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연은 외로움의 바다에 사는 것 같다. 끝없이 외로우면서, 더욱이 외로움을 자처한다. 다른 이에게 사랑을 바라지 않는다. 모두가 천상연을 쉽게 사랑하는데도.
류은중이 천상연의 예외가 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천상연이 처음 사귄 친구였고, 죽은 오빠를 알며, 죽은 엄마를 아니까. 멈춰버린 상연의 시간 속에서 은중은 상연에게 남은 유일한 존재가 된다.
상연은 다른 사랑을 통해 가족의 죽음을 잊으려 하지 않는다. 애도하지 못한 마음을 안고 그들이 떠난 시간 속에 자신을 가두고 살아간다.
은중은 상연의 가족의 죽음에 슬퍼한다. 그러나 상연은 은중처럼 눈물 흘리지 않는다. 은중에게 그들이 특별한 존재였을지언정 상연이 세상 누구보다 깊이 슬펐을 텐데.
상연은 가족의 죽음을 애도하지 못한다. 오빠의 죽음을 자신 때문이라 오해해서, 그 오해가 풀려도 자책한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는, 엄마를 미워한 마음과 화해할 시간조차 없이 엄마가 곁을 떠나 버렸다.
상연은 가족을 잃은 슬픔을 오로지 은중을 통해서만 해방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은중에게만은 힘들다고 말할 수 없다.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순간 은중마저 떠날까 두려운 것일까. 목숨보다 중요한 자존심 때문일까, 사랑받는 은중을 향한 질투일까, 혹은 그 어느 것도 아닐까.
그래서 상연은 은중을, 아니, 자기 자신을 파괴한다. 애도하지 못한 자신을, 은중 곁에 있으면 못나 보이는 자신을 파괴한다. 그럼에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은중이 자신을 미워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