳에서 자신을 차단하고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발성으로 전달하는 효과도 못지않다. 한국 드라마에서 유사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감정을 설명하고 증폭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김고은은 정반대를 택한다. 낮은 목소리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감정을 강조하려 성량을 키우거나 문장 끝을 올리지 않는다.
침묵은 말보다 강한 존재감을 나타내고, 절제된 언어는 정보 전달이 아닌 상대를 향한 심리적 압박으로 작동한다. 최소한의 표현으로 최대한의 긴장을 만드는 역설. 이것이 작품 전체를 지탱하는 힘이다.
원본보기
이는 김고은에게 큰 변화이기도 하다. '도깨비'와 '더 킹: 영원의 군주', '작은 아씨들'까지만 해도 그는 감정의 밀도를 전면에 내세우는 데 탁월했다. 눈물과 미소, 분노와 슬픔을 선명하게 구분해 시청자에게 전달했다.
올해 공개된 '은중과 상연'과 '자백의 대가'에서는 감정을 정교하게 관리하고 통제하는 단계로 올라섰다. 시청자는 그가 연기하는 배역을 이해하려 할수록 불편해지고, 판단하려 할수록 확신을 잃는다. 그 불투명함이야말로 김고은이 의도적으로 설계한 '오해의 공간'이다.
감정을 감춤으로써 오히려 그 무게를 보존하는 모순. 모은은 그렇게 시청자에게 각인됐다. 이해할 수 없지만 지울 수 없는, 한국 드라마가 본 적 없는 얼굴로.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https://naver.me/55PdZh2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