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에서 안중근 장군이 "코레아 우라!"(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 바로 그 순간을 향해 달려간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이다. 이날 안중근 의사는 한민족 역사에서 결코 지워질 없는, 의거를 오롯이 새겼다.
자신을 향한 의심, 동지를 잃었다는 죄책감에 홀로 괴로워하는 극 중 안중근의 고독한 모습도 몰입감이 높다. 이전 안중근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모습이다. 안중근의 역사를 알고 있는 관객, 아니 모르는 관객이라도 충분히 몰입하며 공감할 시간이 펼쳐진다. 안중근의 그 순간을 상상했을 관객들에게는 공감,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관객들에게는 파장을 일으킬 듯하다. 냉기 가득한 방에서 벽에 기댄, 고독한 안중근이 대한의군이 아닌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낼 때는 숨 죽이게 된다. 역사, 스크린 속에 담긴 배경, 그리고 배우의 생생한 연기가 어우러져 고독했을 안중근에게 몰입하게 한다. 또한 홀로 꽁꽁 언 강을 건너고, 독립군 동지들 앞에 나서 늙은 늑대 처단을 얘기하는 모습에서는 '대한의군 중장 안중근'의 비장함을 느끼게 한다.
'하얼빈'은 극 중반을 넘어서부터는 안중근과 함께 한 동지들의 활약도 눈에 띈다. 때로 다른 뜻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독립'이란 목표를 향해 목숨을 내건 필사의 질주는 영화에 동력을 더한다. 독립이란 뜻을 품은 이들이 일제 강점기에 맞선, 각자의 신념과 사명을 품고 사는 삶의 방식은 오만가지 생각을 갖게 한다. 극에 등장하는 일부 허구의 인물은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장치로 탁월하게 쓰인다. 그리고 여기에 몰입 포인트가 있다. 1909년과 2024년 오늘의 현실이 오버랩된다. 한일 관계, 역사 의식 그리고 2024년 12월의 탄핵 정국까지 하나, 둘. 그래서 '하얼빈'은 이전에 안중근을 소재로 한 영화와는 결이 다르다. 격동의 순간, 탕, 탕, 탕이란 짜릿한 한방을 쫓지 않는다. 거사를 위해 달린 안중근과 독립군의 여정이 주는 고독함에 대한 공감이다.
'하얼빈', 관객이 어떤 시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여러 의미를 나뉠 수 있는 안중근의 삶을 담았다. 영웅 안중근의 고뇌, 고독함, 숭고함, 의로움 그리고 한민족 혼에 새겨진 아픔이 스크린을 통해 쏟아져 나온다. 또한 2024년의 12·3 사태를 두고 절묘하게 우리 역사를 돌아보는 순간까지 선사한다. 그리고 영화 속 엔딩의 순간, 관객들은 이런 생각을 해볼 법하다. '나는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러 나갈 수 있을까, 나라면 하얼빈으로 갈 수 있었을까'.
이경호 기자 (sky@iz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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