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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폭싹 [씨네21] '폭싹 속았수다' 아이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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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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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의 변곡점은 우리의 변곡점이기도 하다.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부르던 하얀 소녀가 3단 고음을 달성했을 때 대중은 완연한 가창의 힘에 환호했고, 시간을 탐험하는 리메이크 앨범이 나왔을 땐 많은 이가 이유 모를 노스탤지어를 따라 향수병을 앓았다. 그가 악플러와 전면전을 선택한 뒤엔 아이돌의 인간다운 삶을 이해하고 고민하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비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나이 시리즈에 제각기 자기 나이를 되돌아보는 풍경도 생겨났다. 아이유가 너른 토양에 수로를 만들면 사람들의 마음은 그 길을 따라 졸졸졸 흘러갔다. 이제 막 자신의 동심원을 넓히기 시작한 이는 무수한 이야기를 성실하게 좇았다. 아직 어리거나 미숙한 사회 초년생의 앳된 얼굴을 그렸던 <드림하이> <최고다 이순신>을 지나, 웃음으로 채 가리지 못한 슬픔을 드러낸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서늘하리만치 바싹 마른 얼굴을 찾아낸 <나의 아저씨>, 장르적 무게를 짊어진 <호텔 델루나>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는 아이유를 이루는 각기 다른 색깔의 퍼즐 조각이 됐다. 스크린을 잇는 <브로커>와 <드림>은 아이유가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무한대로 열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엄마가 된 아이유를 본다. 아이들을 두고 그가 “아가~”라고 외치는 장면을 본다. 까마귀처럼 웃던 10대 소녀가 어느덧 사랑으로 빚은 호칭을 발음하는 장면은 여전히 신기하고, 생경하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진다. 우린 다음에 어떤 아이유를 만날 수 있을까. 아이유가 구획해둔 수로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폭싹 속았수다>를 통해 애순과 금명의 삶을 착실하게 그려낸 그는 이제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애를 명중한 환희와 울음을 안다. 우리의 삶은 그것으로 또 새로운 표정과 경험을 행운스레 얻어낸다. 봄여름가을겨울을 지나 다시 봄. 아이유의 수로는 아마도 바다로 향하고 있을 게 확실하다.



- 4주 동안 봄여름가을겨울까지 총 16부가 모두 공개되었어요. 지금까지 거쳐온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폭싹 속았수다>는 유독 배우 아이유의 남다른 애정이 느껴져요. 이토록 열렬히 사랑한 것과 작별하는 기분은 어때요.

= 그게 밖으로도 다 보이는군요? (웃음) 맞아요. 다른 때에 비해 더 많이 아쉬워요. 18년 동안 활동하면서 예상치 못하게 주목을 크게 받는 때가 있고 생각보다 조용히 흘러가는 때가 있어요. 그동안 넓은 진폭의 감정과 상황을 전부 느껴봤다고 생각했는데도 <폭싹 속았수다>가 공개된 이후엔 지인들로부터 정말 많은 연락을 받았어요. 가수와 연기 활동 통틀어 <좋은 날>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응원을 받은 것 같아요. 다들 즐겁게 누리고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져서 그게 너무 감사해요. 한달이 이렇게 짧았나 싶기도 하고요. <폭싹 속았수다> 공개를 기다리던 1년은 너무 길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3월은 정말이지 호로록 지나갔어요. 봄처럼 호로록.



- 본래 대본을 보면서 잘 우는 성격이 아닌데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는 많이 울었다고요. 텍스트 버전의 <폭싹 속았수다>는 어땠나요.

= 임상춘 작가님과의 첫 작업이라 더 그랬겠지만, 너무 깜짝 놀랐어요. 모든 장면 묘사가 너무 정확하고 구체적이었거든요. 대사뿐만 아니라 언어 이외에 남는 여백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눈앞에 그려지도록 써 있었어요. 연출과 다름없을 정도로 상세한 묘사였죠. 김원석 감독님께서도 그러시더라고요. 너무 두근거리면서도 너무 어려운 대본이라고요. 모든 배우들의 마음이 똑같았을 거예요. 정확한 만큼 모든 상상을 그대로 구현해내고 싶었거든요.



