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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영화 ‘하얼빈’, 제목이 안중근이 아닌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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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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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의 유일한 대규모 액션인 ‘신아산 전투’는 묘하게 연출됐다. 냉병기의 시대는 지났지만, 몇 번의 총격이 오간 뒤에는 진흙밭에 뒹굴며 육탄전을 벌인다. 눈과 흙, 피가 뒤섞인 치열한 전장에서 독립군과 일본군의 차이를 한눈에 살피기는 어렵다. 풍찬노숙하던 독립군의 처절함을 보여주는 방식으로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아군과 적군 모두 전쟁의 희생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반전영화에서 더 익숙한 방식이다. 아니나 다를까. 가까스로 승리를 거둔 안중근(현빈)은 만국공법에 따라 포로로 잡은 일본군을 풀어주자고 말한다.

이창섭(이동욱)을 비롯한 독립군의 반발이 따른다. 위치가 노출되어 반격받을 수도 있다는 전략적 판단과 함께 독립을 위해서라면 4천만 일본인을 다 죽일 수도 있다는 격한 감정들이 쏟아진다.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란 경고에 결국 안중근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만, 예상대로 일본군의 반격이 이어지고 독립군은 허무하게 궤멸당한다. 이어질 역사를 아는 관객의 입장에서도 이때 안중근의 판단을 쉬이 존중하기는 어렵다. <하얼빈>은 극 중에서도, 바깥에서도 안중근을 구석에 몰아놓고 시작한다.

‘나의 믿음으로 인해 많은 동지가 희생되었으니 더는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며 죽으려 했다는 안중근은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독립군 아지트로 돌아온다. ‘죽은 동지들의 목숨을 대신하여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탓이다. 그래서 왼쪽 약지를 잘라 혈서를 쓰며 다짐한다. 늙은 늑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기로. 이제 살아있는 안중근은 죽은 독립군의 일원이 됐다. 그래서일까. <하얼빈>은 독립군들을 어두컴컴한 배경에 두고 하나의 미약한 빛줄기로만 비춘다. 언제든 죽은 독립군의 일원이 될 수 있음을 관객에게 주지시키듯이 말이다

제목이 안중근이 아닌 하얼빈인 이유

<하얼빈>은 미래를 본다. 안중근을 비롯해 우덕순(박정민), 김상현(조우진), 공부인(전여빈)처럼 주요 등장인물이 독립운동을 하는 까닭은 술자리에서 안주 같은 농담으로 다루어지거나, 큰 목적을 위해 상대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스치듯 언급될 뿐이다. 과거사보다 포로 대우와 같은 노선 차이로 인한 내부 갈등, 대단한 활약을 한 독립군이지만 부상을 당한 뒤 가족을 잃고 마적 떼로 전락하고 마는 절망감, 같은 편을 믿지 못하고 밀정으로 의심해야 하는 신뢰의 상실 등 독립군이 겪어야 할 보편적인 괴로움에 집중한다.

제목이 안중근이 아닌 ‘하얼빈’인 것도 이해가 된다. 반드시 안중근이어서 겪었을 고통이 아니라 하얼빈을 비롯해 만주와 연해주를 누비던 독립군들에게 일어났을 일상적인 사건의 변주였을 테니까. 이토 사살이라는 목적을 향해 달려가지만, 이상하리만치 그의 악행이나 일본군의 악랄함도 드러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물론 관객의 역사적 이해가 충분하다는 전제가 깔려있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이토를 죽인다고 독립이 바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하얼빈역이 독립운동의 출발이나 경유지는 될 수 있지만 종착역이 될 수는 없다.

영웅적인 면모의 부각보다 국권 회복을 위한 저항정신을 다루는 <하얼빈>의 연출 의도는 이토 사살 장면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자신을 감독이라고 상상해 보자. 클라이맥스에서 극적인 연출을 위한 고민이 얼마나 많았을까. 웅장한 음악을 배경에 깔고 모진 역경을 뚫고 격발하는 안중근 의사의 비장한 표정,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이토 히로부미의 놀란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끌어내고 싶은 욕망이 끓을 것 같다.

하지만 <하얼빈>은 이런 욕망을 모두 거부하고 결정적 순간을 하얼빈역 전체를 조감하는 부감으로 포착한다. 환영인파와 군악대가 뒤섞인 혼란 속에서 총성이 들린다. 안중근이나 이토의 위치도 한눈에 파악할 수 없는 사이에 우렁찬 ‘코레아 우라’만 하얼빈역에 울려 퍼진다. 우민호 감독은 이에 대해 먼저 떠난 독립군의 시선을 염두에 뒀다고 한다. 죽은 동지들의 목숨이라고 말하며 도망치지 않고 돌아온 안중근의 고백과도 일맥상통한다.

얼어붙은 강이 풀릴 때 나는 소리

<하얼빈>의 절제는 엔딩에서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감독은 보장된 감동을 줄 수 있는 안중근 의사의 최후가 아니라 밀정을 또 한 번 전면에 등장시키며 영화를 마무리한다. 밀정은 김구에게 접근하라는 임무를 준 일본군 소령을 죽여버리고 다시 독립군 동료들에게 돌아간다. 밀정의 정체를 알았음에도 ‘지금은 두려움에 떨겠지만, 반드시 극복할 거라 믿는다’는 안중근의 당부이자, 죽은 독립군이 아직 살아있는 이들에게 전할 수 있는 희망이 실현된 순간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겨울에 말을 타고 언 강 위를 지나간 사람이 있었는데, 이듬해 봄에 강이 풀리고 나자 그곳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고. 말도 사람도 사라졌지만 그들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소리는 남는다.(한정원, 『시와 산책』 중에서). 여의도와 한강진의 날카로운 강바람, 남태령의 매서운 산바람으로 몸과 마음이 꽁꽁 얼어버린 엄혹한 시절이지만 얼어붙은 두만강을 깨고 건너온 안중근의 목소리에 다시 한번 겨울을 녹일 희망의 불을 댕긴다.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 앞에 어떠한 역경이 닥치더라도 절대 멈춰서는 아니 된다. 금년에 못 이루면 다시 내년에 도모하고, 내년, 내후년, 10년, 100년까지 가서라도 반드시 대한국의 독립권을 회복한 다음에라야 그만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기어이 앞에 나가고, 뒤에 나가고, 급히 나가고, 더디 나가고, 미리 준비하고 뒷일도 준비하고 모든 것을 준비하면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까지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가야 한다. 불을 들고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https://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1287

 

독립군을 다루는결이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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