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수연 기자] 이만큼 시의 적절한 작품이 있을까. 불의에 항거하던 영웅, 동시에 평범한 청년들에 지나지 않았던 국민들의 이야기, ‘하얼빈’이 때맞춰 극장가를 찾아왔다.
사실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는 이미 여러 작품에서 그려져 왔다. 배우 정성화가 표현한 ‘영웅’ 속 안중근 의사가 있고, ‘영웅’에 앞서서는 영화 ‘도마 안중근’도 있었다. 앞도, 끝도 보이지 않는 일본의 탄압에도 투쟁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안중근 의사의 영웅적인 행적과 뜨거운 진심에 주로 쟁점을 맞춘 작품이었다.
다만 ‘하얼빈’은 영화의 제목이 시사하듯, ‘하얼빈’은 하얼빈에 향하는 독립 투사들의 모습을 모두 그린다. 물론 아무나가 아닌, 대한민국의 역사에 손꼽는 위인들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국민 중 ‘누구나’가 될 수 있었던 청년들의 이야기임을, 입체적인 캐릭터들을 통해 이야기한다. 물론 연기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명품 배우들의 활약은 캐릭터에 한층 더 숨을 불어 넣는다.
특히 현빈이 연기한 ‘인간’ 안중근의 모습은 영화의 ‘포인트’로 꼽을 수 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거사를 행하는 안중근 의사의 모습도 있지만, 피를 흘리며 곁을 떠난 수많은 동지를 떠올리며 울부짖는 ‘국민’ 안중근 의사의 모습도 그리며 울림을 안긴다. 무너질지언정 꺾이지 않는, 안중근 의사의 복잡한 내면을 표현하는 고난도의 감정 연기를 소화한 현빈의 활약이 인상 깊다.
보통 애국심을 고취하는 영화서 흔히 볼 수 있는 ‘울어라’와 ‘화내라’ 포인트는 과감히 생략됐다. 그 대신, 광활한 자연에 비해 연약하기 그지 없는 한 인간의 무거운 한 걸음, 한 걸음이 극 내내 묘사되며 건조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만 이에 따라 강력한 한방, 뜨거운 정서를 기대하는 관객들에게는 다소 ‘불호’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
최근 모 연예인은 탄핵 정국 속 목소리를 내 달라는 한 누리꾼의 요구에 “제가 정치인인가요? 목소리를 왜 내요”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시국의 위중함도, 시대도 사뭇 다를 수 있겠으나, ‘하얼빈’ 속의 위인들 역시 정치인이 아닌 행동하는 한 명의 국민에 불과했다. 모두가 영웅이 될 순 없지만, 영웅은 우리 모두 중 한 명이 될 수 있다. 어지러운 시국 속, 영화 ‘하얼빈’이 더욱 뜻깊은 이유다.
12월 2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1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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