- 유튜브 채널 <살롱드립2>에 출연해 임상춘 작가에게 눈물 셀카를 보내기도 했다고 말했어요. 문득 궁금해요. 어떤 장면이었나요.
= 여러 번 울어서 조금 희미하지만, 두 장면이 짐작돼요. 첫 번째는 나문희 선생님과 염혜란 선배님 파트. 나문희 선생님의 역할인 춘옥이가 세상을 떠나는 장면이요. 특히 저는 할머니와 무척 애틋해서 이런 이야기에 눈물 장벽이 낮은 편이에요. 근데 그 장면의 대사와 감정이 유독 아리더라고요. 우리 작가님은 자극적인 표현을 쓰지 않으세요. 계속해서 뭉근하게 저으며 끓이다가 꾸덕해지는 마음으로 접근하시거든요. 춘옥과 광례(염혜란)의 이별이 그랬어요. 공들여진 이별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또 두 번째는 금명이가 영범(이준영)이와 헤어지던 장면이 떠올라요. 작품 속에서 금명이가 영범이와 오래 만났다고 언급되긴 하지만 애순과 관식의 감정만큼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아요. 오히려 생략된 지점이 많죠. 뚜렷한 데이트 장면이 나오지도 않고요. 그래서 상상으로 채워야 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이들의 사랑은 어땠을까, 두 친구는 어떻게 유대감을 쌓아왔을까 어림짐작하면서요. 그런데 이별 신만큼은 또 너무 구체적이고 정확한 거예요. 그때 비로소 알겠더라고요. 작품이 다루지 않았던 이 둘의 긴 연애가 어떤 모양이었는지. 두 사람이 어떤 시간을 보내왔는지. 금명이와 영범이의 이별은 이 둘이 서로를 가장 사랑하는 장면이기도 해요.



- 가장 선명한 사랑을 보여준 장면이 헤어짐이었다고 생각하면 너무 애처롭게 느껴져요.
= 7년간의 연애. 금명이로서 제가 머리로 외워야 했던 설정이었는데 그 장면만큼은 그동안 누적된 시간과 슬픔이 고스란히 전이되는 느낌이었어요. 7년간 사랑한 사람들은 이런 말들을 하겠구나. 작가님은 혹여 이런 사랑을 통과해온 것일까, 하면서요. 마지막에 금명이는 꾹꾹 참아요. 오늘 나는 무조건 헤어진다는 결심을 안고 있고, 반면 영범이는 오늘 무조건 금명이의 마음을 돌린다는 또 다른 결심을 품고 있죠. 둘은 양극단에 선 서로의 결심을 감지했을 거예요. 특히 대사가 너무 현실적이에요. 마지막으로 한번 안아보면서 “아, 박영범 냄새”라고 하는 말. 아마도 금명이에게서 영범이와 비슷한 냄새가 나는 시간도 있었겠죠.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 냄새를 느낄 때마다 영범이를 가슴 아프게 기억할 테고요. 몹시 정확하면서도 장면 바깥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글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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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 셀카 장면을 설명하면서 “우리 작가님”이란 표현을 썼어요.

= 저도 모르게. (웃음) 제가 작가님을 너무 사랑하게 됐거든요. 작가님을 자주 만나뵌 것은 아니지만 애순이와 금명이의 삶을 통해 아주 긴 대화를 나눈 기분이에요. 게다가 늘 뜨거운 응원을 보내주세요. <폭싹 속았수다>가 공개된 뒤에 제가 장문의 문자를 보냈어요. 그랬더니 작가님께서도 장문의 답장을 주시더라고요. 꼭 편지 같죠. 리본까지 예쁘게 묶인 선물들 있잖아요. 작가님의 긴 서신을 받는 날이면 그런 선물을 받는 것만 같아요.



