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더볼츠*> Thunderbolts*
감독 : 제이크 슈레이어 / 출연 : 플로렌스 퓨, 세바스찬 스탠, 데이빗 하버
올해 마블은 어떤 위용 넘치는 히어로물을 선보일까. 제이크 슈레이어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썬더볼츠*>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페이즈5의 마지막 작품이자 첫 번째 썬더볼츠 실사영화다. 원작 마블 코믹스에서 썬더볼츠*는 빌런 제모 남작의 계획 아래 세계 정복을 노리며 히어로 행세를 하는 팀이지만, MCU에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세계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으로 등장한다. 이번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예측불허 캐릭터들의 독특한 개성이 한데 어우러지는 데에 있다. 블랙 위도우, 윈터 솔져, U.S. 에이전트, 레드 가디언, 고스트, 태스크 마스터 등 한자리에서 보기 어려운 인물의 독특한 개성이 스크린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된다. 특히 <썬더볼츠*>는 안티히어로물로서 영웅이지만 악당스럽고 악당이지만 영웅스러운 면모를 동시에 선보이며 캐릭터의 입체성을 높이고 편안한 웃음을 자아낸다.지휘를 맡은 제이크 슈레이어는 감각적인 광고와 뮤직비디오를 다룬 이력이 돋보이는 영화감독으로 카녜이 웨스트의 <Follow God> <Closed on Sunday>, 저스틴 비버의 <Lonely> 등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바 있다. 이어 2023년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을 공동연출하며 고유한 섬세함을 입증하기도 했다. 매번 명확한 컨셉과 신선한 기획, 뚜렷한 연출 색깔로 눈길을 이끈 만큼 그가 마블 특유의 유머러스하고 재치 넘치는 텐트폴 영화를 만날 때 어떤 화학작용을 낼지 궁금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성난 사람들>을 함께 연출한 이성진 감독이 <썬더볼츠*> 각본에 참여하기도 했다). <썬더볼츠*>를 제대로 누리고 싶다면 <블랙 위도우> <앤트맨과 와스프>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를 미리 복습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팔콘과 윈터 솔져> <호크아이> 또한 <썬더볼츠*>의 핵심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에 좋은 디딤돌이 될 것이다. <썬더볼츠*>는 2025년 4월 극장 개봉한다.
<발레리나> Ballerina
감독 : 렌 와이즈먼 / 출연 : 아나 디 아르마스, 이안 맥쉐인, 키아누 리브스
<존윅3: 파라벨룸>에 나타난 의문의 여자. 그는 존 윅(키아누 리브스)에게 “당신처럼 되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하죠?”라고 묻는다. 이에 대한 존 윅의 대답이 의미심장하다. “이미 나처럼 하고 있는걸.” <발레리나>는 존 윅이 인정한 여성 킬러 이브 마카로(아나 디 아르마스)에 관한 이야기로 <존 윅> 시리즈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스핀오프작이다. 이브 역시 존 윅처럼 러시아의 발레리나 양성소로 위장한 암살자 집단 ‘루스카 로마’에서 길러졌다. 그렇다면 이브의 복수는 누구를 향하는가.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알게 된 그는 관련자들을 처단하기 위한 길을 떠난다. <발레리나>는 이브가 최고의 킬러로 성장하는 과정부터 시작해서 복수를 행하는 클라이맥스까지 담는다. 결국 이 영화의 성패는 존 윅의 후계자란 타이틀을 단 이브가 존 윅의 액션 양식과 정신을 계승하는 동시에 자신의 개성을 얼마만큼 가지느냐에 달렸을 것이다. 공개된 일부를 놓고 짐작건대 영화는 적어도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서 펼쳐지는 존 윅의 스타일리시하고 무자비한 액션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키아누 리브스의 액션 촬영 분량이 있으며 <프라미싱 영 우먼>을 쓴 에머럴드 펜넬이 여성 원톱 주연작의 각색을 맡았다는 점이 기대감을 높인다.
