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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씨네21]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 송중기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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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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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 속 송중기가 연기한 국희의 삶을 사자성어로 요약하면 ‘반면교사’(反面敎師)다. 외환위기를 피해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로 온 국희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일념하에 죽을 둥 살 둥 타지에서 구르고 버티다 보고타의 상권을 움직이는 큰손이 된다. 자신을 거두어주다 살뜰히 이용해먹는 한인 상인회의 박 병장(권해효)과 수영(이희준) 또한 국희에게 그들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야망을 품게 한다. 결국 국희는 타인의 꿈도 자기의 이상인 양 둔갑시키며 야금야금 보고타 땅을 자신의 야심으로 에워싸간다. 욕망을 연료 삼아 밑바닥부터 정상까지 펄떡이며 등정하는 한 남자의 삶. 어떤 배우라도 탐낼 수밖에 없는 세계를 송중기가 또 한번 새로운 얼굴을 꺼내 보이며 온전히 살아냈다.



- <승리호>의 촬영이 예정된 상태에서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의 시나리오를 받았다고.
= <승리호>가 크랭크인 하기 전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의 출연을 결정했다. 그래서 <승리호> 촬영 현장에서 “우주에 있다가 남미로 가네?” “너는 왜 매번 멀리 떠나느냐” 등 다양한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웃음) <승리호> 촬영이 끝난 지 두달쯤 후에 바로 콜롬비아로 향했다.



- 영화 속 국희의 삶은 역사의 흐름과 맞물려 파란만장하게 흘러간다. 연기해야 하는 감정의 층위도 다단하고 소화해야 하는 배역의 연령도 10대 말부터 30대까지 다양하며 모든 이야기가 국희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배우로서 욕심을 낼 수밖에 없는 기획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 바로 그 지점이 나로 하여금 출연을 결정하도록 매혹했다. 특히 국외 이민자인 주인공이 이국적인 풍광 아래 외국인이 아닌 동포와 이전투구를 벌이고, 그 속에서 극도의 감정 낙차를 오간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본능적인 이끌림이 있었다. 너무 대단한 캐릭터를 예시로 들어 조심스럽긴 하지만 시나리오를 읽고 단번에 떠올린 캐릭터는 <대부>의 마이클 코를레오네(알 파치노)다. 알 파치노가 아버지 비토 코를레오네(말런 브랜도)가 죽기 전 착실한 모습을 보일 때와 사망 이후 코를레오네 가문을 책임지며 스산함이 더해질 때의 간극을 정말 잘 표현하지 않았나. 그 갭을 나를 경유해 표현하고 싶었다. 신기하게도 김성제 감독님 또한 첫 미팅 때 <대부> 이야기를 건넸다. 오랫동안 ‘이런 영화를 해보고 싶다’며 마음에 품어왔던 열망과 부합하는 작품을 만나니 출연 요청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의 촬영 전후로 <대부> 삼부작을 다시 보기도 했나.
= 주기적으로 1년에 한두 차례 감상한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위해 다시 <대부>를 찾아보지는 않았다. 기억과 마음속에 남아 있는 정서가 이미 생생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오퍼: 대부 비하인드 스토리>가 OTT에 올라와 다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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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작품을 본 후 “예상보다 뜨거운 영화가 탄생했다”는 말을 했더라.

= 처음 읽었던 책(시나리오)보다 훨씬 뜨거운 영화가 탄생했다는 의미였다. 특히 편집의 힘이 컸다. 개봉판은 국희의 시선에 초점을 둔 편집으로 인해 국희로서 뜨거워지는 순간이 많았다. 활자화된 책보다 템포가 빨랐고. 어느 날 김성제 감독님이 “국희가 송중기를 만나니 훨씬 더 뜨거워졌다”는 전언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감독님은 그건 송중기라는 배우 고유의 색 때문인 듯하다고 진단했다. 내가 국희를 연기하는 내내 뜨거운 열의로 타고 있었나 보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차가운 타입의 사람은 아니다. 분명 국희와 닮은 점이 내 안에 존재한다.



- 국희 시점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이 무척 많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이후로 이렇게 내레이션이 많은 작품에 출연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 평소 배우로서도 내레이션의 효용에 대해 명확한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아직 답을 내리진 못했지만 적어도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이 지닌 고유의 색엔 수많은 내레이션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국희가 살아온 세월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적절히 기능했으니 말이다. 책에서부터 국희의 긴 내레이션이 있었다.



