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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씨네21/특집] 우리가 사랑한 2024년의 배우들 - 산드라 휠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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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3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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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착할 수 없는(ungraspable) 사람.” <추락의 해부>의 감독 쥐스틴 트리에는 산드라 휠러에게 단 하나의 요건을 주문했다. 남편의 살인 용의자로 법정에 선 <추락의 해부>의 작가 산드라와 아우슈비츠 옆에서 꿈의 집을 가꾸며 유유히 살아가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가정주부 헤트비히 모두 분명 쉽게 포착할 수 없는 인간들이다. 2023년, 산드라 휠러는 칸영화제에서 같은 해에 황금종려상과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두편의 영화에 주연배우로 출연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포착할 수 없다는 표현은 무엇보다 이 배우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믿을 수 없는 간극을 자랑하는 두 영화가 국내에 상륙한 2024년. 산드라 휠러가 남긴 크고 대담한 행보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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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녀는 악마였을까? <존 오브 인터레스트>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물러나고 거리감을 둠으로써 어떤 끔찍함을 드러낸다. 산드라 휠러는 나치 사령관의 아내 헤트비히 회스를 연기할 때 홀로코스트 부역자 캐릭터에 자신을 동일시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물론, 배우로서 더욱 적극적인 힘을 발휘해 캐릭터를 비워두고자 했다. 이는 단순한 물러남 이상의 주도적 행위를 뜻한다. “배우로서의 내 힘을 사용해서 캐릭터에게 사랑, 기쁨, 성취감, 연결감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주지 않으려 했다. 캐릭터를 가능한 한 지루하게 만드는 것이 나의 아이디어였다.”(<뉴요커>) 겉보기에 아우슈비츠 수용소 바로 옆에서 평화로운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상적 순간에도 산드라 휠러의 연기는 끊임없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가 혼자서 창밖이나 거울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미세한 표정의 변화는, 인간의 양심이 스스로를 기만하고자 할 때 스멀스멀 올라오는 역겨움을 들춰낸다.


독일은 예술성을 담보하는 무대 작업과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영화작업을 배우들이 병행하도록 제도적으로 권장하는 국가다. 산드라 휠러 또한 지금도 극단 소속 배우로 꾸준히 활동 중인 현역 연극배우인데, 특히 2019년 <햄릿>에서는 여성 햄릿을 맡아 아방가르드한 연기를 펼쳤다. 상대적으로 신체성이 부각되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휠러가 무대에서 갈고닦은 장악력을 효과적으로 펼쳐 보인 경우다. 휠러는 약간 어깨가 굽고 발을 벌려서 휘청거리며 걷는 자세로 헤트비히가 집 안 이곳저곳을 거의 쿵쾅거리다시피 걷도록 했다. 반복된 출산,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성정, 그리고 더 깊게는 그들이 아우슈비츠 옆 꿈의 집에 당도하기 전 오랫동안 농장 생활을 했음을 암시하는 디테일이다. 관찰 카메라에 가깝게 자신을 멀리서 지켜보는 카메라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 캐릭터 연구를 수행해나간 배우의 묘사는 곧 그가 담장 너머에서 일어나는 학살의 공모자라는 사실도 웅변적으로 드러냈다. 차오르는 불안과 두려움을 필사적으로 회피하는 인간의 몸짓. 조나단 글래이저 감독이 배우 산드라 휠러의 표현을 통해 비로소 한나 아렌트의 이론을 실감했다고 밝힌(<씨네21> 1460호, 조나단 글래이저 인터뷰) 바로 그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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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녀는 살인자였을까? <추락의 해부>


쥐스틴 트리에 감독은 산드라 휠러에게 주인공 산드라가 무죄인 것처럼 연기해달라고 주문했지만, 정말로 그녀가 남편을 죽였냐는 휠러의 질문에는 번번이 “10년 뒤에 알려주겠다”는 대답만을 남겼다. 전통적인 메소드 연기와는 거리를 두는, 캐릭터와 자신 사이의 미묘한 거리를 유지하는 배우라고는 해도 대개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사랑하게 되기 마련이다. 인물이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 추측하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이어 <추락의 해부>에서도 산드라 휠러가 마주한 과제는 난감한 불투명성이었다. 이미 헤트비히 회스(<존 오브 인터레스트>)와의 시간을 보낸 이후였기에 휠러에겐 어쩌면 <추락의 해부>의 시도가 차라리 덜 까다로운 작업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문제는 쥐스틴 트리에와 각본가 아서 하라리가 매우 직접적이고 긴박한 다량의 대사를 요구했으며, 대부분이 그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와 프랑스어였다는 점이다. 게다가 유능한 작가인 산드라 부아테는 자신을 망설임 없이 매우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인간이다. 산드라 휠러는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이 잔인한 포식자이거나 진실을 아주 능숙하게 위장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무의식적으로라도) 품고서 작품에 임해야 했다. 일례로 <추락의 해부>의 오프닝 장면에서 산드라는 이미 약간 취한 채로 와인 잔을 들고 소파에 기대어 앉아 눈앞의 젊은 인터뷰이를 유혹한다. 인물의 의중을 단정하기 어려운 이 장면은 이후 법정에서 산드라가 과거에 다른 여성과 혼외 관계를 가진 적 있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 한층 서늘하게 복기된다. 휠러는 여기에 더해 자신의 캐릭터가 반항적 논쟁을 즐기거나 때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반골 기질과 장난기를 서슴없이 발휘하고, 약간은 어린아이 같은 회피 심리를 드러내는 순간도 미묘한 톤으로 기입했다. 단순히 죄의 유무 사이의 모호함을 오가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스펙트럼을 향유하는 여성의 초상을 실현한 것이다. 실질적으로 배우가 이같은 해석을 정확히 품고 있다고 해도 표현으로 옮기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러나 이 강건한 배우는 부부간의 권력 분배에 대해 신랄하게 통찰하는 법정물 <추락의 해부>의 긴요한 핵심을 간파하고 있다. “그녀가 살인을 했냐 안 했냐가 아니라, 한명의 복잡한 인간으로서 재판정에서 어떻게 대우받았는지에 집중했다.”(<더 랩>) 요컨대 사회가 도덕적 경계 위에 선 여성에게 부과하는 수치심을 끌어안지 않겠다고 맹렬하게 버티고 선 여성의 입장에 관해서만큼은 확실히 이입하기로 결정한 셈이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을 세우는 한 여성의 태도를 강하고 차가운 성질로 표현했으며, 때로 폭발할 경우에는 히스테리라기보다 맹수의 공격 반응에 가깝도록 설정했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은 산드라 휠러가 완전히 메이크업을 지우고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일종의 강한 신체성이 도드라지는 배우임을 짚는다. 물리적이고, 신체적인 측면에서 휠러는 독특한 신체성을 발현하는 배우이고 이것은 한 배우의 고유한 존재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너무 연극적이거나 그렇다고 너무 세련된 연기를 하지 않으면서 몸의 쓰임을 우직하게 새겨넣었던 뉴 저먼 시네마의 독일 배우들, 이를테면 한나 쉬굴라 등이 보여준 훌륭한 특징도 이와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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