<후레루> ふれる
감독 : 나가이 다츠유키 / 목소리 출연 : 나가세 렌, 반도 료타, 마에다 켄타로
일본 애니메이션 청춘 3부작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 <하늘의 푸르름을 아는 사람이여>의 메인 스태프 3인방이 다시 모였다. 연출 나가이 다츠유키, 각본 오카다 마리, 캐릭터디자인 타나카 마사요시는 유년 시절부터 함께한 세 친구의 성장과 발전에 집중했다. 외딴섬에 사는 초등학생 오노다 아키는 해변가의 무너진 동굴 속에서 우연히 신기한 생물을 만난다. 그 생물을 같은 학년의 소부에 료와 이노하라 유타에게 보여주고 ‘후레루’라는 이름까지 붙여준다. 후레루에겐 신기한 힘이 있다. 그를 만진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 시간이 흘러 이제 막 20대에 접어든 세 친구는 도쿄로 이동하여 동거 생활을 시작한다. 생활 패턴이 맞는 듯 맞지 않는 듯 얼렁뚱땅 이어지는 나날 속에 이들은 여전히 후레루를 통해 소통한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 오직 생각만으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후레루>는 다소 독특한 방식으로 관계 맺기와 그것을 유지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과연 생각으로 소통하기는 언제까지 유효할 수 있을까. <후레루>가 직면한 문제와 해결 방식은 현대 생활과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브리짓 존스: 매드 어바웃 어 보이> Bridget Jones: Mad About the Boy
감독 : 마이클 모리스 / 출연 : 르네 젤위거, 휴 그랜트, 콜린 퍼스
브리짓 존스(르네 젤위거)가 다시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한다. 1편(<브리짓 존스의 일기>)으로부터는 24년, 전편인 3편(<브리짓 존스의 베이비>)으로부터는 9년 만이다. 마지막 시리즈로 알려진 <브리짓 존스: 매드 어바웃 어 보이>에서 브리짓은 다이어리에 ‘이제 멋지게 사는 거야’라고 적고 새 삶을 다짐한다. 어느덧 50대가 되었고 남편 마크 다아시(콜린 퍼스)와 사별한 뒤 두 아이에게 전념하느라 자기를 돌보지 못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친구들이 브리짓을 데이팅 앱에 등록하며 연애의 기운을 북돋아준 덕분일까. 아이들의 학교 선생님인 스콧(추이텔 에지오포)과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20대 청년 로스터(레오 우달)과 엮이면서 다시금 설렘을 느낀다. 나이가 들었어도 브리짓은 여전히 브리짓이다. 환상에 미소 짓고 자기혐오에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인간적인 여자다. 그가 데이트에서 분위기를 띄우겠다고 무리수를 던지다 얼마나 망할지, 다이어트를 하다가 언제쯤 못 참고 정크푸드에 손을 뻗을지가 기대되는 부분이다. 한편 <브리짓 존스: 매드 어바웃 더 보이>는 중년 여성의 일탈 내지 한여름 밤의 꿈으로 예측되기 쉽다. 그러나 브리짓의 또 다른 남자 다니엘 클레버 역의 휴 그랜트가 일찍이 “매우 슬플 것”이라 귀띔했듯 완숙한 여인의 이야기에 가깝다. 브리짓은 다아시를 여전히 그리워하고 말년의 노쇠한 아버지와 교류하며 죽음과 더불어 사는 법을 찾아 나간다. 이번 편에서는 반가운 얼굴들이 재등장해 마지막의 의미를 더한다. 3편에 출연하지 않았던 휴 그랜트가 복귀해 브리짓의 연애 코치 역할을 담당한다. 3편의 공동 각본가이자 극 중 브리짓의 담당의 역을 맡았던 엠마 톰슨이 연이어 함께해 하루에도 천국과 지옥을 몇번씩 오가는 환자를 든든히 지원한다. 무엇보다 르네 젤위거를 브리짓으로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만큼 기쁜 소식은 없을 것이다. 듣다 보면 덩달아 몽롱해지는 마력의 목소리로 그가 들려줄 일과 육아, 사랑과 외로움에 관한 진솔한 얘기가 동시대 여성들에게 강력한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갈 것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 <루머의 루머의 루머> <베터 콜 사울> 등 걸출한 시리즈를 연출한 마이클 모리스가 감독을 맡았고 원작 소설을 쓴 헬렌 필딩이 공동 각본가로 이름을 올렸다.
<에밀리아 페레즈> Emilia Pérez
감독 : 자크 오디아드 / 출연 :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셀레나 고메즈, 조 샐다나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대부 후안 마니타스 델 몬테(카를라 소피아 가스콘)는 변호사 리타(조 샐다나)의 도움으로 성전환수술을 해 트랜스여성 에밀리아 페레즈가 된다. 이후 에밀리아는 열애와 선행을 결심하며 삶의 새로운 국면을 마주한다. <예언자> <러스트 앤 본> <디판> 등을 연출한 자크 오디아드가 또 한번 소수자를 주인공으로 한 범죄물을 연출했다는 뉴스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가 작정하고 뮤지컬영화를 연출했다는 뉴스 또한 신기하지만 전작 <파리, 13구>가 현란한 편집과 사운드트랙 사용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던 터라 일견 납득 가능하다. 하지만 <에밀리아 페레즈>가 공개 직후 얻고 있는 ‘대중적’ 열광은 놀랍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프랑스에서 공개 직후 106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2024년 유럽 필름 어워즈에서도 작품상을 포함해 5관왕을 차지했으며 심지어 미국 주최의 제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다 후보를 배출한 영화가 됐다. 작품의 주요 여성배우인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셀레나 고메즈, 조 샐다나, 아드리아나 파즈가 칸영화제에서 여성배우상을 공동으로 수상해 화제를 모았다. 프랑스의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 부문 공식 출품작이다.
