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여름 일본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도쿄의 폭염 속에서도 예술영화관 온라인 예매는 연일 매진을 기록했고, 2,000엔짜리 팸플릿이 불티나게 팔렸다. 일본 관객으로서는 자국의 전쟁 책임과 식민지 지배를 다룬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보길 잘했다, 귀중한 기록을 남기고 좋은 영화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라는 호평이 쏟아졌다. 내년 재상영 또한 예정되어 있다.
올여름 일본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프리미어로 공개되어 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작에 주어지는 비프메세나상을 수상했다. 올해 90살을 맞은 재일 교포 2세 박수남 감독이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고, 그 뒤에서 딸이자 공동 감독인 박마의 감독이 휠체어를 밀며 레드카펫을 걷는 장면을 기억하는 관객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2025년 8월15일 광복절에 KBS에서 방영되며 다시 주목을 받았다.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박수남 감독이 1964년부터 오디오와 메모로, 1985년부터 비디오로 기록해온 다양한 구술 역사를 담은 작품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자폭탄에 피폭된 조선인, 나가사키의 군함도나 규슈의 지쿠호 탄광에 강제징용된 조선인, 오키나와 전쟁에 나가 싸워야 했던 조선인 병사와 위안부 여성들. 그 기록은 박수남 감독의 인생과 공동 감독을 맡은 딸 박마의와의 관계에 녹아들어 다층적인 구조를 만들어내며 148분 동안 관객을 사로잡는다.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박수남 감독의 기록자 경력의 출발점이 된 ‘고마쓰가와 사건’(1958년 재일조선인 청년이 일으킨 살인사건)도 다룬다. 박수남 감독은 이 사건의 범인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이진우(당시 18살)와 방대한 양의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이를 엮어 1963년 <죄와 죽음과 사랑과>란 제목의 서간집을 출간했다. 이 책은 당시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고, 이를 바탕으로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영화 <교사형>을 제작했다고 한다.
올해 7월 도쿄 시사회에서 <되살아나는 목소리>를 보았을 때, 박수남 감독이 “오시마가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만들었어”라고 말하던 짧은 장면을 나는 잊을 수가 없었다.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프로듀서이자 함께 시사회에 참석했던 남편 아라이 가오루도 같은 의견을 표했다. <교사형>을 다시 보고, 이미 절판된 <죄와 죽음과 사랑과>를 중고 서점에서 구해서 읽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죄와 죽음과 사랑과> 없이 <교사형>은 존재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부인이자 여배우인 고야마 아키코가 연기한 캐릭터는 박수남 감독 그 자체였다. 그러나 <교사형>의 엔딩크레딧에는 <죄와 죽음과 사랑과>가 원작이라는 사실도, 박수남 감독의 이름도 언급되지 않았다.
사형수 이진우와 박수남 감독이 주고받은 옥중서신(<죄와 죽음과 사랑과>, 산이치쇼보 펴냄, 1963)과 영화 <교사형>의 각본(<교사형 오시마 나기사 작품집>, 시세이도 펴냄, 1968)을 비교 분석한 결과, 11개의 도용을 발견했다.
스스로 표절을 인정한 오시마 나기사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직접 자신의 표절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그는 인터뷰와 저서에서 박수남 감독의 서간집 <죄와 죽음과 사랑과>를 표절해서 영화 <교사형>을 만들었다고 명시한다.