- 영화 <브로커>의 소영을 통해 처음으로 엄마 역할을 했지만 정서적으로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 임신·출산·육아를 정통으로 거쳐가는 과정을 선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엄마가 되어본 시간은 어땠나요. 어린 애순이가 된 ‘엄마’의 모습을 어떻게 상상했는지 궁금해요.
= 애순이가 첫아이를 가진 건 18살 때예요. 당시 아주 드문 일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애순이가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건 사실이에요. 또 워낙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었고요. 4막에서 이런 말이 나와요. “내가 경험이 없어서 좋은 엄마가 못 될까 걱정이었다”고. 이 말이 엄마가 된 애순이의 많은 걸 힌트처럼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하면 어쩌지. 내가 아이에게 올곧은 사랑을 주지 못하면 어쩌지. 금명이를 애지중지 키운 이유도 아마도 이 걱정에서 비롯했을 거예요. 또 금명이가 딸이었던 만큼 자신을 투영했을 테고요. 나의 첫째 딸에게는 사랑에 대한 결핍을 주지 않겠노라는 마음이 애순이의 중심축을 이뤘을 거라 생각했어요.



- 금명, 은명, 동명. 세 아이를 임신했을 때의 신체적 변화를 드러내기 위해 계속 복대를 착용하고 있어야 했어요.
= 김원석 감독님은 소품도 하나하나 세심하게 준비하시거든요. 그래서 복대도 사이즈별로 준비해주셨어요. 사람 체구에 따라서 어떤 크기는 어색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또 임부복을 입었을 때 너무 티가 안 나도 안되고 너무 작위적으로 보여도 안되니까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라 금명이를 임신했을 때, 은명이를 임신했을 때, 그리고 동명이까지 모두 다른 크기의 복대를 체크했어요.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첫째 때에는 배가 크게 부르지 않았는데 둘째 때에는 훨씬 크게 부르는. 이 과정에서 저도 주변 사람에게 많은 조언을 구했어요. 사람마다 경우가 제각각이니까요. 그런데 복대가 생각보다 무거워요. 그래서 자연스레 허리를 짚게 되더라고요. (웃음) 자개장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 다리를 벌리고 앉은 것도 모두 복대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세가 바뀐 거예요.



- 단칸방 주인 할머니께서 어린 세입자에게 “고찌글라 고찌가, 고찌글면 백리 길도 십리 된다” (같이 가자 같이 가. 같이 가면 백리 길도 십리 된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애순의 눈물은 다른 곳이 아닌 만삭의 배 위로 떨어지죠.
= 대본에 눈물이 떨어지는 타이밍까지 명확하게 적혀 있었어요. 할머니께서 그 말씀을 하실 때 애순이의 눈물이 배 위로 뚝 떨어진다고요. 이 장면을 촬영할 즈음엔 타이밍 계산에 익숙해져서 정말 신기하게도 눈물이 바로 났어요. 저절로 그렇게 돼요. 할머니 목소리로 따뜻한 대사를 듣는 순간 바로 눈물이 나거든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작가님도 이 장면을 쓰면서 울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이 대사가 나올 즈음에 눈물이 나온다는 것을 아신 게 아닐까, 하고요.



- 이번 작품에 주어진 미션 중 하나는 1인2역이에요. 젊은 애순과 금명이를 연기했는데요. 애순과 금명을 접근하는 방식은 모녀 관계의 특수성과 비슷합니다. 모녀인 만큼 둘은 닮아 있지만 금명이는 다음 세대로서 자기만의 고유한 문제를 안고 있어야 해요.