<씽 씽> Sing Sing
감독 : 그레그 퀘다르 / 출연 : 콜맨 도밍고, 클라렌스 맥린, 폴 레이시
‘씽 씽’은 부드럽게 발음하는 느낌과 달리 뉴욕의 최대 보안 등급 교도소인 씽 씽 교정시설을 지칭한다. 그렇지만 영화 <씽 씽>은 분명 흥과 멋을 가지고 있다. 살인자란 누명을 쓰고 복역 중인 아티스트 존 디바인 G.(콜맨 도밍고)가 예술을 통한 재활 프로그램을 도입해 교정 내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그의 관심 대상은 무장 강도로 들어와 감옥에서도 마약 거래를 일삼는 맥린(클라렌스 맥린)이다. 디바인 G.는 맥린을 무대 위의 배우로 거듭나게 하려고 애쓰고 결국 그 진심은 통하게 된다. <씽 씽>은 뜨겁고 감동적인 할리우드 감옥영화란 쉬운 길을 가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진지하게 탐구하는 쪽에 가깝다. 재소자에게 실제로 연기를 가르쳤던 그레그 퀘다르 감독은 무대를 올리는 전 과정을 현실주의에 입각해 연출했다. 실화를 소재로 했으며 실제 복역한 경험이 있는 클라렌스 맥린이 각본에도 참여해 이야기의 사실감을 더했다. 콜먼 도밍고는 2025년 골든글로브 시상식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영화음악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음악상, 주제가상 부문 예비 후보로 선정됐다.
<브루탈리스트> The Brutalist
감독 : 브래디 코베 / 출연 : 애드리언 브로디, 펠리시티 존스
북미 영화 전문지를 <씨네21> 못지않게 열독하는 독자들이라면 2024년 하반기 <브루탈리스트>라는 제목의 영화를 심심찮게 마주했을 것이다. <브루탈리스트>는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직후 영화제 내내 데일리 평점 1위를 지켰고 끝내 경쟁부문의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각종 미디어 전문지나 기관이 선정한 ‘올해의 영화’ 순위권에도 매번 이름을 올렸다. 주연배우인 애드리언 브로디 또한 “<피아니스트>를 넘어서는 최고의 연기”라는 극찬 속에 현재 미국 각 지역 비평가 주최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으로는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다. 유대인 건축가 라즐로 토스(애드리언 브로디)의 전후 미국 정착기를 다룬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은 <미스테리어스 스킨> <퍼니 게임>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배우 브래디 코베다.
영화의 제목인 ‘브루탈리스트’는 브루탈리즘(거대한 콘크리트나 철제 블록을 활용해 건물을 짓는 건축 양식.-편집자)주의자라는 뜻이다. 영화의 제목과 주인공의 직업에 걸맞게 1950~60년대 유행했던 다양한 브루탈리즘 건축이 관객들의 눈을 현혹할 전망이다. 영단어 ‘브루털’(brutal)이 ‘잔인한’을 의미하듯 <브루탈리스트>는 해외에선 R등급 관람가를, 국내에서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이는 성적 맥락과 약물 등의 직접적 묘사는 물론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라즐로의 30년 일대기 또한 억압과 핍박으로 점철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데 영화를 미리 감상한 해외 관객들은 <브루탈리스트>에서 가장 잔인한 요소는 촬영 방식과 러닝타임이라고 전한다. <브루탈리스트>는 영화의 시간적 배경인 1950년대의 필름 메이킹을 복각해 비스타비전 카메라와 35mm 필름을 동원해 촬영했고, 개봉 당시 필름 상영이 가능한 극장에 한정하여 70mm 필름 프린트를 납품했다. 그리고 영화는 이맘때 작품이 으레 그렇듯 215분(3시간15분)의 긴 러닝타임을 자랑한다. <벤허> 등 1950년대의 대작 영화처럼 미국 개봉 당시 15분의 인터미션이 상영 도중 주어졌다. 홍보사에 따르면 한국 개봉판에도 감독의 의도에 따라 인터미션이 제공될 예정이라고.
<화이트 버드> White Bird
감독 : 마크 포스터 / 출연 : 헬렌 미렌, 브라이스 게이사르, 질리언 앤더슨
소설가 R. J. 팔라시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안면 기형 소년 어기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원더>다. <원더>는 제이콥 트렘블레이,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만들어져 전세계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팔라시오는 <원더>의 출간 이후 어기의 친구들을 주인공으로 한 ‘아름다운 아이’ 연작을 썼고 그중엔 어기를 괴롭히던 소년 줄리안을 주인공으로 한 그래픽노블 <아름다운 아이 줄리안 이야기>가 있다. <007 퀀텀 오브 솔러스> <월드워Z>를 연출한 마크 포스터 감독이 이 그래픽노블을 <화이트 버드>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했다. 줄리안(브라이스 게이사르)은 제2차 세계대전의 직접적 피해자였던 유대인 할머니 사라(헬렌 미렌)로부터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직접 전해 듣는다. 줄리안은 할머니가 들려주는 역사의 참상을 바탕으로 자신의 과오를 돌아본다. 21세기와 1940년대를 오가는 영화가 집중하는 시점은 1940년대이고, 1940년대의 어린 사라를 연기한 배우 아리엘라 글래이저와 사라의 짝꿍인 줄리안으로 분한 올랜도 슈워츠가 그리는 찬란한 우정이 공개 당시 큰 호평을 받았다. 영화 <원더>에서 줄리안으로 출연한 배우 브라이스 게이사르가 다시 한번 줄리안으로 등장한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위 리브 인 타임> We Live in Time
감독 : 존 크로울리 / 출연 플로렌스 퓨, 앤드류 가필드
이를테면 <위 리브 인 타임>은 “사랑은 교통사고다”라는 비유를 홍상수의 <자유의 언덕> 방식으로 풀어낸 정통 멜로다. 이혼 후 실의에 빠진 토비아스(앤드류 가필드)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토비아스는 사고 가해자인 셰프 알무트(플로렌스 퓨)와 이런저런 이유로 만남을 갖고 사랑에 빠진다. 예쁜 딸과 함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중, 알무트가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최루성 멜로는 <위 리브 인 타임>만의 독특한 편집 방식으로 특별해진다. 두 남녀가 나눈 사랑의 파편은 무작위로 뒤섞여 시간 순서와 무관하게 던져진다. 삶과 사랑은 언제 어떻게 제시되든 그 자체로 진귀한 것이라며 관객을 다독이는 듯한 영화적 연출이다. 영국의 밀레니얼세대 배우 중 가장 연기를 잘하는 두 배우가 각자의 전공 분야로 케미스트리를 만들어가는데, 특히 완연한 병색 속에 삶을 향한 의지만은 잃지 않으려는 플로렌스 퓨의 기개가 코미디와 비탄 모두에 형형하게 살아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작은 스포일러 하나. <위 리브 인 타임>의 두 주연배우인 플로렌스 퓨, 앤드루 가필드와 <씨네21>이 나눈 단독 인터뷰가 개봉에 맞춰 게재될 예정이다.
