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마어마한 악역이었다. 어떻게 준비했나.
"오디션의 몇 십 배는 준비했던 것 같다. 물론 오디션 때도 최선을 다한다. 그걸 해내야 기회가 주어지니까. 근데 합격하면 합격한대로 또 문제다. 이제 실전 아닌가. 괴로움의 늪으로 빠지면서 나를 학대하고 자학한다. 난 원래 날 괴롭히면서 일하는 스타일이라.(웃음) 1차적으로 했던 것은 '내가 만들고 싶은 악역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지는 것이었다. 10년간 연기를 했지만 악역이라는 기회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 잘하고 싶었다."
- 그 답이 나왔나.
"대본이 4회까지 나왔는데 2회에 한 신, 3회에 두 신, 세 신 정도였다. 분량이 없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연구를 더 많이 했다. 따귀 한 대를 올려쳐도 뻔한 악역처럼 보이기는 싫었다. 왜 '추격자'의 하정우 서내님을 보면 새로운 장르의 악역을 개척하지 않으셨나. 그 정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단 한 번 등장해도 작품에 효과를 줄 수 있는 캐릭터가 되길 바랐다."
- 행동 하나, 대사 하나의 디테일을 살리려 노력했을 것 같다.
"'따귀는 어떻게 때릴까. 때리고 나서는 손목 한 번 만질까?'라는 고민도 많이 했다. 지문에는 없지만 '중전이라면 이럴 것 같아'라는 상상을 많이 했다. 손톱 손질을 받을 때도 탁 치면서 들어 올린다. 못되 보이고 까칠해 보이고 재수없어 보이고 뾰족해 보이는 것 같은 위협을 주고 싶었다."
- 참고한 작품도 있나.
"'투다이포' '블랙스완' '나를 찾아줘' '원초적 본능' 등 매력적인 악역이 등장하는 작품들을 한 번씩 다 찾아봤다. '선덕여왕'의 미실도 봤다. 감독님께서 '중전은 어린 미실이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씀을 해 주시기도 했다. 물론 어린 미실이라고 해서 고현정 선배님 연기를 똑같이 복사해 하는 것은 싫었다. 새로운 창작이 중요했고 결국 나로부터 출발했다."
-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현장에서도 지적을 받은 부분인데 내가 지르는 것을 잘 못했다. 악한 마음을 갖고 누군가를 대한다면 조근조근 잘근잘근 씹을 것 같더라. '악!' 하고 소리 지르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서 비수를 꽂는 것 같은? 그래서 표정은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신 목소리는 예민하고 가늘게 가려고 나름의 계산을 마쳤다."
- 그 계산이 통하지 않았던 적도 있었나.
"감독님도 처음에는 좋다고 하셨는데 나중에는 질러야 하는 신이 점점 생기니까 '아예 확 질러달라. 좀 더 세게 나가야 할 것 같다'는 디렉션이 오더라. 걱정이 됐는데 눈 딱 감고 속시원하게 질러 버리니까 역할도 같이 강해졌다. 평소 톤을 유지하면서 한 번씩 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 가장 어려웠던 촬영은?
"11부 같은 경우 유정이의 여자 옷을 발견하고 또 괴롭힌다.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 신이다 보니까 풀샷으로 찍고 한 명 한 명씩 클로즈업을 따로 다 땄다. 대사도 많고 눈도 희번떡하게 떠야 해서 체력적인 소모가 컸는데 난 신인이기도 하고 캐릭터 순위도 뒤쪽이라 가장 마지막에 찍었다.
근데 카메라에 내가 안 보인다고 해서 연기를 안 할 수는 없지 않나. 파트너를 위해 연기해 주는 것은 암묵적인 예의이자 룰이다. 그래서 다른 배우들이 찍을 때도 똑같이 연기했고 결국 내 차례가 됐을 땐 에너지가 다 소진돼 힘들었다. 정작 진짜 잘해야 할 때 연기가 안 따라주더라. 눈은 충혈되고 정신은 피폐해지고 심적으로 마음 고생을 가장 많이 했던 순간이다."
- 캐릭터에 대한 애정은 점점 커지지 않았나.
"처음엔 중전 역할은 멘탈 등 모든 면에서 강한, 내공 좋은 배우가 해야 잘 지키고 끌고 나갈 수 있는데 너무 약한 주인을 만난 것 같아 자책하기도 했다. 내 캐릭터다 보니까 난 중전이 안쓰럽고 아프고 불쌍할 때도 많았다. 애정이 있기 때문에 더 잘하고 싶은데 그 이상 안 나올 때, 이렇게 하고는 싶은데 내 것으로 못 밀고 나갈 때, 현장의 눈치를 봐야 할 때는 '센 주인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하지만 결국 완벽하게 마무리 지었다.
"'끝까지 완주 했구나.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감독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사극이 좋은 이유는 캐릭터를 아무 때나 죽일 수 있다. 유배 보내고 칼로 베고 아니면 사약을 내리면 된다' 모든 것은 배우에게 달린 것이다. '연기 못하면 중간에 사약길 가겠구나'라는 마음으로 이를 악 물었다.
사실 중전 캐릭터는 원작에도 없기 때문에 드라마 작가님이 탄생시킨 작가님의 애기나 다름없다. 마지막 회 촬영 전에는 '이거 완전 중전 이야기인데?'라는 말도 들었다. 정말 마지막까지 스토리를 주신 것을 보고 '아, 작가님도 중전 캐릭터를 예뻐 하시는구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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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윤이 존무.. 사극이 좋은 이유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