= <폭싹 속았수다>는 애순이와 관식이가 주인공인 작품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상세히 표현돼 있어 애순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반면 금명이는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한 캐릭터예요. 왜냐하면 우리는 애순과 관식의 모든 역사를 따라왔기 때문에 이들이 얼마나 다정하고 훌륭한 부모인지 잘 알잖아요. 그런데 금명이는 이들에게 툴툴거린단 말이죠. 도대체 금명의 그늘은 어디서 왔을까. 저는 이걸 알고 싶었어요. 이 지점을 고민하는 데 시간도 꽤 걸렸고요. 저도 저희 엄마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엄마 같지도 아빠 같지도 않은 순간이 있거든요. 그래서 금명이도 꼭 애순이 같지도 관식이 같지도 않은, 금명이만의 인생이 지닌 슬픔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여기까지가 저를 대입해본 상상이고요, 작품적으로 생각해보면 아마도 동명이를 잃었던 슬픔이 빈틈을 만든 것 같아요. 금명이는 크게 티 내지 않아도 자기 때문에 동생이 죽음에 이르렀다는 견고한 죄책감이 마음속에 묻혀 있을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중학생이 된 금명이가 “문제 하나 틀렸어” 하고 툴툴대며 성적표를 갖다주는데 그때 애순이 표정이 반짝 밝아져요. 대본에도 그렇게 표현돼요. “잠시 밝은 기색이 돈다”고. 금명이는 자신이 부모님을 위로해줄 수 있는 나름의 방식을 찾은 거죠. 서울대 합격증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밝은 모습으로 무탈하게 그 목표를 잘 수행해왔는데 서울에 가는 순간 진짜 금명이가 홀로 통과해가야 할 것들이 등장하면서 금명이 안에 그늘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지금까지 삶과 다른 대도시의 생활양식, 경제적 차이가 확연한 연인과의 거리감, 외로운 객지 생활…. 장녀로서 켜켜이 쌓아온 부담감에 일찍 철 든 아이는 4부에서 결국 마음의 둑방을 무너뜨리지만 그가 그렇게 잘 살고 싶은 이유 또한 가족이었다는 점에서 금명이의 삶이 잘 드러나요. 그렇게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 금명이 시선에서 내레이션이 이어지는데요. 어떤 구간은 ‘이거 너무 낮은 거 아닌가?’ 하는 물음이 들기도 해요. (웃음)
= 저도 그래서 녹음하면서 감독님께 “지금 너무 낮나요?” 하고 많이 물었어요. 그런데 이건 사실 50대 금명이의 목소리거든요. 중년이 된 금명이가 애순이의 어린 시절부터 쭉 돌아봐주는 관점이기 때문에 차분함을 유지하는 게 중요했어요. 물론 저도 중간중간 밝고 경쾌하게 내레이션하고 싶은 부분들이 있었어요. 그런 변주가 아주 허용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김원석 감독님께서 “50대의 금명이 목소리라는 걸 잊어선 안됩니다~” 하고 계속 주지시켜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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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몇 장면을 더 깊이 들어가볼까요. 이제 막 배를 사고 둘째를 출산한 애순이는 시댁에서 전과 다른 대접을 받아요. 애순이를 괴롭히지 말라는 관식에게 대꾸하지만 사실상 시어머니를 겨냥한 말을 하기도 해요. “어머님 나 좋아해! 아들 손주에~ 선장에다가~ 은수저에다가~ 미워할래도 미워할 수 없지. 미워하면 그거 되~게 이상한 거 아니야?” 애순의 귀엽고 명랑한 능글맞음은 어떻게 형성된 걸까요.

= 저는 애순이가 두 아이를 낳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흘러서 전보다 여유로워지고 능청스러워졌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그래서 의견을 냈는데 감독님께서 두 가지 버전으로 촬영해보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능청스러운 버전과 덜 능청스러운 버전으로요. 애순이가 워낙 문학 소녀고 섬세한 친구다 보니까 너무 다른 면으로 기우는 건 어울리지 않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아요. 해녀 이모들에게 “원래가요, 단칸방에서도 의지만 있으면 육남매 다 내요” 하고 말하는 장면도 동일하게 두 버전이 있었어요. 나중에 보았을 땐 시어머니께 말하는 장면은 능청스러운 버전이, 해녀 이모들과 말하는 장면은 덜 능청스러운 버전이 선택되었더라고요. 감독님께서 애순이의 균형을 잡아주신 것 같아요. 대단한 장면은 아닐 수 있지만 이제 계옥(오민애)과 묵은 감정을 다 털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싶었어요.