<미키 17> Mickey 17
감독 : 봉준호 / 출연 : 로버트 패틴슨, 나오미 애키
“당신이 죽을 때마다 우린 새로운 걸 배우고 인류는 나아갑니다.”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을 원작으로 한 <미키 17>은 2017년 <기생충> 이후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이다. 원작 소설의 줄거리를 참고하자면 이렇다. 생존을 위해 머나먼 행성 니플라임을 개척한 인류는 모진 생활 환경과 미지의 생명체로 어려움을 겪는다. 이에 따라 위험한 임무를 대신 처리해주는 ‘익스펜더블’이 떠오르고 미키는 그 일원으로서 자신의 몫을 다한다. 절차도 간단하다. 임무에 투입되어 일을 하고, 죽음을 맞이하고, 복제되어 또 태어난다. 일곱 번째 복제를 마친 게 소설 속 미키 7이라면, 아마도 그보다 10번의 죽음을 더 맞이하고 다시 태어난 게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일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규칙은 복제 인간은 복수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때 불행하게도 미키 17 눈앞에 미키 18이 등장한다. 섬뜩한 상상력을 자극하기 충분한 <미키 17>은 농담 사이로 현실적인 맥락을 날카롭게 욱여넣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장기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잘 죽고 내일 보자”와 같은 오묘한 인사말 사이로 호기심이 드리워진다. 2025년 2월 한국에서 전세계 최초로 개봉한다.
<슈퍼맨> Superman
감독 : 제임스 건 / 출연 : 데이비드 코렌스웻, 레이첼 브로스나한
“Look up in the sky! It’s a bird. It’s a plane. It’s a SUPERMAN!”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부작,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등으로 자신만의 색깔이 담긴 히어로물을 입증한 제임스 건 감독이 이번에는 <슈퍼맨>으로 돌아온다. 올여름 개봉을 예정한 이번 작품은 2분가량의 예고편 공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는 중이다. 특히 고단한 도시 생활을 견뎌나가는 평범한 청년 클라크 켄트와 자신의 초인을 인지하고 유용하게 활용하는 슈퍼맨 사이의 간극이 클수록 관객에게 전이되는 희열이 커지는데, 트레일러에서부터 그 묘미가 전달되어 높은 기대를 받고 있다. 미국 현지에서 진행한 <슈퍼맨> 보고회에서 주연배우 데이비드 코렌스웻에 관하여 제임스 건 감독은 “그냥 좋은 슈퍼맨이나 좋은 클라크 켄트를 찾은 게 아니다. 그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접점을 유연하게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고 캐스팅 비화를 밝혔다. 이어 그는 이전 작품과 비교했을 때 <슈퍼맨>은 덜 유머러스하다고 덧붙였다. 히어로를 기다리는 암흑사회 속에서 슈퍼맨은 어떤 희망을 안겨줄까. 진중하고 침착한 제임스 건 감독의 고민을 들여다볼 차례다.
