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억압과 핍박, 부자유로 점철된 1908년, 일제강점기. 사계절 내내 겨울 같았던 엄혹한 시절을 생생히 담기 위해 홍경표 촬영감독은 카메라 아리 알렉사 65(ARRI ALEXA 65)를 들어올렸다. 광활한 아이맥스 스크린에 펼쳐지는 독립운동은 음울하고 서글픈 시대상과 결연한 독립투사의 전의가 뒤섞여 처연하게 그려진다. 꽁꽁 얼다 못해 부서질 것만 같은 두만강 오프닝 시퀀스부터 역사가 기억하는 절규 섞인 처단의 장면까지 홍경표 촬영감독이 목격하고 기록한 이미지를 함께 나누었다.
일본군과의 치열한 전투 장면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수한 인파 속에서 안중근의 활약을 따라가는 동시에 우덕순(박정민), 김상현(조우진) 등 다른 인물까지 한꺼번에 잡아내야 하는 것이었다. 이 장면을 위해 홍경표 촬영감독은 한대의 카메라만 쓸 것을 선택했다. “한칸 한칸 앞으로 나아가면서 촬영했다. 패닝 기법을 쓰면서 카메라 자체는 많이 안 움직였다. 다소 옛날에 사용하던 촬영 방식이다. 물론 인물을 따라 움직이면서도 찍어봤다. 그런데 <하얼빈>의 분위기와 착 붙지 않더라. 이 작품은 스타일리시한 액션보다 분골쇄신하는 백병전을 그려내는 게 중요했다. 새벽 촬영이라 땅이 엄청 얼어서 하나하나 녹여 진흙 위에서 촬영했다. 차가운 진흙탕물에 몸을 다 적신 조우진 배우의 열연을 잊지 못한다.”
“꽁꽁 언 두만강을 홀로 건너는 안중근(현빈)의 모습을 촬영한 곳은 몽골의 홉스골 호수다. 핏줄처럼 얼음 줄기가 곳곳으로 뻗은 이 장면에는 시각효과가 거의 쓰이지 않았다. 시나리오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눈 덮인 산속을 방황하는 장면이었는데, 촬영 답사를 한 스태프가 호수를 찍어온 것을 보고 놀라 우민호 감독과 함께 장면을 수정했다. 호수 위로 발자국이 찍히면 안되니까 오직 배우만이 그 안에 들어가 두 시간여를 걸어다녔다. 현빈씨가 정말 고생이 많았다. 이 호수 장면을 촬영하는 동안 촬영감독으로서 오랜만에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호수의 아름다운 빛깔, 바람이 일어날 때 드러나는 안중근의 외로움, 대자연 속에서 점처럼 보이는 인간. 이것들이 영화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일제의 눈을 피한 어둡고 음습한 공간들. 독립운동을 모의한 논의의 장은 전반적으로 조도가 낮다. 이때 우민호 감독과 홍경표 촬영감독이 떠올린 건 바로 화가 카라바조의 그림이었다. “당시 사람들에겐 세상 자체가 어두웠을 것이다. 일제의 탄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시대상을 공간으로 구현하기 위해 빛이 저 멀리 있되 작은 틈으로 빛이 넘어오는 방식으로 촬영해보았다. 너무 밝게 찍는 건 영화의 중심 메시지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영화적으로 중요한 단서와 진실이 밝혀지는 절체절명의 순간. 긴장감 넘치는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 기차 세트가 실제 기차처럼 넘실거리며 움직이길 바랐다. “이 장면은 내가 <설국열차>를 찍지 않았다면 촬영하기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기차와 관련된 모든 것을 <설국열차>로 경험해봤다. (웃음) 강원도에 가면 있는 3~4량짜리 기차로 먼저 테스트를 해봤다. 여기서 미술팀의 힘이 빛을 발했다. 사람들이 기차를 수동으로 굴려서 기차가 꺾일 때의 굴곡과 흔들림이 진짜처럼 보일 정도로 디테일에 신경을 썼다. 살짝 삐끗삐끗하게. 기차를 손으로 직접 굴린 건 손으로 해야만 타이밍을 맞출 수가 있어서다.”
아이맥스 스크린의 최정점을 보여주는 아리 알렉사 65. 이전에 <기생충>으로 해당 카메라를 경험한 홍경표 촬영감독은 <하얼빈>의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이 카메라를 먼저 떠올렸다. “영화 시작 전부터 우민호 감독과 카메라에 대한 논의는 일찌감치 끝냈다. 아리 알렉사가 아니면 안 하겠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웃음) 아리 알렉사 65는 6.5K로 현존하는 디지털카메라 중 포메이션이 가장 커서 화질이 정말 선명하게 나온다. 사막에서 멀리서 찍은 장면을 아이맥스 스크린으로 보아도 누가 누구의 실루엣인지 알아볼 정도다. 어두운 장면에서도 자신을 숨기는 독립투사들의 미묘한 표정과 감정을 잡아내기에 적합했다.”
몽골 북쪽의 홉스골 호수가 있다면 남쪽에는 고비사막이 있다. 폭탄을 구하기 위해 사막을 넘은 네명의 운동가는 아름다운 일몰을 배경 삼아 거친 여정을 선보인다. “일제강점기의 문학작품을 보면 ‘광야를 달린다’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독립투사들이 광야를 달리는 이미지를 구현해보고 싶었다. 특히 여러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상황이었기 때문에 허망함, 허탈함 그러나 다음 희망을 놓칠 수 없는 끈기 같은 게 드러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표현했다. 해질녘 장면을 촬영하는 동안 해가 까무륵 져버릴 수 있기 때문에 짧은 시간을 잘 활용하도록 정말 리허설을 많이 했다. 이때 갑자기 바람이 크게 불어 사람들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촬영에 들어가니 바람이 멎었다. 말을 끌고 산을 넘고 사막을 지나가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는 안중근 의사의 결단과 절규.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코레아 후라”를 외치는 장면은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부감으로 촬영되었다. 왜 <하얼빈>은 이야기의 끄트머리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은 걸까. “우민호 감독과 정말 깊은 고심을 나누었다. 그때 우민호 감독이 결단을 내렸다. 부감으로 찍어보자고. 이미 많은 작품에서 안중근 의사의 총격을 여러 번 구현했으니 우리만의 시각으로 완성해보자고 했다. 과감한 선택이었다. 결국엔 “코레아 후라”라는 안중근 의사의 말이 어떻게 물리적으로 퍼져나가는지 상황으로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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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아 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