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흘렀고, 쉽게 멈추지 않았다.
영화 속 감정에 빠져든 건지, 과거 기억 속 어떤 아픔을 건드린 건지, 아니면 그도 아닌 무엇이었는지는 끝내 분간할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건, 이 영화가 관객에게 울라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느 순간,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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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익숙한 얼굴로 다가온다. 또 하나의 첫사랑 이야기, 장기 연애의 기억, 헤어진 연인의 재회라는 멜로의 전형. 그래서 초반부에는 솔직히, “아, 이런 결이겠구나” 싶어진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짜 얼굴은 중후반부부터 드러난다. 이 지점부터 배우들의 연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구교환과 문가영은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말보다 숨, 표정보다 망설임으로 관계의 균열을 보여준다.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들, 그리고 그래서 더 아파지는 장면들.
이들의 중후반부 이후의 연기는 단연 압권이다. 처음엔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던 흑백 처리 역시 이야기가 쌓일수록 명확한 의미를 획득한다.
감정의 고조를 위한 장치처럼 보였던 선택은, 결국 이 영화의 정서를 가장 정확히 설명하는 언어가 된다.
색을 덜어낸 화면은 오히려 감정을 더 선명하게 만들고, 그 흑백은 과거의 미화도, 현재의 단절도 아닌 ‘기억이 되어버린 사랑’의 얼굴, 그리고 그 모든 걸 지나온 지금 우리의 얼굴과 겹쳐진다.
김도영 감독의 연출은 끝까지 섬세하다. 감정을 키우기보다 지켜보고, 관객을 끌어당기기보다 기다린다.
그래서 이 영화는 서서히 깊게 파고 들어, 조용히 오래 울게 만든다. 연출도, 연기도 섬세함의 끝에 가 닿아 있기에 가능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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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살아남기 힘든 장르임에도, 반드시 계속 존재해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다.
오랜만에 만나는, 오래 빛날 멜로다. 추신, 놓았던 아픔은 있을지라도, 이 영화는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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