<릴로 & 스티치> Lilo & Stitch
감독 : 딘 플라이셔-캠프 / 출연 : 마이아 케알로하, 시드니 엘리자베스 아구동
디즈니가 자사의 IP인 <릴로 & 스티치>(2002)를 실사화한다. 근래 애니메이션의 실사 리메이크로 호평보단 실망을 주로 이끌어낸 디즈니가 <릴로 & 스티치>로 반등할 수 있을까. 적어도 <릴로 & 스티치>는 이미 원작 애니메이션에 지금의 디즈니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요소가 빼곡해 물성이 존재하는 영화로 재탄생했을 때 거둘 수 있는 장점이 분명해 보인다. 하와이의 압도적인 풍광과 다종다양한 전통문화는 2010년대에 이르러 <모아나> 연작으로 꾸준히 폴리네시아 문화를 공들여 재현한 디즈니의 성과를 반영할 수 있다. 스티치를 포함한 외계 생물 구현은 디즈니가 자부하는 특수효과의 현주소를 입증 가능하고, 스티치의 고향인 투로 행성의 묘사는 스페이스오페라 특유의 스펙터클을 통해 작품의 양감을 완성할 수 있다. 원작 애니메이션이 가장 공들여 그린 두 시퀀스는 작품 중반 상심한 릴로와 나니 자매가 해변에서 서핑을 하며 시름을 잊는 장면과 작품 후반 스티치와 나니가 납치된 릴로를 구하러 가는 과정에서 벌이는 우주 함선간 공중전이었다. 두 시퀀스 중 어느 것이든 감독의 야심이 실사 촬영을 통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2025년판 <릴로 & 스티치>의 감독은 딘 플라이셔-캠프다. 캠프는 2022년 실사 촬영과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을 적절히 배합한 구성의 애니메이션 <마르셀, 신발 신은 조개>를 연출해 오스카 장편애니메이션상의 후보 지명을 받았다. 전작에서 이미 인간과 다양한 생물이 한데 어울려 살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그려낸 캠프와 <릴로 & 스티치>의 내러티브가 더없이 어울린다. 이 점은 <릴로 & 스티치>가 2025년에 한번 더 리메이크될 수밖에 없는 당위성까지 만든다. 잠시 원작의 로그라인을 복기해보자. 우울한 어린이 릴로와 어린 나이에 가장이 돼 생계를 이끌어가야 하는 언니 나니가 외계 행성에서도 인간 세상에서도 배척받는 이종(異種) 스티치를 받아들여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들어간다. 분열의 시대에 영화가 추구하려는 다양성과 포용을 더없이 잘 구현할 수 있는 주제다. 원작 영화의 감독이자 스티치의 목소리를 연기한 크리스 샌더스가 한번 더 스티치로 분한다.
<트론: 아레스> Tron: Ares
감독 : 요아킴 뢰닝 / 출연 : 자레드 레토, 그레타 리, 에반 피터스
1982년 <트론>, 2010년 <트론: 새로운 시작>에 이은 속편이 15년 만에 돌아온다.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말레피센트2> <여인과 바다>를 연출한 요아킴 뢰닝 감독의 연출 아래 배우 자레드 레토와 그레타 리가 각각 아레스 역과 이브 킴 역으로 합류했다. <트론: 아레스>는 인간을 대신하여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디지털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파견된 초고도화 프로그램 ‘아레스’를 중심에 두고, 인류가 인공지능을 처음 맞닥뜨리는 순간을 상상한다. <트론> 영화 시리즈 중 최초로 프로그램이 주인공인 작품으로, 요아킴 뢰닝 감독은 월트디즈니 컴퍼니 공식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은 소회를 전했다. “<트론> 프랜차이즈에 참여할 수 있어 기쁘다. 특히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의 한축을 전세계 팬들에게 선보일 수 있어 영광이다. <트론: 아레스>는 최첨단 디자인, 기술 및 스토리텔링을 유산으로 둔 작품이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적절한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또 <데드라인>과 인터뷰에서 그는 “공상과학영화에 참여할 수 있어 기뻤다. 영화감독으로서 다른 세계를 오가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내 꿈이었다”는 설렘을 전하기도 했다.
최첨단, 인공지능, 테크놀로지 등 현대적 키워드가 <트론: 아레스>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전작보다 감정선을 높이 살린다는 고유한 특징이 돋보인다. 요아킴 뢰닝 감독은 감성에 기반한 경험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전 <트론> 시리즈에서는 감성적인 면모가 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두 영화 모두 엄청난 걸작이지만 나만의 색깔을 더 넣고 싶었다. 극장 안에서 감정적 경험을 도모하는 것. 그것을 중심에 두려고 한다. 내가 영화를 통해 해내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트론: 아레스>의 기대감을 높이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음악이다. 독창적인 라이브 퍼포먼스로 유명한 인더스트리얼 록밴드 나인 인치 네일스가 이번 사운드트랙을 작곡한다. 도발적이고 자유로운 록밴드 색깔이 영화와 어떻게 어우러질지 궁금증을 일으킨다. <트론: 아레스>는 2025년 10월 국내 개봉한다.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Mission: Impossible – The Final Reckoning
감독 : 크리스토퍼 맥쿼리 / 출연 : 톰 크루즈, 사이먼 페그, 빙 라메스
지난해 11월 <위키드> 개봉 당시 엘파바(신시아 에리보)가 중력을 거스른 후 ‘파트2에 계속’ 자막이 스크린에 뜨자 상영관은 “뭐야, 2편이 또 있어?”라며 웅성였다. 데자뷔처럼 2년 전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을 개봉관에서 관람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에단 헌트(톰 크루즈)가 오토바이를 탄 채 가파른 절벽을 뛰어내리고 특급 열차 안에서 격전을 벌인 후 2부를 암시할 때에서야 관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존 최고의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 <미션 임파서블>이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으로 돌아온다. 잠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의 내용을 상기해보자. 어떤 첩보망도 손쉽게 뚫는 인공지능 엔티티가 세계의 안보를 위협하자 엔티티의 소스코드를 얻기 위해 각국의 첩보기관이 쟁탈전을 벌였다. 에단 헌트 또한 엔티티를 찾아 나섰지만 과거의 숙적 가브리엘이 그를 기습했고 헌트의 짝패들은 목숨을 잃거나 크고 작은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에단 헌트는 아랍에미리트, 이탈리아, 영국을 누비며 세상과 동료를 지키기 위해 또 한번 전력질주했다.