- 작품이 다양한 연령대의 인물을 다루는 만큼 대선배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장면들도 인상적이에요.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 애순이에게 나문희 선생님 목소리로 “왜? 고달퍼?” 하고 건네지는 질문은 화면 밖으로 힘을 뻗어 슬픔을 간직한 모든 사람들을 다독여줘요.
= 사실 지금 인터뷰하기 직전에 나문희 선생님께서 문자를 보내주셨어요. (스마트폰을 확인하며) “지은. 먹는 것도 열심히 먹고 울 때 두손 받쳐 열심히 울어. 고마워. 항상 몸 건강해”라고요. 현장에서도 선생님은 언제나 따뜻하고 온화하세요. 제가 나문희 선생님을 너무 사랑해서 언젠가 꼭 한번 작품을 함께해보고 싶었는데 행운처럼 <폭싹 속았수다>에서 만난 거예요. 이 장면을 찍던 날 촬영 직전에 선생님께서 아무 말씀 없이 현장에 앉아 계시는데 그 분위기에 바로 압도되었어요. 공기 자체가 차분하고 안정적이더라고요.



- 애순이의 비통함이 극에 달하던, 셋째 동명이를 잃은 장면은 고밀도로 응축된 감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거센 비바람과 싸워야 했어요. 체력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 이 신은 며칠에 걸쳐 촬영했어요. 배우, 스태프 모두 너무 고생이 많았죠. 폭풍우를 표현하기 위해 강풍기를 대동한 강도 높은 비바람은 거의 물벼락에 가까웠어요. 얼이 조금 빠져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때 감독님, 작가님 모두 애순이와 관식이의 대비를 강조하셨어요. 애순이는 평소 울보지만 오히려 이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아요. 대신 무쇠가 완전히 무너지죠. 제가 조금이라도 눈가가 빨개지려고 하면 감독님께서 “애순이는 지금 울지 않아요~” 하면서 집중하도록 도와주셨어요. 이때 박보검씨가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계속 넘어져야 하니까 무릎 보호대도 했고요. 그런데 동명이 역할을 한 새벽이가 정말 프로예요. 평소에는 장난치기 좋아하는데 슛만 들어가면 완전히 돌변해요. 편히 누워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힘없이 손이 떨어지고 목이 꺾이는 장면이 생각보다 어렵거든요. 둘이 같이 상의도 많이 하고. 정말 좋은 동료였어요, 우리는.



- <폭싹 속았수다>에는 얄궂은 인물은 있을지언정 악역은 없어요. 금명이를 몰아세웠던 영범의 어머니 부용(강명주)도 그 이후의 노년기를 보여주면서 연민과 이해의 기회를 주고요. 상길(최대훈) 또한 애순네 집안과 연결되면서 이면을 보여줍니다. 애순이와 금명이가 되었던 사람으로서 이런 지점을 어떻게 바라보았나요.

= 이런 너그러움이 사실은 정말 현실적인 것 같아요. 임상춘 작가님 글은 무척 동화 같지만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이에요. 동화와 현실을 오가면서 사람의 마음을 홍야 홍야 녹여버리시잖아요. (웃음) 저는 개인적으로 상길에게 이해의 기회가 가는 건 처음에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감독님께 여쭤봤어요. 우리가 상길이도 이해해야 할까요? 하고요. 대본의 모든 부분을 납득하고 싶었거든요. 그러자 감독님께 서 이렇게 말씀해주셨어요. “우리가 상길이를 두고 ‘짜잔! 사실 상길이는 좋은 사람이었답니다!’ 하는 게 아니에요. 상길이는 탈바꿈되지 않아요. 그보다는 과거부터 쌓여온 자신의 업보를 착실히 수행하면서 늙어가고 있고, 그사이에 이전과 달라진 구석이 생겼을 뿐인 거예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 거예요. 20대의 내가 40대의 나와 같을 리 없잖아요. 더구나 상길이 주변에는 어진 사람이 많아서 그런 이해의 기회가 생기는 것 같아요. 여전히 세상에 관계와 연결이 중요한 이유기도 하고요.