- 실제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촬영을 진행하고 현지 스태프를 다수 기용한 현장이라 알고 있다. 촬영 도중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예정된 촬영이 중단됐었다.
= 촬영 재개 이후에도 콜롬비아로 다시 갈 수는 없었다. 환경이 유사한 사이프러스에서 못다 촬영한 분량을 완성했고 이후 한국에서도 몇 장면을 촬영했다. 비단 우리 팀만 처한 문제는 아니었다. (마)동석 형의 <범죄도시2>나 (황)정민 형님의 <교섭>도 우리랑 같은 시기에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모두가 힘든 시기를 함께 통과했다는 마음이 든다. 참고로 우리 작품의 제작사 대표님이 <교섭>도 만드셨다. 정말이지 동정의 아이콘이 아닐 수 없다. (웃음) 주연배우로 다시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을 만났을 때는 이 영화가 엎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영화가 중단되는 게 가장 큰 공포였다. 전세계인이 불가항력으로 일상의 많은 부분을 유예한 지금 내가 욕심부리지 않고 양보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먼저 따졌다. 우선 어떻게든 이 영화를 완성할 수 있는 스케줄로 개인 일정을 전부 채비했다.



- 국희는 보고타에서 박 병장과 수영의 눈에 든다. 국희는 이들과 유사 가족 내지 멘토, 멘티의 관계를 맺기도 한다. 왜 이들은 국희를 어여삐 여겼을까.
= 순진하기만 한 국희에게 뽑아 먹을 게 많다고 생각해 호의를 베풀지 않았을까. 닳고 닳은 자들의 눈에 닳아갈 게 빤한 존재가 새로 등장한 셈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들이 호랑이를 키웠다. (웃음) 국희는 박 병장보다는 수영에게 더듬이가 향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자신을 인간적으로 챙겨주는 형에게 마음이 가지. 정작 나는 사람들이 호의를 가졌을 법한 국희의 속성보다는 국희가 왜 이들을 배신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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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희의 아버지 근태(김종수)는 보고타를 미국에 가기 전 들르는 환승역 정도로 생각하고 콜롬비아에 온다. 반면 국희는 아버지와 달리 영화 초반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이후 국희는 아버지와 독자 노선을 걸으며 보고타에서 이름을 날린다.

= 근태는 비겁하고 무기력한 가부장의 전형이다. 그가 보고타에서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겠나. 한국에 살 때도 국희는 아버지의 비루한 면모를 지긋지긋하게 보면서 컸을 것이다. 자연히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서 자리 잡았을 테고. 그렇게 자란 국희는 보고타에서 비로소 기회라는 걸 접하면서 처음으로 가족 바깥에서 삶의 목표를 설정하게 된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엔 아버지라는 키워드가 자리한다. 이 관점의 연장에서 내가 감독님에게 제안한 아이디어가 있다. 근태가 국희에게 신체적, 정신적 위협을 가하는 신에서 국희는 “별 걸 다 하네 씨발”이라고 욕을 한다. 한국인의 정서상 생물학적 아버지에게 상스러운 욕을 뱉는 순간을 상상조차 해본 적 없다. 그런데 마치 바퀴벌레를 보듯 아버지를 향해 느끼는 국희의 경멸과 진절머리를 표현하려면 욕밖엔 없었다. 감독님도 흔쾌히 내 생각을 받아들였다.



- 국희는 생존을 위해 사람을 해하기도 한다. 처음엔 국희의 성공담을 기대하며 극장을 찾은 관객도 영화를 볼수록 국희를 마냥 연민할 수만은 없는데.
= 세상에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나와 상대방에게 상처를 내는 한이 있더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 이것이 국희의 생존 방식이다. 국희가 관객에게 호감형 캐릭터로 다가가는 건 원치 않았다. 관객들이 국희를 보며 ‘그래, 저렇게 절박한 상황에선 저럴 수도 있지’라며 끄덕여주기만 해도 좋겠다.



- 촬영 순서로 보면 <승리호>에 이어 연속해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배역을 연기했다. 차이가 있다면 <승리호>의 우주는 통역기가 존재하는 공상과학 세계인 반면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의 콜롬비아는 생존을 위해 스페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지극한 현실이다.
= <승리호> 때는 신 자체가 코미디를 의도한 장면이고 길이도 길지 않아 부담이 없었다. 한데 <보고타>는 매번 심각한 상황에서 스페인어 대사를 뱉어야 했고, 대사량도 많았다. 무엇보다 스페인어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 겁을 먹었다. 단순히 문장만 외워서는 현지 배우들과 기계적인 대화만 이어갈 게 뻔하니 언어 자체를 깊이 이해해 그 속에 정서를 채우고 현지 배우들과의 연기 중간에 애드리브도 넣고 싶었다. 확실히 스페인어를 배우고 난 이후에 자신감이 생겼다. 또 로망스어군 특유의 리듬감이나 인토네이션(억양)에 재미를 붙였다. 스페인어의 발화 속도가 다른 언어에 비해 빠르지 않나. 국희도 생존 스페인어를 배운 사람이라 현지인의 속도로 대사를 소화하려 했다. 그런데 이희준 형이나 권해효 선배는 오히려 정착한 지 오래돼 네이티브처럼 발음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의 악센트를 구사했다. 배우별로 차이를 감지하며 연기하는 게 재밌더라. 스페인어를 연이어 연기하니 뒤이어 <빈센조>의 이탈리아어가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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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입대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백기가 있던 때를 제외하곤 매년 한두 작품씩 찍으며 관객과 시청자에게 다가왔다.