말해 무엇하겠나.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의 기대 포인트는 단연 액션이다. 정보가 구체적으로 공개된 바 없지만 호사가들이 이번 영화에서 가장 군침을 흘리는 액션은 비행기 결투 시퀀스다. 이미 공개된 예고편에도 에단 헌트와 가브리엘이 항공기 내부에서 벌이는 혈투가 담겼다. 두 배우는 실제 비행 중인 복엽기에서 일대일 액션을 수행했고, 톰 크루즈는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에 이어 또 한번 비행기 날개에 맨몸으로 매달렸다는 후문이다. 한편 엔티티가 북극해 잠수함 속에 보관돼 있다는 걸 떠올리면 자연히 이번 영화에 다량의 수중 액션이 들어간다는 점 또한 예측할 수 있다. 톰 크루즈가 지난해 11월에 자신의 SNS에 영화 촬영을 위해 수중 스턴트를 연습하는 현장을 공개한 만큼,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촬영 당시 무려 6분30초간 숨을 참고 수중촬영에 성공한 전적이 있는 만큼, 이번 작품에서 얼마나 새로운 수중 액션을 선보일지 기대를 모은다.
<베이비걸> BabyGirl
감독 : 핼리너 레인 / 출연 : 니콜 키드먼, 해리스 딕킨슨
2025년에도 영화 제작사 A24의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이야기는 이어진다. 핼리너 레인의 각본과 연출로 완성된 <베이비걸>은 평온한 가정의 아내이자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비즈니스 리더 로미(니콜 키드먼)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그의 삶은 너무나 완벽해 보이지만 그 실상은 조금 다르다. 사회가 요구하고 스스로 받아들인 금기와 통제 속에서 진짜 ‘나다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위축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할 뿐이다. 중요한 프로젝트 발표를 앞둔 어느 날, 24살 인턴 사무엘(해리스 딕킨슨)에 끌리기 시작한 로미는 그와의 아슬아슬한 만남을 회사 안팎에서 이어간다. 그리고 사무엘이 자신을 “베이비 걸”이라고 불러주는 순간, 지금까지 인지하지 못했던 욕망을 발견하고 만다. 에로틱 스릴러 장르를 표방한 <베이비걸>은 위태롭지만 대담하게 금기 앞에 선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다소 파격적인 소재와 함께 여성의 진솔한 감정과 욕망을 짚어낸다는 점에서 기대감을 높인다. 특히 감정의 디테일한 뉘앙스까지도 놓치지 않는 두 배우 니콜 키드먼과 해리스 딕킨슨의 호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제8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그랜드 투어> Grand Tour
감독 : 미겔 고미쉬 / 출연 크리스타 알파이아테, 곤칼로 와딩턴
“내가 본 아름다운 것들을 관객과 나누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회고전을 개최한 미겔 고미쉬 감독이 <씨네21>에 전한 자신의 연출론이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고미쉬에게 감독상을 안겨준 <그랜드 투어>가 올해 3월 극장에서 정식 개봉한다. 공교롭게 <그랜드 투어>는 고미쉬 감독의 첫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자 고미쉬 영화의 첫 한국 개봉작이 되었다. 1917년 대영제국의 공무원 에드워드는 연인 몰리와의 결혼을 앞두고 도피성 여행을 떠나고 몰리는 에드워드를 쫓아 아시아를 횡단하는 ‘그랜드 투어’를 떠난다. 그랜드 투어는 인도로부터 출발해 중국 혹은 일본에서 끝내는 여정을 일컫는 단어로, 20세기 초 실제로 성행한 아시아 투어의 일종이다. 2019년부터 태국, 필리핀, 베트남, 일본 등을 오가며 영화를 촬영한 고메스는 중국 촬영 도중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셧다운이 발발하자 고향 포르투갈에 돌아가 원격으로 현지의 팀을 진두지휘하며 영화를 완성했다. 종교적 제의, 매일의 노동, 전통 인형무 등 각 국가에서 고메스를 매혹한 수많은 푸티지는 동시대의 훌륭한 아카이브 이미지이면서 그 자체로 유려한 비디오아트로 자리한다.