- 작품 속에는 애순·금명이와 함께 연대하는 여성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해요. 애순의 고생을 이해하는 민옥(엄지원), 서로의 그림자를 아는 영란(채서안), 금명이 편에 서준 교수님(김국희), 잔소리는 기분 나쁘지만 그게 틀린 말은 아니라는 걸 아는 제니(김수안), 애순부터 금명이까지 세대적으로 연결된 가정부 선생님(남권아)까지. 아이유에겐 어떤가요? 더 오래 교류할 기회가 생긴다면 누구와 친구하고 싶나요.

= 영란이요. 영란이가 16부까지 한겹 한겹 스스로 이뤄가는 성장의 과정이 너무 아름답잖아요. 또 영란이는 젊은 시절 애순이를 존중해줬어요. 학씨 아저씨(푸하하!) 상길이가 선장이기 때문에 상길과 관식 사이에는 계급적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어요. 그 말은 그들의 아내에게도 그 차이가 작용한다는 의미거든요. 그런데 영란의 집에서 둘이 대화를 나눌 때 영란이는 애순의 말을 경청하고 감정을 받아주기도 해요. 또 애순이가 계장이 됐을 때에도 “나는 애순이 뽑았다”고 말해주기도 하고요. 아마 영란이도 무의식적으로 느낀 것 같아요. 애순이가 멋지다고요. 영란이는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똑똑한 여자를 만난다면 회사에 스카우트해서 같이 일할래요.



- 친구가 되는 건데 함께 또 일을 하네요. (웃음) 이번 <폭싹 속았수다>의 홍보 과정에 가장 뇌리에 남은 건 <가요무대>였어요. 실제로 작품 안에 <가요무대>가 나오기 때문에 세계관과 현실이 바짝 연결되는 느낌이기도 했고요. 선곡부터 개사까지 작품 색을 그대로 이어갔죠.
= 전적으로 박보검씨의 의견이었어요. 2024년 봄즈음 홍보에 대한 아이디어를 말해주었기 때문에 작품 공개로부터 1년여 정도 일찍 계획을 세웠어요. 보검씨의 에너지는 다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가사는 연습하면서 같이 바꿔나갔어요. 저희의 의견을 받아주신 <가요무대>도 너무 감사드려요. 저희를 너~무 환대해주셨거든요. 오히려 넷플릭스에서는 마케팅을 위해 배우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았어요. 부담주지 않으려 했던 것 같아요. 대기업이라 그런가봐…. (웃음) 근데 그 덕에 배우들이 더 자발적으로 홍보에 나섰어요. 제가 선배님들께 “선배님 저는 이런 거 이런 거 하려고요” 하면 선배님들은 “나는 이런 걸 해볼까봐~” 하시며 엄청 의욕을 불태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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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아이유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면 서사 중심의 작품이 많아요. 의외로 문제 해결이 중심이 되는 직업물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고요. 이게 아이유의 취향 혹은 선호라 볼 수 있을까요.

= 캐릭터나 장르에 따로 제한을 두진 않아요. 근데 생각보다 일하는 과정에 타이밍이 무척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작품 무드나 캐릭터 설정에 관심이 생길 즈음 그런 대본이 딱 들어올 때가 있거든요. 저의 관심사와 마음 상태도 계속 달라지잖아요. 그때 마침 그것들에 맞는 좋은 작품들이 올 때가 있어요. 물론 캐릭터 설정도 중요하고, 제가 이 인물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나 가늠하는 정도도 중요해요. 아무리 대작이어도 제가 이입하기 어려우면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거든요. 반면 내가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이해하고 싶고, 하고 싶어서 막 조급해지는 인물들이 있어요. 그건 제가 절대 놓치지 않죠.



