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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씨네21/특집] 우리가 사랑한 2024년의 배우들 - 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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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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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갛다 못해 투명에 가까워 보이는 얼굴, 여리여리해 보이면서도 무게감 있는 걸음걸이, 항시 우수를 머금은 듯한 읊조림의 목소리. 이처럼 배우 홍경의 겉보기를 표현하고 수식하기는 꽤 손쉽다. 하지만 그를 더 제대로 말하기에 무척이나 곤란한 점은 우리가 좋아하는 홍경의 외면이 스크린 위에서 가려지고, 왜곡되고, 어둠에 갇힐 때야말로 홍경이라는 형체의 다른 진가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배우가 가진 힘이라거나 좋은 연기력이라거나 적절한 감정 표현 정도가 아닌 말 그대로의 영화적인 ‘무언가’. 특히 이 무언가의 순간은 영화 연출가가 배우의 형상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을 때 도리어 배우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모순의 찰나이기도 하다. 형언하기 어려운 이 순간의 감흥은 홍경이 보여준 (아직) 많지 않은 몇편의 영화들을 살피는 방식으로 복기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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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으로 도망쳐 살다시피 하는 동성 연인 진우(강길우)를 시인 현민(홍경)이 찾아온다. 두 사람은 배를 타고 작은 섬으로 나가 텐트를 치고 둘만의 밀회를 즐긴다. 해가 지고 아주 조금의 노을만이 하늘에 남아 있을 무렵, 카메라가 롱숏의 먼 거리에서 진우와 현민을 비추는데 그들의 몸은 어두운 그림자처럼 검게 보이기만 한다. 현민은 텐트에서 걸어 나와 기지개를 켜고 잠시 흔들린 뒤 쓰러지듯 진우의 등에 안긴다. 그리고 맑게 웃으며 장난치듯 등에 업히더니 진우와 마주하여 깊게 안는다. 1분이 채 되지 않는 이 걸음과 포옹에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이 거리와 어둠 속에서 홍경은 현민이 지닌 사랑의 개운함, 조금의 망설임, 큰 용기,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와닿는 행복의 속도를 행동한다.


한편 영화의 후반부, 진우와 현민이 자동차의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 크게 다툰다. 이때 햇빛은 진우의 얼굴에만 드리우고 현민의 얼굴은 별다른 조명 없이 검게 보이기만 한다. 천진난만하고 해사한 시인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어둠을 먹어 침잠한 얼굴의 옆태가 진우의 분노를 마주한다. 종종 말을 꺼내려다 침을 삼키고 잠시 입술을 여는 현민의 작은 움직임들이 둘의 세계를 천천히 가르는 듯하다. 이처럼 <정말 먼 곳>은 홍경이 머금는 어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두 남자의 사랑을 가시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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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여론 조작을 통해 부적절한 이득을 취하는 세 청춘 찡뻤킹(김성철), 찻탓캇(김동휘), 팹택(홍경)은 한집에서 함께 머문다. 이들이 점차 더 깊은 불법, 부정의 세계로 진입하면서 세 인물의 갈등이 점차고조된다. 사소한 기싸과 치기로 손쉽게 갈라지기도 하는 젊은 날의 민감함이 세 주인공의 내면을 좀먹는다. 가장 극단적인 다툼의 일례는 영화의 후반부, 러닝타임의 대략 1시간20분이 지났을 무렵 찻탓캇과 팹택이 집 안의 어두운 거실에 서서 이후의 선택을 논의하는 장면이다. 이때 화면의 후경엔 집 창문 너머 멈춰 있는 대관람차가 보이고, 전경엔 두 남자의 칠흑 같은 상체 실루엣만이 가득 차 있다. 영화가 진행되며 드러난 팹택의 슬픔, 분노, 불안의 표현들보다 이 어둠 속의 대화에서 잠시 말문이 막힌 팹택의 정지된 시간이야말로 <댓글부대>를 통틀어 가장 공포스럽고 허탈한 순간이다. 일정량의 시각적 정보를 보여줘야 하는 영화 매체, 특히 완전한 어둠을 피하기 마련인 근래의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든 이 어두움을 홍경은 먹지처럼 잔뜩 머금어 체화하고야 만다.


한없이 해맑은 세 청춘 용준(홍경), 여름(노윤서), 가을(김민주)의 애틋한 청춘과 꿈 이야기 <청설>에서마저 홍경의 일그러진 형체는 작품 내의 이질적인 어둠을 표면화한다. 용준과의 사랑을 키워가던 여름은 청각장애인인 동생 가을의 삶을 신경 쓰느라 용준을 밀쳐낸다. 이렇게 한창 여름과 용준의 사이가 멀어졌을 즈음, 용준이 배달을 마친 뒤 부모님의 도시락 가게에 들어서려다 멈춰 선다. 그런데 이때 카메라가 돌연 어딘가의 유리창에 비친 용준의 옆모습을 찍는다. 반사된 용준의 뿌옇고 불균질한 형체는 시종일관 쨍하고 푸르렀던 <청설>의 한 장면이 아닌 듯 느껴지기까지 한다. 용준은 살짝 시선을 떨구고 어딘가를 멍하니 응시하더니 고개를 돌린다. 이윽고 카메라는 패닝하여 유리창에 비치지 않은 진짜 용준의 얼굴을 보여주는데, 이 순간 그림자가 드리운 용준의 얼굴은 한없이 공허하다. 빛과 웃음으로 가득한 이 영화의 세계에서도 홍경은 자기만의 파열과 암흑을 꺼내는 놀라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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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에 대해 알면 좋을 두세 가지 것들


시네필
= 자타공인 시네필 배우로 유명한 홍경. <흐트러지다>(1964), <천국의 그림자>(1986), <지옥>(1994), <마스터>(2012) 등 그가 언급하거나 추천한 영화들을 조금만 나열해도 넓고 깊은 그의 취향을 짐작할 수 있다.


60초 페스티벌
= 홍경은 2018년 서울독립영화제 ‘배우프로젝트-60초 독백 페스티벌’에서 2위를 차지하며 본격적으로 배우로서의 포문을 열었다. 해당 페스티벌의 예심 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60초 안쪽의 이 독백 연기를 보고 홍경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가 있을까.


연기 바깥의 연기
= 시네필인 홍경이지만 그는 배역을 준비할 때는 “다른 배우들의 작품을 참고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대신 <정말 먼 곳>을 준비할 땐 주로 시인들의 영상을 분석하고, <결백> 당시엔 자폐성 장애인인 정수를 연기하기 위해 복지관에서 봉사 활동을 하거나 특수학교 교사를 직접 만나는 등 영화 바깥의 준비에도 철저한 편이다.



https://naver.me/F5DosVX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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