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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씨네21/기획] 2024년 한국영화 키워드 - 사이버 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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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2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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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yed



2024년 한국영화와 드라마의 경향을 묻는 질문 앞에서 뜬금없이 떠오른 키워드는 ‘사이버 레커’였다. 사이버 레커라는 단어와 함께 연상된 작품은, 이들 존재를 직접적으로 서사 안으로 끌어들인 <베테랑2>나 <지옥2>가 아니라 <살인자ㅇ난감>과 <노 웨이 아웃: 더 룰렛> 등이었다. 그리고 이들 작품이 대중에게 정의를 어필하는 방식이 사이버 레커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몇번을 망설였지만, 그럼에도 내 머릿속에는 사이버 레커라는 단어가 떠나지 않았다.


사적 처벌(또는 사적제재)이 최근 한국영화와 드라마의 트렌드라는 사실을 굳이 길게 거론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사법제도 등의 공적영역에 대한 불신이 이러한 경향을 낳은 원인이라는 일반적 견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러한 입장을 부정하지 않지만,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이 어지럽게 뒤섞인 지금의 상황을 가장 잘 대변하는 존재가 사이버 레커라는 관점에서 이러한 현상에 접근하고 싶다. 사적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공적영역에 계엄을 선포한 ‘사이버 레커 대통령’을 둔 나라의 국민답게 말이다.


사이버 레커는 (공적) 정의와 진실을 앞세우며 (사적이익을 위한) 조회수 장사를 한다. 그들의 주장에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뒤섞여 있다. <베테랑2>의 정의부장 박 기자(신승환)가 증명하듯, 그들은 정의와 진실 추구가 자신의 목적인 양 포장하지만 이는 수단을 목적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그들이 진실과 정의를 외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은 대중이 마음껏 분노할 수 있는 대상이다. 사이버 레커는 모두가 분노할 수 있는 먹잇감을 찾는 일을 진실 찾기라 말하고, 그 대상을 마음껏 미워하며 분노하는 일을 정의라고 부른다. 그들은 정의라는 시장을 만들어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정의인 양 속여 판다.


사적 처벌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작품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죽어 마땅한 악한이다. 그들에게는 조금의 동정도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이들 작품의 악한 대부분이 단선적이고 평면적인 이유도, 미성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가 클리셰로 자리하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모두가 증오하고 분노할 만한 대상을 관객에게 툭 던져놓고 그 반대편에 서는 것, 이들 작품은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정의의 편에 선다. 정의는 처벌을 통해 완성된다. (폭력에 기반한) 처벌 없이는 정의도 없다. 공적영역의 무능과 무책임은 폭력에 기반한 사적 처벌을 합리화하기 위한 알리바이에 불과하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여야 하는 것은 한국영화의 장르적인 특성이다. 한국영화는 전통적으로 장르영화에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를 결합시키며 성장해왔고, 그것은 K무비, K드라마의 변별적 특성으로 이어졌다. 사회비판적 태도가 그저 하나의 관습처럼 자리하면서 지금 한국영화와 드라마는 사회에 대한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사회를 비판하려 한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데 중독되어 있다. 공허하면서도 무의미한 제스처. 그렇기에 이들 영화에서 비판하는 공적영역은 이 제스처를 부각하기 위한 크로마키에 지나지 않는다. 언젠가 그 크로마키를 채우는 영상은 또 다른 것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이 무의미한 텅 빈 제스처를 위해서.


중요한 것은 이들 작품이 자신의 사적 처벌이 갖는 위험성을 얼마나 자기 반영적으로 경계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베테랑2>는 유일무이한 위치를 점한 작품이다. <베테랑2>는 <베테랑>의 세계를 허물면서까지 자신의 과오를 바로잡고자 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 라는 마음, 그것이 <베테랑2>가 9년 전의 <베테랑>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유다. <베테랑>에서 서도철(황정민)이 조태오(유아인)를 검거하며 사건을 마무리하는 공간은 명동 한복판이다. 하지만 <베테랑2>의 엔딩은 터널처럼 보이는 밀폐된 공간이다. 사건을 마무리짓는 공간의 질적 차이는 우연의 결과일까? <베테랑>에서 명동 거리에 몰려든 군중(과 카메라)은 서도철의 행위를 정당방위(또는 공적 정의)로 입증해줄 증인이자 우군이었다. 서도철이 군중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은 목격자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베테랑>에서 정의는 독야청정한 것도 서도철 혼자만의 힘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베테랑2>에서 <베테랑>의 명동 장면과 쌍을 이루는 것은 영화 초중반의 남산타워 장면이다. 목격자로서 군중이 다시 등장하지만, 서도철(과 그의 동료들)은 더이상 군중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일갈한다. “찍지 마, 좀!”이라고. 판이 뒤집혔다. <베테랑2>에서 대중이 매혹된 대상은 해치(또는 박선우)다. 목격자를 필요로 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지만, 이제 이 목격의 행위는 조회수 장사를 위해 사용될 뿐이다. 출소한 전 소장(정만식)을 두고 등장한 사이버 레커들처럼 말이다. <베테랑2>는 남산 장면 이후의 액션 장면 대부분을 군중의 시선이 차단된 곳에서 벌인다. 더이상 목격자의 힘을 믿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한번도 해치를 자처한 적이 없다는 박선우(정해인)의 항변이다. 그렇다면 누가 해치를 탄생시켰는가? ‘좋아요’와 ‘구독’ 버튼으로 박 기자의 정의에 동참했던 대중이 해치를 영웅으로 만들었지만, 그를 잉태한 것은 서도철이 군중과 함께 완성한 정의였다. 박선우가 원한 것은 실천으로서의 정의였을까, 아니면 목격자로서의 군중의 지지였을까? <베테랑2>는 지금의 사회가 목격에 중독된 사회로 바라본다. 그것이 “찍지 마, 좀!”이라는 반복적 대사와 함께 군중의 시선을 차단하려는 이유다. 조태오를 검거하는 서도철을 목격하고 그처럼 되기 위해 경찰이 되었다는, 서도철의 거울상으로서의 박선우. <베테랑2>만이 유일무이하게 자신이 내세웠던 정의에 대해 성찰적인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그 의심의 결과가, “좋은 살인 있고 나쁜 살인 있어? 살인은 그냥 살인이야”라는, 아주 직접적인(달리 말하면 아주 비영화적인 방식의) 메시지다. 그렇게라도 일갈하지 않으면 정의를 내다파는 사이버 레커의 시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듯.



https://naver.me/xl0pz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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