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과 의병대는 함경도의 홍의산과 신아산 전투에서 게릴라전에서 일본군을 격파하는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이어진 영산 전투에게 대규모 화력을 투입한 일본군에 뼈아픈 참패를 당하며 불과 20여 명만 살아남는 참혹한 상황에 놓인다.
여기에는 안중근의 책임도 있었다. 당시 승전을 통하여 사로잡은 일본군과 일본인 상인 포로들을 국제법을 근거로 풀어줬다. 안중근은 사지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천주교 신자다운 박애주의를 실천하려 했던 것이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풀려난 포로들은 일본군에게 의병대 위치와 정보를 알렸고, 이를 이용한 일본군의 대규모 기습공격에서 의병들은 전멸에 가까운 쓰라린 참패를 당해야 했다. 역사 전문가들은 안중근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포로들을 풀어준 명분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정작 그에 대비한 사후 대응조치가 미숙했다고 지적한다.
-벌벗사에서 다룬내용 기사리뷰에서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