<드래곤 길들이기> How to Train Your Dragon
감독 : 딘 데블로이스 / 출연 : 메이슨 테임즈, 제라드 버틀러, 니코 파커
용기 있는 주인공은 장애와 결핍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적확하게 보여준 <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가 실사영화로 돌아온다. 딘 데블로이스 감독의 지휘 아래 완성된 <드래곤 길들이기>는 2025년 여름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원작 애니메이션에서부터 연출과 감독을 모두 맡아온 딘 데블로이스 감독은 이번에도 히컵과 투슬리스의 이야기를 생명력 있게 전한다. 그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와의 인터뷰를 통해 <드래곤 길들이기> 실사화 제작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밝혔다. “이번 작품을 맡기로 한 건 감독으로서 실사영화를 연출할 엄청난 기회이기도 하지만 내가 그리워하는 세계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캐릭터들도, 이 세계도 너무 그리웠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본질적으로 다른 시선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 맞서 자신의 신념을 따르는 용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만의 방식과 속도로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교훈으로 전한다. 그 가치를 다시금 재현하고 싶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드래곤 길들이기> 전 시리즈, <위키드> 전 시리즈, <핸콕> <해피 피트> 등을 작업한 존 파웰 음악감독과 다시 함께 발을 맞췄다. 고양감과 벅차오름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소년 성장물에서 관객이 샛길로 빠지지 않고 히컵의 감정을 따라갈 수 있도록 십분 도울 예정이다. 공중 활극이 중요한 작품 특성을 살리기 위해 빌 포프 촬영감독도 합류했다. <다크맨>, <매트릭스> 시리즈, <베이비 드라이버>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등을 도맡아온 애니메이션 원작의 감동을 재현하는 데 공을 들였다. 아이맥스 형식을 염두에 두고 촬영하거나 라이브 액션 형태로 진행한 것이 그렇다. 북아일랜드의 광활한 대자연, 하늘과 대지를 자유롭게 이동하는 수직형 시야 확보, 바이킹 문화 재현, 자신의 한계와 사회적 편견에 맞서는 소년의 용기까지 원작이 지닌 강점과 매력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기대해볼 수 있다. 특히 애니메이션보다 1.5배 더 커진 투슬리스의 모습은 이종(異種)간의 우정을 더 극대화하고 극렬한 전쟁을 더 규모 있게 펼치는 데 적합하다. 무엇보다 왕 크니까 왕 귀여울 것!
<사스콰치 선셋> Sasquatch Sunset
감독 : 나단 젤너, 데이비드 젤너 / 출연 : 제시 아이젠버그, 라일리 코프
‘사스콰치’란 캐나다 서해안 지역의 인디언 부족의 말로 ‘털이 많은 거인’ , 산맥 일대에서 목격된다는 얘기만 전해지는 수수께끼 동물이다. <사스콰치 선셋>은 숲에서 공동생활하는 사스콰치 네 마리가 사계절을 겪는 모습을 따라간다.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먹고 번식하고 배설하는 게 이들 생활의 전부다. 대사는 한줄도 없어 으르렁거리는 소리만 울려 퍼진다. 그러나 생경한 몸짓 언어에서 발생하는 기이한 유머와 태평양의 울창한 숲을 로케이션으로 고집해 사실적으로 담은 풍경 묘사가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무엇보다 파괴되어가는 서식지에서 생존하고자 하는 시스콰치 가족의 여정이 인간 문명의 이기심을 경고하고 고군분투의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공동연출을 맡은 데이비드 젤너와 나단 젤너 감독은 어릴 적부터 사스콰치에 호기심을 키워 와 사스콰치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미스터리한 존재의 구현에 공을 들였으며 제시 아이젠버그를 비롯한 배우들은 촬영 기간 내내 고강도의 분장을 견뎠다는 후문이다. ‘아리 에스터 제작’이란 타이틀도 눈여겨볼 만하다. 결코 평범하게 흘러가지 않을 거란 선언과도 같아 기대감을 자아낸다.
<해피엔드> Happyend
감독 : 소라 네오 / 출연 : 쿠리하라 하야토, 히다카 유키토
대지진의 위협이 일상에 도사리는 근미래의 도쿄, 단짝인 고등학생 유타(쿠리하라 하야토)와 코우(히다카 유키토)는 장난을 치는 데 하루를 쓴다. 교장의 접대 현장을 목격한 어느 날, 두 친구는 교장의 차를 공격 목표로 삼는다. 분개한 교장은 재일교포인 코우에게 언어폭력을 가하고 학교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한다. 불량한 행실이 찍힌 학생에게 즉각 벌점을 주는 시스템까지 도입하자 학생들 사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해피엔드>는 학교에 커다란 문제를 던진 뒤 어떠한 반응들이 올라오는지를 지켜본다. 침묵 또는 반발을 선택하는 사람들, 혼란 속에서 불거지는 이방인 혐오와 각종 차별의 문제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집단적인 불안을 탐구한다. 한편 10대들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저 함께여서 좋은 순간의 기쁨과 점차 멀어지고 있다는 걸 자각하는 슬픔이 무엇인지 잘 아는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흔들 예정이다. 2024년 제81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프리미어를 가진 뒤 국내에서는 그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상영했다.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를 연출한 소라 네오의 첫 장편 극영화이다.
