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 감정의 사계를 담았기 때문일까? <함부로 애틋하게>는 두 주연 캐릭터마저도 계절 같다. 준영은 겨울, 을은 봄.
<함부로 애틋하게> 속 준영은 겨울 소년이다. 얼음 궁전 같이 큰 집을 혼자 외로이 지키고 있는 겨울 소년. 따뜻한 엄마의 온정을 원하지만 꽁꽁 감춘 비밀을 터놓을 수 없어 끊임없이 외면 받고 비난 받는 존재.
그럼에도 ‘정의’나 ‘영웅’을 말하는 소년. ‘정의’의 상징으로 보였던 아버지가 준영의 ‘영웅’이었으나 그에게 실망한 뒤에도, 준영은 여전히 차변호사 같은 ‘영웅’의 존재를 믿는 '소년'이다. 또한 다른 누군가의 영웅이기도 한 준영.
겨울 소년인 준영의 주변에는 늘 차가운 기운이 가득하다. 준영의 진심을 모른 채 차가운 말만 내뱉는 주변 사람들과 서서히 잠식해 들어오는 병마. 준영은 그 모든 고통을 작게 웅크리고 앉아 혼자 감내한다. 뇌간교종의 고통에도 비명 한 번 지르는 법 없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앓는 모습은 준영의 캐릭터를 여실히 보여준다.
준영은 결코 자신의 고통이나 아픔을 겉으로 표현하는 법이 없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괴로운지. 알아 달라고 소리치지 않는다. 그 모든 괴로움이 자신의 과오로 인한 것이라며 순순히 받아드릴 뿐이다.
마지막 회가 돼서야 ‘살고 싶다’고 소리치는 준영의 모습이 그런 준영의 성격을 대변한다. 아마 을이 죽고 싶다 하지 않았다면, 준영은 끝까지 ‘살고 싶다’라는 속 안의 진심을 고백하지 않고 홀로 삼켰을 것이다. 자신의 진심을 터놓는 순간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훨씬 더 힘들어 질 거라는 걸 준영은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있었으니까.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춥게 둘 수 없어서 시린 겨울은 저 혼자 끌어안으며 끝까지 미소를 짓는 모습은 준영이 겨울인 이유다.
반대로 을은 봄 소녀다. 을은 막 피어나는 새싹처럼 꿈틀거린다. 세상 사람들에게 제 기운을 나누려는 듯 남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고 생동하는 에너지가 넘친다.
시련에 꺾였을 때도 바로 포기하는 법이 없다.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진범을 찾을 수 없다면 최현준의 사생활을 캐서라도, 그도 안 되면 이은수의 기업 비리라도. 끊임없이 움직인다. 밟아도 밟아도 피어나는 새싹처럼.
비록 세상의 불합리에 순응하고 움츠러들었지만 을은 여전히 봄 소녀였을 거다. 비록 부정하게 받은 돈일지라도 구세군 냄비에 오만원을 넣는 모습이 그렇다.
다큐 피디라는 직업마저도 너무나도 봄 같지 않나. 을은 비록 속물 피디처럼 굴었지만, 다큐라는 매개를 통해 끊임없이 세상을 따뜻하게 할 봄을 찾아 헤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을에게 봄을 되찾아 주겠다는 준영의 말은 을을 원래 모습으로 돌려놓겠다는 말과 같다. 봄소녀 같았던 을로 돌려놓겠다는 것.
드라마는 겨울소년 준영이 봄소녀 을에게 봄을 되찾아 주는 것은 물론, 제 주변 모든 사람에게 봄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겨울이 가니 봄이 오는 자연의 섭리와도 같이, 준영이 떠난 자리는 봄이 되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준영라 을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함부로 애틋하게> 속 준영은 겨울 소년이다. 얼음 궁전 같이 큰 집을 혼자 외로이 지키고 있는 겨울 소년. 따뜻한 엄마의 온정을 원하지만 꽁꽁 감춘 비밀을 터놓을 수 없어 끊임없이 외면 받고 비난 받는 존재.
그럼에도 ‘정의’나 ‘영웅’을 말하는 소년. ‘정의’의 상징으로 보였던 아버지가 준영의 ‘영웅’이었으나 그에게 실망한 뒤에도, 준영은 여전히 차변호사 같은 ‘영웅’의 존재를 믿는 '소년'이다. 또한 다른 누군가의 영웅이기도 한 준영.
겨울 소년인 준영의 주변에는 늘 차가운 기운이 가득하다. 준영의 진심을 모른 채 차가운 말만 내뱉는 주변 사람들과 서서히 잠식해 들어오는 병마. 준영은 그 모든 고통을 작게 웅크리고 앉아 혼자 감내한다. 뇌간교종의 고통에도 비명 한 번 지르는 법 없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앓는 모습은 준영의 캐릭터를 여실히 보여준다.
준영은 결코 자신의 고통이나 아픔을 겉으로 표현하는 법이 없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괴로운지. 알아 달라고 소리치지 않는다. 그 모든 괴로움이 자신의 과오로 인한 것이라며 순순히 받아드릴 뿐이다.
마지막 회가 돼서야 ‘살고 싶다’고 소리치는 준영의 모습이 그런 준영의 성격을 대변한다. 아마 을이 죽고 싶다 하지 않았다면, 준영은 끝까지 ‘살고 싶다’라는 속 안의 진심을 고백하지 않고 홀로 삼켰을 것이다. 자신의 진심을 터놓는 순간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훨씬 더 힘들어 질 거라는 걸 준영은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있었으니까.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춥게 둘 수 없어서 시린 겨울은 저 혼자 끌어안으며 끝까지 미소를 짓는 모습은 준영이 겨울인 이유다.
반대로 을은 봄 소녀다. 을은 막 피어나는 새싹처럼 꿈틀거린다. 세상 사람들에게 제 기운을 나누려는 듯 남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고 생동하는 에너지가 넘친다.
시련에 꺾였을 때도 바로 포기하는 법이 없다.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진범을 찾을 수 없다면 최현준의 사생활을 캐서라도, 그도 안 되면 이은수의 기업 비리라도. 끊임없이 움직인다. 밟아도 밟아도 피어나는 새싹처럼.
비록 세상의 불합리에 순응하고 움츠러들었지만 을은 여전히 봄 소녀였을 거다. 비록 부정하게 받은 돈일지라도 구세군 냄비에 오만원을 넣는 모습이 그렇다.
다큐 피디라는 직업마저도 너무나도 봄 같지 않나. 을은 비록 속물 피디처럼 굴었지만, 다큐라는 매개를 통해 끊임없이 세상을 따뜻하게 할 봄을 찾아 헤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을에게 봄을 되찾아 주겠다는 준영의 말은 을을 원래 모습으로 돌려놓겠다는 말과 같다. 봄소녀 같았던 을로 돌려놓겠다는 것.
드라마는 겨울소년 준영이 봄소녀 을에게 봄을 되찾아 주는 것은 물론, 제 주변 모든 사람에게 봄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겨울이 가니 봄이 오는 자연의 섭리와도 같이, 준영이 떠난 자리는 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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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영라 을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