= 그렇다. 돌이켜봐도 일을 쉰 적은 거의 없다.



- 빽빽한 필모그래피는 많은 창작진이 배우 송중기와 협업하길 원한다는 의미다. 결국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니까. 그렇다 해도 모든 배우가 흥행 성패와 무관하게 일정 빈도로 꾸준히 작품에 출연하진 않는다. 배우가 직업인으로서 연기에 성실히 복무하고자 할 때 내릴 수 있는 결정이라 보이는데.
= 특정한 사건으로 인해 연기를 일로서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을 굳힌 적은 없다. 배우를 시작했을 때의 초심과 지금의 마음 역시 같다. 하지만 전에 안 해 보았던 낯선 작품에서 새로운 연기를 경험하고 싶다는 갈증이 점점 커지고 또 세진다. 요즘은 차기작을 고를 때 전작과 소재와 내용이 겹치는 작품은 의도적으로 피하기도 한다. 모 제작사의 절친한 대표님으로부터 “너 참 변태다”라는 말도 들었는데, 어쩌다 보니 최근 몇년간 상고시대, 우주, 콜롬비아, 이탈리아, 재벌가를 오갔다.



- 대체로 서울에 없다.(웃음)
= 그러게. 내게 역마살이 있나 싶다. 생각해보면 <화란>도 배경이 가상 도시였고 <로기완>은 헝가리에서 찍었다. 거듭 전과 다른 얼굴,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나서려니 쉴 수가 없다. 그래도 곧 서울로 돌아올 예정이다. 지금 천우희 배우와 서울이 배경인 시리즈 <마이 유스>를 촬영 중이다. 작품을 집필한 박시현 작가와는 <태양의 후예> 때 처음 인연을 맺었다. 박시현 작가가 김은숙 작가님의 보조 작가였거든. 나보다 한살 어린데도 굉장히 성숙한 감성의 소유자라 대본 읽는 일이 재미있다. 모처럼의 멜로다.



- 배우로 살면서 터득한 스스로의 장점이 있나.
= 연기와 크게 관련은 없지만 내가 중재와 결속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다. PD님을 비롯해 누군가는 나를 피곤하게 여길 수도 있지만 나는 작품을 함께하는 동료들을 오지랖 넓게 모으고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즐겁다. 이번 작품 촬영 도중 콜롬비아에서 전 스태프가 함께했던 회식이 인생 최고의 회식이었다. 언어와 문화권이 달라 발생할 수밖에 없는 소통의 오류를 해결하는 나만의 회식 비법이 있다.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끈끈하게 공유할 수 있는 정감을 만드는 작업이다. 그래서 현장에서 힘겨워하는 스태프들의 모습에도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한국팀과 헝가리팀이 공조한 <로기완> 현장에서도 이게 통했다. 심지어 넷플릭스의 한·일 합작드라마인 <로맨틱 어나니머스>에 특별출연하게 됐는데 그 현장에서도 회식을 주도하고 왔다. 결국 행복한 현장을 만들 때 뿌듯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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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은 카 체이싱을 포함해 물리적인 ‘체이싱’으로 가득한 영화다. 가족과 함께 보고타에 온 10대 후반의 국희는 이민 첫날 도착하자마자 정착 자금이 든 가방을 날치기범들에게 빼앗기고 만다. 이때 비탈진 골목을 오르내리며 끝까지 날치기범을 추적하는 국희 앞에 거대한 보고타의 전경이 드러나는 숏은 앞으로 국희가 헤쳐나가야 할 고역을 예고하는 듯하다. 볼리비아의 라파스, 에콰도르의 키토 다음으로 해발고도가 높은 보고타는 해발 2640m에 위치한 고산도시다. 백두산과 고도가 불과 100m 정도만 차이나는 도시에 처음 도착해 목에서 피맛이 느껴지도록 달린 국희처럼, 송중기 또한 촬영 첫날 이 신을 만났다. “감독님이 테이크를 이어가며 ‘한번 더 뛰자’고 하는데 정말 죽을 맛이었다. 이렇게 산소가 부족한 도시에 도착한 첫날에도 숨 가쁘지 않게 뛰는 국희는 얼마나 독한 놈이겠나. 보통 아닌 국희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https://naver.me/F5DocE1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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