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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드라마는 배우를 만나 삶으로 확장된다.
채수빈은 지난달 30일 개최된 '2024 MBC 연기대상'에서 '지금 거신 전화는'의 홍희주 역으로 미니시리즈 부문 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이날 채수빈은 수어로 소감을 준비했다.
그는 "드라마 속 희주 역할로 여러분을 만나서 행복했다.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수어로 말했다. 채수빈이 연기한 홍희주는 어릴 적 불의의 사고로 함묵증을 앓고 있는 수어 통역사다.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사정은 있다지만, 희주에게 그 사정은 조금 더 극적이고 처절하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MBC 연기대상은 지상파 시상식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그러나 수어 동시 통역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는다. 다른 시상식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말할 수 있고, 모두가 들을 수 있는 시상식은 얼핏 젊고 건강한 비장애인들로만 이루어진 원더랜드처럼 느껴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달 3일에도 KBS를 제외한 방송사에서는 수어 통역이 제공되지 않았다. 이후 언론 보도에서도 수어 통역은 드물었다. 계엄이 아닌 더한 재난 상황에서는 수어 통역을 기대해 볼 수 있을까? '더한 재난'의 기준은 무엇이며, 그보다 왜 '기대'를 해야 할까. 5·18 광주민주화운동 두 번째 희생자인 김경철 열사는 광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친척을 배웅하고 귀가하던 중 공수부대원의 소리를 듣지 못해 잡혔다. 그는 장애인증을 내밀었지만 이를 믿지 않는 군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폭행 당해 숨졌다. 이런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수어 통역은 여전히 필수가 아니다.
이에 대해 코다코리아는 "청인들이 비상계엄 이후 무엇을 해야 할지 논의하고 행동에 옮길 때, 농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여전히 설명을 필요로 하고 있는 실정이다. 재난과 참사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은 것처럼 계엄이라는 무게와 강도 역시 모두에게 같지 않다"는 성명을 전했고, 농인 부모를 둔 이길보라 감독은 "농인 부모님은 뉴스를 봐도 무슨 상황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수어로 설명하려고 했다. 어제 내가 봤던 방송사의 뉴스 속보에는 수어 통역이 제공되지 않았다. 재난 상황에서 농인의 정보접근권 현실이 이렇다"며 "이제껏 농인 부모가 처한 복지와 돌봄의 사각지대를 나와 동생이 메어왔는데, 바다 건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참담하고 복잡했다"고 전했다. 비상상황도, 축제도 오로지 들을 수 있는 자만이 대비하고 즐기는 특권이었다.
이런 가운데 채수빈은 MBC가, 연기대상이 하지 못한 일을 했다. 그는 수어로 수상 소감을 전하기에 앞서 "저는 어릴 때부터 연기를 꿈꿨다. 배우 한 사람이 이 삶도 겪어보고, 저 삶도 겪어보는 게 멋져 보였다. 연기를 하면서 (이러한 삶들이) 하나하나 선물같이 느껴졌다"고 밝혔다. 그리고 수어 통역사로 살아본 삶을 다시 포장해 다른 이에게 선물로 돌려주고자 했다. "이 선물이 나한테만 국한된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기쁨과 행복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는 '지금 거신 전화는' 방영 전에 밝힌 각오에서 "드라마를 통해 대중들이 수어를 친근하게 생각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제작발표회 당시에는 자신의 이름을 수어로 소개하기도 했다. 수어를 캐릭터 연기를 위한 수단으로만 소비하지 않고 언어로 존중하고 완벽하게 터득하고자 노력했다. 비록 작품은 대본상 등장한 일부 장면에 의해 수어 희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채수빈의 노력과 마음이 폄훼되는 것은 아니었다.
타인의 삶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은 그 사람의 삶을 살아보는 것이다. 배우가 연기를 통해 다른 삶을 경험한다면 대중은 드라마, 영화, 예능, 소설, 에세이 등으로 누군가의 삶을 모험하고 이해를 키워간다. 광장에서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의 발언으로 그의 삶을 가늠해 본다. 길지는 않지만, 시상식에서 보여주는 소감에서도 배우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채수빈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할애해 당신에게 생소할 언어를 전한다. 주저 없이 꽃다발과 트로피를 바닥에 내려놓고 두 손으로 말한다. '남'이 수여하는 영광은 내려놓고 '나'의 언어를 손에 쥔다. 기꺼이 농인들의 스피커가 된 몸짓이 10초의 시간 동안 울려 퍼진다. 단상 위에, 객석 앞에, 상암 MBC 미디어센터 공개홀 안에, 당신이 있는 곳에. 이 작은 시도가 무언의 날갯짓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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