- 2011년 <드림하이>를 통해 연기를 시작했으니 벌써 14년이 흘렀어요. 이 시절을 돌이켜보면 가수 아이유의 시간이 배우로서의 시간을 출력해줬다는 느낌이 들어요. 필숙과 아이유 사이에 중첩되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요. 분노 장면이 화제가 되었던 <최고다 이순신>도 아이유의 발성이 그를 뒷받침해줬죠. 배우로서 가능성을 인지시켰던 구간이에요.
= 이때는 너무 어리고 겁도 별로 없고 의욕이 넘치던 시절이었어요. 진짜 제가 제일 열심히 할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그럼에도 잘 알고 있었어요. 제가 가수로 데뷔했고 이름이 알려진 상태니까 저에게 이런 좋은 기회가 찾아온 거라는 걸요. 어떻게 보면 남들보다 쉽게 받은 기회일 수 있다는 것도요. 그래서 필숙이부터 연기에 대한 책임이 엄청 강했어요. <최고다 이순신>은 첫 주연인데 50부작 장편에 선배님들, 선생님들과 해야 했기 때문에 정말 무탈하게 마치고 싶었어요. 그래서 선생님들께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크고 작은 조언과 세심한 마음들이 없었으면 절대 완수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상대 배역인 조정석 배우의 도움도 무척 컸고요.



- <프로듀사>에서는 신디로서 내레이션 작업을 많이 했죠. 특히 소설 <데미안> 속 한 구절을 읽은 게 당시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이따금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지금. 바로 지금, 틀림없이 나의 연인이 내게로 오고 있을 거라고. 다음 길모퉁이를 지나고 있을 거라고. 다음번 창문에서 나를 부를 거라고.” 강단 있고 고집 센 신디의 여린 구석이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해요.
= 신디는 아이돌이라는 직업적 공통분모가 가장 겹쳤던 캐릭터였어요. 마침 제가 소설 <데미안>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이때 겉으로 모두 드러내기보다 안에 담긴 설정을 드문드문 보여주는 연기를 배웠던 것 같아요. 신디에겐 외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작은 설정들이 있었거든요. 불면증이 있다거나, 밖에서는 위악적으로 굴더라도 혼자 있을 때에는 많이 우는. 숨겨진 속마음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는 게 컸어요.



- 그 이후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이하 <달의 연인>)와 <나의 아저씨>를 이어갔어요. 이 시기부터 배우 아이유가 자기 자리를 주도적으로 찾아가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 자신과 맞는 서사 중심의 스토리를 탄탄하게 구축해냈죠. 특히 <달의 연인>은 감정 소모가 힘들어서 N차 시청이 어렵다는 반응도 있었어요. 그런 감정을 이끌어낸 당사자로서 기억이 어떤가요.
= <달의 연인>은 모든 필모그래피 중에서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작품이에요. 그러고 보니 여기서도 1인2역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격이 달라지는 연기를 했네요. 많이 어려웠어요. 부담도 됐고요. 또 많은 인물들을 만나면서 각각의 화학작용을 드러내야 해서 분량도 정말 많았어요. 그렇지만 그것들을 뛰어넘는 법을 동료들과 함께 나아가면서 배운 것 같아요. 그래서 <달의 연인>은 모든 이들과 되게 끈끈해요. 산에서 구르고 넘어지면서 전우애 같은 게 생겼거든요. 힘들어도 그 사이사이에 어떻게든 웃는 법을 찾아나갔던 작품이에요.



