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잡한 도시의 어딘가를 부지런히 오가는 청년 태중(지창욱). 배달기사인 그는 한 순간도 낭비하지 않는 성실한 인물이다. 동생의 공부를 뒷바라지하고 열심히 모은 돈으로 곧 오랜 꿈이던 화원 개업을 코 앞에 둔 모범적인 소시민. 꿈을 향해 내달리던 그의 바쁜 일상에 제동을 건 의문의 전화 한통을 끝으로 태중의 인생은 송두리째 무너진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여자를 강간 살인했다는 누명을 쓰고 체포된 그는 있는 힘껏 항변하지만, 너무도 명확한 증거들 앞에 속수무책으로 살인자가 되고 만다.
디즈니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조각도시'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남자의 맹렬한 복수를 그린다. 초반부는 영문도 모른 채 범죄자의 낙인을 안고 삶을 빼앗긴 선량한 인물 '태중'의 절망에 초점을 맞춘다. 복수 고전 '몬테크리스토'처럼 선의로 가득했던 남자가 누명을 쓰고 모든 것을 잃은 뒤, 자신을 파괴한 인물을 향해 복수를 감행한다는 플롯을 따른다. 그러나 누명과 복수극의 익숙한 외피에 강렬한 액션과 디지털 범죄, 보다 규모를 확장한 배후 세력 등으로 차별을 꾀했다.
원작인 '조작된 도시'에 이어 드라마로 재탄생하며 지어진 '조각도시'의 의미는 7화에 이르러서야 정체를 드러낸다. "조각은 증거를 조작해주는거다. 누군가 살인을 했을 때 의뢰인 대신 잡혀갈 모델을 찾아서 24시간 내내 따라다니며 필요한 걸 채집한다. 그래야 확실하게 바꿔치기 할 수 있다. 증거가 완벽할수록 당하는 놈은 빼도박도 못하니까."

부유한 자들이 저지른 살인을 은폐하고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는 '조각'. 원작 영화가 게임·현실의 교차를 전면에 내세운 '게임적 복수극'을 그려 당대 디지털 사회상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다면 이번 시리즈는 서사의 확장, 인물의 감정과 심층화를 택했다. 부와 권력의 부패한 시스템을 폭로하고 사회적 구조를 겨냥하며 스케일을 확장했다.
'진실이 조작되는 사회'와 '권력이 기록을 어떻게 재편하는가'라는 묵직한 주제를 가져와 한 악의 대결은 시리즈 초반부터 긴장을 유지하며 시청자의 시선을 잡아끈다. 복수를 소재로 하지만, 결국 우리 사회가 기록·데이터·이미지로 만들어내는 '사실의 권력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드라마가 품은 미덕은 장르적 쾌감(액션·추격)과 더불어 철학적 테마를 담아, 장르물로서의 즉각적 만족과 사회비판적 메시지 사이의 균형을 꾀하고 있다.
박태중은 그 구조가 만들어낸 첫 희생자이자, 동시에 그 구조를 무너뜨릴 감정의 원동력이다. 원작에 이어 드라마에서도 주연을 맡은 지창욱은 단단하게 이 감정의 서사를 지탱하는 한편, 날렵한 액션을 선보인다. 최근 남성적인 캐릭터를 주로 연기하고 있는 그는 초반부의 성실하고 순수한 인물에서 점차 공포와 부정, 좌절과 상실로의 변화 이어지는 분노와 각성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의 복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태중의 평범한 삶이 있었기에 더욱 폭발적인 동력을 얻는다.

데뷔 후 첫 악역을 연기한 도경수는 음침한 조각의 뿌리이자 순수악 '요한'을 맡아 지창욱과 대립한다. 짐작조차 할 수 없던 배후로 점차 수면 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요한은 중반부부터 본격적인 대결구도를 만들어간다. 요한이 단순히 재미만을 위해 짜놓은 죽음의 레이스판에 태중이 끌려오며 서서히 반격이 시작된다. 격렬한 자동차 레이스와 바이크 질주 신, 맨몸 액션까지 초반에 쌓아올린 분노의 감정은 다양한 액션 신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수위 높은 잔혹 장면과 욕설, 폭력이 난무하는 이 복수극에서 지창욱은 원작에 이어 작품의 무게와 감정 등 많은 부분을 지탱한다. 박태중은 절망·생존·혼란·분노·결의라는 감정의 모든 층위를 보여주는 드라마틱한 인물이다. 영화에 이어 이번 작품을 선택한 지창욱은 태중의 복합적인 감정 구조를 탄탄히 구축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또 한번 확장시켰다.
정명화(칼럼니스트)
https://naver.me/IM4McW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