<9월 5일: 위험한 특종> September 5
감독 : 팀 펠바움 / 출연 : 피터 사스가드, 레오니 베네쉬, 존 마가로
1972년 9월 5일. 하계올림픽이 한창인 서독의 뮌헨에 팔레스타인의 테러단체인 검은 9월단이 침투했다. 8명의 괴한으로 이루어진 검은 9월단은 이스라엘 국가대표 선수단 코치와 선수 11명을 인질로 잡았고, 무고한 인질 모두가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후 이스라엘은 대외 정보기관 모사드를 동원해 ‘신의 분노’라 불리는 보복 작전을 벌였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현재까지도 가자지구에서 참혹하게 이어지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뮌헨> 등 여러 차례 영상화된 바 있는 뮌헨올림픽 참사가 팀 펠바움 감독의 <9월 5일: 위험한 특종>으로 한번 더 스크린에서 재현된다. 다만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모사드나 이스라엘 피해자가 아닌, 뮌헨올림픽 테러를 보도 중계한 미국 방송사 스포츠팀이다. 경기 중계를 위해 서독 출장 중인 PD 제프(존 마가로)는 선수촌에서 총성을 듣고 지금 뮌헨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도해 비극을 막으려 백방으로 뛴다. 제프는 현장 책임자인 선배 기자 마빈을 설득하고 성별을 근거로 뒷방 통역사로 무시받던 마리앤(레오니 베네쉬)을 현장 취재원으로 급파한다. 그리고 의 중역인 루운 아들리지(피터 사스가드)는 맨해튼 보도국 윗선의 반대에도 뮌헨 현장을 총책임자로서 이끈다. <9월 5일: 위험한 특종>은 지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사실적 연출로 호평받았다. 1972년 당시 누계 10억명의 시청자가 22시간에 걸쳐 이어진 의 생방송 중계(다행히 영화의 러닝타임은 95분이다)를 보았고 이들의 보도는 테러 현장을 담는 카메라의 윤리에 관해 수많은 논의를 낳았다. 펠바움 감독은 당시의 보도 풍경을 정확히 고증하기 위해 1972년의 기술력으로 만들 법한 방송 장비를 새로 제작했고, 범죄 현장을 픽션화해 재현하는 대신 스포츠팀이 촬영, 보도한 아카이브 푸티지를 삽입하기를 택했다. 팀 펠바움 감독은 베니스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영화적 임팩트를 위해 스토리라인을 각색하는 등 역사적 사건을 왜곡하지 않았다. 당시 참사를 보도한 미디어의 관점을 그대로 따랐다”라며 영화의 관점을 밝혔다.
<엘리오> Elio
감독 : 도미 시, 매들린 샤라피안, 애드리언 몰리나 / 목소리 출연 : 조 샐다나, 자밀라 자밀
현실적인 해피 엔딩의 어른 동화를 그려온 디즈니 픽사는 2025년에 어떤 작품을 선보일까. 2025년 6월 개봉을 앞둔 <엘리오>는 엉뚱한 상상력으로부터 출발한다. 엘리오는 평범하디평범한 어린 남자아이다. 이제 막 세상의 진리와 규칙를 깨달아가는 꼬마는 누군가의 실수에 의해 은하 세계에 납치되고 만다. 그런데 웬걸, 외계인들이 자신을 지구를 대표하는 외교사절단으로 오해하는 것 아닌가! 막막한 현실 속에 홀로 선 엘리오는 자기만의 경험과 판단을 기준 삼아 조금씩 모험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픽사의 전작 <월-E> <버즈 라이트이어>에 이어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엘리오>는 픽사의 29번째 장편애니메이션이다. 연출을 맡은 세명의 공동감독 도미 시, 매들린 샤라피안, 애드리언 몰리나는 <엠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작품을 위해 공상과학 공포물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엘리오>에 담긴 최고의 서프라이즈 장면 중 하나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너무 많이 알려줄 수는 없다. 다만 외계 공상물로서 같은 등급의 영화 중에서도 더 이상하고 기묘하고 소름 끼쳐 보이도록 노력했다. 실제로 영화 <에이리언> <미지와의 조우> <더 씽>을 레퍼런스 삼아 오마주한 장면들도 있다.” 어린이 관객을 겨냥한다는 애니메이션의 오해와 선입견을 탈피하기 위해 <엘리오>가 지닌 장르성에 공력을 쏟고 있다는 인상이다. 음악 또한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키운다. <데드풀과 울버린> <더 웨일> <더 웨이 백> <500일의 썸머> 등의 사운드트랙을 제작한 것으로 유명한 롭 사이몬슨 음악감독이 애니메이션 배경음악을 작업한다는 소식이 널리 퍼지면서 관심을 집중시켰다. 안정적인 성우진도 눈에 띈다. <아바타> 시리즈, <터미널>, <에밀리아 페레즈>, <어벤져스> 시리즈 등에 출연한 배우 조 샐다니 올가 이모의 목소리 연기를 맡고, <DC 리그 오브 슈퍼-펫>의 원더우먼 역을 소화한 자밀라 자밀이 성우로 합류하면서 기대감을 높이는 중이다. 지난해 누적 관객수 870만명을 기록한 <인사이드 아웃2>에 이어 긍정적인 순항을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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