- 2022년 영화 <브로커>가 개봉하면서 칸영화제를 방문했어요. 무려 팬들에게 한 템포 쉬어간다고 말한 해였는데 배우 아이유에겐 분기점이 된 시기가 되었어요.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께 작품 제안이 오다니! 제가 또 감독님 작품들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감독님께서 풀어내는 한국 정서가 너무 궁금했어요. 촬영 현장이 시끌벅적하진 않았어요. 침착하고 차분했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또 배우는 것들이 있어요. 냉정함을 잃지 않는 법,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해가는 법. 관찰자로서 많이 배웠어요. 칸영화제에 간 것도 정말 꿈 같아요. (손 하트를 보여주자) 아, 그쵸. 제가 언제 칸에서 손 하트를 해보겠어요. (웃음) 제가 그곳에 간 사진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 세상에 증거물이 남아 있지 않다면 제가 그곳에 있었다는 걸 지금도 믿지 못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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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노래는 기꺼이 당신과 함께


지금까지 배우 아이유가 체화해온 인물들에게 가수 아이유가 노래를 선물한다면 그건 어떤 노래일까. 어떤 노래여야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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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김필숙


“왠지 귀여운 노래를 주고 싶은데요. 필숙이는 오뚝이 같아요. 나름 슬픔도 좌절도 있지만 그것들을 무겁지 않게 극복해나가거든요. 는 행운이 주어져야만 좋은 삶인 건 아니라고 말해주는 노래예요. ‘행운 없이도 난 알아서 잘하는데?’ 하고 모든 불행을 튕겨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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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사> 신디


“신디… 어려운데요? 신디에게는 <스물셋>을 주고 싶어요. 실제로 스물셋에 연기했던 작품이고요, 신디도 스물세살이었어요. 신디는 야망도 있지만 순수한 사랑을 바라고요, 다 죽여버려! 하고 외치다가도 마음속에 상흔이 남아 있어요. 그런 혼란스러움에도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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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델루나> 장만월


“만월이가 제일 어렵네…. (한참 침묵) 화려한데 애환이 있는 노래가 뭐가 있지… 아! <Shopper>가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만월이는 욕심이 엄청 많아서 세상의 모든 걸 다 갖고 싶어 하거든요. 뻔뻔하기도 하고요. 앞으로는 더더욱 뻔뻔해지라고, 더 욕심내라고 <Shopper>를 선물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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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 소영


“소영이 옆에 <나의 아저씨> 지안이가 있다면 함께 <무릎>을 선물하고 싶어요. 혹은 <정거장>이라는 노래도 좋겠어요. 두 친구 모두 기댈 곳이 필요한 친구들이지만 동시에 독립적으로 살고 싶어 해요. 그래서 이들에게 기대서 잠들 수 있는 무릎이 있으면 좋겠어요. 스르르르 잠들 수 있도록. 지안이가 그런 말도 해요. 지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잠에 드냐고. 두 친구가 아무 고민 없이 잠들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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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 애순


“사랑스러운 애순이에게는 정말 많은 노래를 주고 싶은데. 보검씨가 아이디어를 준 노래가 생각나요. 양희은 선생님과 불렀던 <한낮의 꿈>이요. 한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는데 보검씨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애순과 관식의 노래 같았어요. 기댈 수 있는 사람 어디 없냐고 묻지만 그게 서로인 거죠. 한낮에 꿈을 꾸듯 단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이요. 특히 동명이 사건 이후 서로의 슬픔을 가장 잘 아는 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라는 노래의 목소리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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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30주년 창간특집호 1500호의 주인공은 <폭싹 속았수다> 아이유. 사진팀, 취재팀, 디자인팀 모두가 오랫동안 뜨거운 논의를 거쳤지만 아쉽게도 지면에 오르지 못한 B컷을 공개한다. 스튜디오에 봄을 몰고 온 아이유의 표정을 마음껏 반기길.



https://naver.me/5uIDq1AW

https://naver.me/5jJO9NLn

https://naver.me/GEXCFG5Z

https://naver.me/FLy3nf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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