“서간집을 읽긴 했지만, 당시에는 뭘 어떻게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교사형>의 시나리오를 쓰기로 하고 다시 읽어봤습니다. 이진우는 감옥에 갇혀서 사형 집행일이 다가오는 가운데 마침내 진정한 자아를 찾았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편지들은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해요. 그녀를 만나서 처음으로 타인의 죽음이라는 개념이 그의 상상력 속에 들어오니까요. 그런데 그 사람이 거기서 반성하면 지루해질 테니, 그 부분이 풀어내기가 어려웠죠. 박수남이라는 실명을 쓰면 안될 것 같아서 이름은 쓰지 않았습니다.”(<오시마 나기사 1968>, 오시마 나기사 지음, 세이도샤 펴냄, 164~165쪽)
“저는 진짜 박수남을 몰라요. 이건 우리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들의 비법인데, 구체적인 관련 인물을 되도록이면 만나지 않고 상상하는 게 좋습니다. 그 상대방을 만나면 현실의 박수남에게 끌려 들어가거든요. 저렇게 희화화하려면 상대방을 모른다는 장점이 있어야 합니다. 대신 그 서간집만은 열심히 읽었죠. 책에서 가장 좋은 부분들을 가져다 썼습니다.”(같은 책, 165쪽)
“박수남은 조총련 소속이었습니다. 그녀의 책을 작품의 소재로 삼고 허락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박수남의 반응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상하죠? (웃음) 북한이 얼마나 폐쇄적인 사회인지, 뒤집어 말하면 우리에 대한 태도가 얼마나 배타적인지 보여준다고 할 수 있죠.”(같은 책, 167쪽) 박수남 감독은 1961년 말에서 1962년 초 사이에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에서 추방당했다.
“저는 한번도 박수남과 만난 적이 없습니다. 글을 인용했으니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죠? 전 절대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박수남 감독을 아무리 없애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으니까요. 상대하면 손해다, 오히려 상대방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뿐이라고요.” (같은 책, 172쪽)
저자의 허락조차 구하지 않고 “책에서 가장 좋은 부분들을 가져다 썼다”라고 당당히 선언하는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태도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 사실은 단순한 창작 윤리의 문제를 넘어 영화 <교사형> 제작의 심각한 결함을 드러낸다. 나는 묻고 싶다.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지 않고 <교사형>을 상영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오시마 나기사의 아들, 오시마 아라타에게 묻다
<교사형>의 엔딩크레딧이나 시나리오, 그 어디에서도 ‘박수남’이나 <죄와 죽음과 사랑과>라는 고유명사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면밀히 추적한 결과, 영화 개봉 무렵에 발간된 소책자 <예술극장>55호(1968년 2월 발행, <교사형> 특집호)의 ‘후기: 시나리오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형제도 문제와 고마쓰가와 사건에 관한 수많은 글과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특히 박수남씨가 엮은 소년의 서간집 <죄와 죽음과 사랑과>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존경을 표합니다.”
박수남 감독의 책을 “이 책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인정할 정도로 표절하고, 다른 매체에서 일방적인 감사를 표하는 것은 어떤 심리일까. 표절을 한 사람이 허락도 받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으면서, 피해자에게 감사를 표할 권리가 있을까? 이 문장을 읽은 당시 독자들은 아마도 박수남 감독의 동의를 얻고 서간집을 참고했다고 오해할 것이다. 이는 오만하고 비겁하며 음흉한 수법이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2013년 1월에 별세했다. 영화 <교사형>을 포함한 작품의 저작권자는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아들인 오시마 아라타(영화감독, 프로듀서, 오시마 나기사 프로덕션 주식회사 대표)다. 이 문제에 관해 오시마 아라타에게 의견을 구했다.
“양영희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알게 된 일들이 많습니다. 당연히 박수남씨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교사형>에 박수남씨의 이름과 저작권을 명시해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부주의했던 것인지, 그 시대가 부주의했던 것인지. 설령 그 시대의 영화제작 방식이 부주의했다고 해도 그것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상처를 받은 분이 있고, 그대로 방치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양영희씨가 지금 지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타인의 저작물을 작품에 사용할 때는 반드시 당사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크레딧에 명확하게 밝혀야 합니다. 이것이 앞으로 영화제작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릅니다. 잘못했다면 바로잡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박수남 감독은 현재, 이 표절 문제에 관한 공식 성명 발표를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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