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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인터뷰] 처연함을 입다, <하얼빈> 곽정애 의상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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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6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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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혹한 겨울을 이겨내는 독립투사의 생애 의지와 자주정신은 어쩌면 턱끝까지 동여맨 외투와 목도리, 얼굴을 감춘 모자에 젖어 있는지 모르겠다. 이 슬프고 외로운 시간을 메운 곽정애 의상감독을 만나 그가 빚어낸 비유와 상징을 나누어보았다.



- 추운 겨울이라는 계절적 특성부터 엄혹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상까지 의상 설정을 결정할 명확한 요소들이 있다. <하얼빈>의 의상 컨셉은 어떻게 정해졌나.


영화를 준비하면서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다루었던 기존 작품을 참고하면 좋을지 우민호 감독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경하게 말하더라. 우리만의 새로운 것을 만들면 좋겠다고, 정적인 첩보물의 느낌이 나는 <하얼빈>의 특징을 살리길 바란다고 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채도를 낮추고 묵직한 무게감이 드러나는 방향으로 디자인을 잡았다. 개개인의 개성이 컬러풀하게 드러나기보다 독립군이 하나의 군집으로 보일 수 있도록 톤도 맞추었다. 이때 카라바조의 그림을 참고했다. 빛과 어둠을 유려하고 화려하게 만드는 한편의 그림처럼 보이도록.


- 이야기 전개상 인물의 의복이 치명적인 요소로 기능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 시나리오에 착장이 묘사돼 있지 않다. 인물별로 의상의 기틀을 어떻게 잡나.


그래서 시나리오를 정말 세세하게 뜯어본다. 캐릭터의 성격, 행동, 습관, 대사 등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인물의 모든 면을 캐치해내려 한다. 이렇게 인물 분석 과정을 거쳐야 그 뒤에 개연성 있는 상상력에 의지해 의상을 구상할 수 있다. 활동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아이템을 자주 활용하지 않을까, 소심한 사람이라면 이런 컬러의 의상을 선택하지 않을까 하면서. 그러고나서 구상안을 두고 감독님과 끊임없는 수정을 반복한 뒤 최종안이 나오면 미술팀, 촬영팀, 조명팀 등 모든 스태프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영화는 모두의 합의와 이해가 중요한 작업이다.


- 눈밭에서 일본군과 지난한 혈투를 벌이는 신아산 전투 신은 곳곳에 웅덩이와 진흙탕이 빼곡하다. 촬영이 영하의 기온에서 진행된 만큼 디자인뿐만 아니라 실질적 방한 기능도 중요했을 텐데.


그래서 원단과 자재를 신중하게 고른다. 그래도 한계가 있다. 당시에 캐시미어 소재가 없기도 했고, 우민호 감독도 몇 가지 구체적인 제안을 준 상태였다. 그중 옷이 무겁고 여러 겹을 껴입어서 둔해 보일 것을 강조했다. 겨울을 나는 독립투사들의 현실적인 모습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신아산 전투는 그 장면만 2주 동안 촬영했다. 다음 촬영에도 의상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진흙탕에 빠졌던 옷을 잘 말려두어야 했다. 처음엔 크리닝을 맡긴 후 촬영장에서 진흙을 묻히는 방식을 썼는데 그러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감독님이 말리더라. (웃음) 엄청 엄격하시다.


- 코트 형태의 외투를 입은 안중근(현빈)과 달리 이창섭(이동욱)은 털이 복슬복슬한 재킷 형태의 외투를 입고 있다. 독립군 집단으로 동일성을 강조했지만 인물별로 살짝 변형을 주었다.


대립 구도를 지닌 안중근과 이창섭의 성격 차이가 표면적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유도했다. 현실적으로 독립운동가들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외투를 입고 싸우진 않았을 것이다. 전투적인 동작을 자유롭게 취하기 어려울 테니까. 그렇지만 전장의 대장으로서 장교 같은 느낌을 더하고 싶었다. 그렇게 긴 코트 형태로 외투를 제작했다. 반면 행동파에 가깝고 야생적인 이창섭에게는 무스탕을 입혔다. 이동욱 배우가 워낙 이국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 이 의상과 정말 잘 어울렸다. 무스탕이 따뜻하다고 엄청 좋아했다. (웃음)


- 공부인(전여빈)의 멋진 모자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러고 보면 공부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모자를 쓰고 있다. 빵모자를 쓴 우덕순(박정민)과 김상현(조우진), 챙이 살짝 기운 페도라를 쓴 안중근. 모두 의상감독의 취향인가.


내가 워낙 모자를 좋아한다. 공부인의 모자는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주문부터 하고 봤다. 촬영장에서 안 쓰게 돼도 일단 사! (웃음) 신여성이자 독립운동가, 현재 양품점을 운영하면서 말도 탈 줄 아는. 공부인의 설정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서부 느낌의 아이템이 딱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우민호 감독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더라. 우 감독은 타인에게 의지하거나 외면에 집중된 여성보다 스스로 판단하고 눈앞의 문제를 자신의 의지로 해결해나가는 여성을 그리고 싶어 했다. 둥그런 뉴스보이캡도 외국에서 직접 공수했다. 독일, 이탈리아 등으로 출장 간 직원들에게 빈티지 숍에 들러 구해달라고 사정사정했다. 현지의 의상 아이템은 그 한끗이 다르다. 모자의 디테일이 살아 있어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챙이 살짝 기운 페도라는 기차 안에서 진실을 마주한 안중근의 눈을 조명하기 위해 꼭 사용하고 싶었다. 그 흔들리는 동공과 갑자기 눈물이 살포시 고이는 모습. 나는 눈썹 선에 멈추는 모자 라인이 너무 좋다. 진실을 감출 듯 드러낼 듯 미묘함이 느껴진다. 보일 듯 말듯, 너무 좋지 않나? (웃음)


- 그에 반해 일본군 모리 다쓰오(박훈)와 이토 히로부미(릴리 프랭키)의 의상은 말 그대로 고급지고 우아하다. 당시 두 나라 사이의 사회적·경제적 위치 차이가 극명히 드러난다.


최고급 캐시미어를 썼다. 굉장히 부드럽고 윤택하고 가벼워 보이는 원단. 그 당시 캐시미어가 없다고 했지만 이 원단만큼 부를 표현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판단해서 활용했다. 특히 이토 히로부미는 움직임이 거의 없고 앉아 있는 신이 대부분이라 더 아늑하고 심플해 보이도록 디자인했다. 그때 릴리 프랭키가 그러더라. 이 옷 너무 가벼워서 좋다고. 엄혹한 환경에서 무거운 옷을 입은 독립투사들과 달리 일본군은 실내에서 편안하게 가벼운 착장을 하고 있다. 특히 박훈 배우가 입은 군복. 정말 제작하기 힘들었다. 깃을 자세히 보면 칼라가 그냥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살짝 솟아 있다. 제작소에서 어렵다고 하는 것을 신신당부해 얻어냈다.


- 영화 속 의상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까.


의상이 좋은 반응을 얻었던 작품을 살펴보면 역시 캐릭터의 성격과 습관과 맞아떨어진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서사와 캐릭터를 먼저 파악하면 그 뒤에 서서히 이들의 의상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 순간을 즐기면 좋겠다.


https://naver.me/xk1PDh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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