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누구한테 절하는 것이오
부인 나 왔소
7년 동안 제 아내는 제 빈자리를 채워서 가문의 총부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외지부로서는 청수현에 지대한 노력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헌데 막상 제 아내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애먼 시신으로 제 장례까지 치를 뻔했을 때는 모두가 외면했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통탄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제 성가 가문의 장남인 이 성윤겸이 돌아왔으니 우리 일가에 흉포한 짓을 했던 자들의 죄를 하나하나 따지고 낱낱이 고해서 엄히 벌할 생각입니다.
만은 너그러이 용서한 아내의 뜻을 헤아려 지금의 분개함 깨끗이 씻고 이 잔치를 새 시작으로 한번 잘 지내보려고 합니다.
헌데 부인은 왜 날 부르지 않는 것이오.
예?
아 서방님이라고 부른 적이 한번도 없는 거 같길래
서방님이 아니시니깐요.
예? 저 일단 잠깐 저 부인 조금만 천천히
혹시 이곳이 기억이 나십니까?
아니요. 근데 익숙하고 정겹긴 하네요. 혹시 우리가 이곳에 자주 왔었습니까?
아뇨 우린 이곳에 함께 온 적이 없습니다.
아 헌데 왜 이리로?
이곳은 제 정인과 추억이 서린 곳입니다.
정인이요?
저는 혼례 전에 정인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손이 부드럽고 춤사위가 뛰어나시고 많은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뛰어난 예인이셨지요. 그리고 송화가루에는 재채기를 하는 분이셨습니다.
언제부터 알았느냐. 그 내가 콧노래 흥얼거렸을 때지, 아 이게 본능적으로 나와서 내가 그때 아차 싶었는데.
콧노래가 아닙니다.
그럼 뭔데?
눈빛. 저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분은 단장님밖에 없으니까요.
역시 사랑이랑 재채기는 숨길 수가 없는 법이구나.
재미있으십니까? 뭐 기억 소실? 지금 이걸 장난이라고 치세요?
미안해...
청나라 공연은 어찌하고 오신 것입니까?
그거 걱정 안 해도 돼 괜찮아 내가 다 미뤘어.
허면 무예는요. 그건 도무지 방법이 없었을 텐데.
운봉산에서 너한테 도움 못된 게 계속 마음에 걸려서 그런 일 있으면 너 지켜주려고 열심히 연습했다. 아 그러니까 화 풀거라 내가 미안하다고 하지 않느냐.
이렇게 되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는 거 알면서도 단장님은 오로지 너 지킬려고 자길 죽이고 여기 온 거라고.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면서도 들키면 죽음이라는 걸 알면서도, 너 지킬 수 있다면 자긴 상관없대.
오랫동안 연모했소. 그쪽 형수가 혼례하기 전부터
고초를 겪고 있다그러니까 견딜 수가 없어서
구덕이가 내 인생에서 더 큰 의미인 거겠지
머뭇거리면 내가 못 갈 거 같아서 그래
돌이키지 않으려 이러는 겁니다
세번이야 내가 너한테 떠나자고 세번이나 얘기했어, 근데 너가 세번 다 거절했지. 왜? 여기 네가 지켜야될 소중한 가족이 있고 네 꿈이 있었으니까.
난 너가 여기 갇혀있다고 생각했거든? 아니 넌 여기가 나보다 소중했던 게야 그래서 내가 왔잖아 너한테 소중한 것들 지키게 해주려고. 나는 진짜로 너만 있으면 다 버릴 수 있으니까
그니까 안 나가면 되잖아 너한테 소중한거 이제 다 여기 있잖아
아니 같이 있는 동안은 내가 남편 행세를 해야될 거 아니야. 남편된 도리로서 어찌 부인을 이렇게 위험한 살인 현장에 혼자 보내겠소. 그리고 내가 이제 싸움도 잘하니까 호위로 써도 되고
왜 천승휘를 죽이면서까지 왔냐고 물었지? 이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이 보고싶었어
한번만... 딱 한번만 욕심내도 되겠습니까?
단장님을 진짜 남편 삼아 여기서 살면서 제가 하고싶은거 하면서 살아도 될는지...
너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면서 어찌 그리 너한테만 가혹한 것이야. 남들 돕지만 말고 그만 희생하고 그만 용서하고 제발 너 하고싶은대로 하고 살거라.
아시지 않습니까 전 노비 구덕입니다.
나는 네가 노비일 때부터 존경했다. 노비면서도 글을 배우고 지두를 팔아서 돈을 벌어서 도망칠 궁리를 했지. 주어진 삶에 머물지않고 주인에게 똥물을 끼얹고 부당한 삶에서 탈출했어. 그렇게 스스로 개척해낸 소중한 삶이다. 너는 그럴 자격 있어 충분히. 지금 이게 네 삶이다.
허면 단장님의 꿈은요? 저를 위해서 모두 포기하셨는데 제가 어찌 혼자 행복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아니? 나는 지금 내 인생 최고의 무대에 뛰어든 것이야. 내 스스로 주인공이 돼서 너랑 지금 부부로 살고있지 않느냐? 이또한 내 꿈을 이룬거나 다름이 없지.
언젠가 들킨다면 말이야, 우리 둘다 죽음을 면치 못하겠지만
난 하루라도 네 남편으로 살 수 있다면 죽음은 두렵지가 않다. 아니 사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너랑 같이 했던 며칠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
그러니까 우리 들키지말자. 너가 구덕이가 아니라 태영이로 사는 것처럼 나도 이제 천승휘가 아니라 성윤겸이다.
자 허면 불러 보거라 내가 누구라고?
서방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